엄마와 쑥국

by 이방글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너른 들판이나 오솔길에 낮은 자세로 피어나는 쑥이 생각난다. 이건 아마도 어릴 때 엄마와 함께 쑥을 캐러 여기저기 다녔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 내 삶의 흔적이다.

엄마는 강원도 춘천 사람이다. 젊은 시절, 군대를 강원도로 갔었던 경남 마산 사람인 아빠를 만나 고향을 떠나 머나먼 도시로, 낯선 도시로 오게 되었고 지금까지 쭉 살고 있다.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면 부잣집에서 태어나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던 곱디고운 철부지 막내딸이다. 그런 엄마가 아빠만 바라보고 먼 곳까지 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다.

어린 나의 시선에는 엄마는 위대하고 강하며 모르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들판 핀 꽃이며, 식물이며 내가 물어보면 척척 대답을 해주니 어렸던 내게 엄마는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과 같았다. 엄마가 봄이 다가오면 늘 나를 데리고 봄 쑥을 캐러 다녔다. 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어떤 걸 캐야 하는지 알려주는 엄마를 바라보는 내 눈망울은 아마도 반짝였을 테지. 그렇게 봄이 오면 엄마와 함께 쑥을 캐러 갔다.

쑥을 한 바구니 캐오면 깨끗하게 씻은 뒤 '쑥국'을 만드셨다. 쫄깃한 조갯살과 진한 쑥 향이 나는 쑥국에 갓 한 하얀 쌀밥을 말아 푹 익은 김치 한 점과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엄마는 쑥국을 먹을 때마다 항상 내게 해주는 말이 있었다.

[봄에 나는 어린 쑥으로 쑥국을 세 번 끓여 먹으면 보약 한제 지어먹은 것과 같다.]

쑥국을 세 번 끓여 먹고 나면 엄마의 말처럼 보약을 든든히 먹은 것처럼 건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늘 좋은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해주려 노력했었다. 엄마의 정성과 마음이 들어간 음식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 준 게 아닐까.

결혼을 하고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를 한 뒤 이듬해 봄날, 늘 엄마와 함께 캤던 쑥을 보게 되었다. 쑥을 보자마자 엄마가 진하게 끓여줬던 쑥국 생각이 절로 났다. 인터넷으로 쑥국 레시피를 찾아보았지만 내가 어릴 때부터 먹었던 '경상도식 쑥국' 레시피는 아니었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쑥국 만드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엄마는 웃으며 거기서도 쑥을 캤냐고 되물었다. 엄마가 해주는 쑥국이 먹고 싶다고 칭얼대며 알려달라는 내게 자세히 알려주었던 엄마. 엄마가 해줬던 맛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먹을만했다. 남편도 처음 먹어본 쑥국에 반해 맛있게 잘 먹었다. 나도 엄마와 똑같이 남편에게 말했다.

[봄에 쑥국 세 번 끓여 먹으면 보약 한제 지어먹은 거랑 같대.]

오늘도 쑥을 조금 캤다. 일을 시작하면서 캐러 갈 생각을 못 했는데 우연히 근처에 난 쑥을 보고는 캐지 않을 수 없었다. 쑥을 핑계로 난 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끓여준 쑥국 만드는 방법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알려달라고. 엄마는 친절하게 또 알려준다.

엄마와 전화가 끝난 후 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따라 먼 타지로 온 엄마는 할 줄 아는 게 없었을 테지. 경상도 시어머니를 만나 재료 하나하나, 음식 만드는 법 하나하나를 배우며 힘들었을 테지. 시어머니가 알려준 봄나물 중에 가장 좋아하는 건 쑥이었을 테지.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들에게 해주고 싶어 봄에만 먹을 수 있는 어린 쑥을 캐러 여기저기 다녔을 테지.

엄마가 해주는 밥이 생각날 때면 쑥국이 떠오르는 것도 엄마의 마음이 가득 담겨 그 온기가 내게 가득 차올라 흘러넘쳐서겠지. 오늘도 엄마가 해주는 쑥국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엄마가 알려준 방법으로 쑥국을 끓여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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