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곁에 산다는 건

by 이방글

마음이 답답하거나 머릿속이 어지러울 때면 늘 바다를 찾았다. 생각 정리가 되지 않을 때에도 무작정 바다 곁을 하염없이 걸었고, 감정 기복이 심해질 때에도 바다를 바라보며 주저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바다가 모든 걸 씻겨 내주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걸 다 품고 저 멀리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생각해 보면 힘든 시기에 바다를 무의식적으로 찾았고, 바다 곁에 다가서면 마음이 잔잔해졌다. 그렇게 시작된 갈망. 바다 곁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

분지인 도시 창원에서 자라며 숲과 공원과 자연이 늘 곁에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가득 채워지지 않았다. 내가 갈구하는 게 뭘까. 빽빽한 빌딩 숲의 서울로 왔을 때는 더 허한 마음이 들었다.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종종 한강으로 산책을 갔다. 마포대교를 걸으며 바라보는 한강, 여의도 공원에서 바라보는 한강. 그때는 그 순간이 나의 숨 쉴 틈이었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는 말을 몸소 느낀 적이 있다. 매장으로 품질 점검을 다녀온 후 사무실로 들어온 순간, 상무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OO 이는 8월부로 OOO TFT로 발령 날 거야. 대표님 지시사항이야.]

나를 말하며 새로 생긴 TFT로 발령을 대표님이 지시하셨다고 했다. 우리 팀 모두가 당황했다. 그중 가장 당황한 사람은 나였다. 그렇게 말씀하시곤 홀연히 떠난 상무님.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정적의 순간을 깬 매니저님의 질문 하나.

[혹시 누구랑 면담한 적 있니?]

조금 억울했다. 팀의 막내였던 내가, 누군가와 면담을 한 적이 없는 내가 받아야 했던 선배들의 의심스러운 눈초리와 가고 싶지 않았던 TFT. 면담을 한 적이 없고 지금 처음 듣는 소리라고 말했다. 내 말에 매니저님은 바로 팀장님께 가셨고 항의를 하셨지만 팀장님도 대표이사님이 직접 지시한 사항이라 번복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때부터 정식 발령이 나기까지 2주 동안 사람들의 수군대는 소리와 눈초리를 온몸으로 받아야 했고, 내가 재미있게 하던 일에서 배제되었다.

그렇게 새로 발령 난 팀의 팀장은 악독하기로 유명했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게 된 팀에서 사람에게서, 업무에게서 괴롭힘을 호되게 당했다. 그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도 갈등이 깊었고, 오빠에게서 걸려온 전화에서 엄마의 건강이 아주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 둘 곳이 없던 나의 세상은 회색빛이 짙게 깔렸다.

몸과 마음이 갈릴 때로 갈리고 남은 기력조차 다 소진했을 때, 난 쓰러졌다. 그 당시 함께 살았던 친구가 발견해 나를 부축하여 신촌 세브란스 응급실로 데리고 갔었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약의 힘으로 버티다 결국 또 쓰러지고 말았다. 초인종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 깨어보니 같은 팀 사수 선배가 사색이 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선배가 왜 우리 집 앞에 와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선배는 그런 나를 안아주며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된 나는 선배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니 출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는 나에게 연락을 했지만 연락 두절이 되어 집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무작정 가장 빠르게 당장 갈 수 있는 비행기표를 찾았다. 제주행 비행기. 그렇게 도망치듯 바다 곁으로 왔다. 목적 없이 걷는 걸음에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가벼워졌다. 그 걸음 곁에는 바다가 늘 있었고, 또다시 숨 막힐듯한 순간이 오면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제주로 왔다. 그렇게 바다를 하염없이 찾았고, 바다 곁에서 살아야 내가 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제주를 꿈꿨다.

바다 곁에서 살고 있는 지금, 마음이 무거워질 때면 대문 밖을 나와 바다로 간다. 바로 앞에 바다가 있고,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나는 바다가 필요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오늘도 출근을 위해 나왔던 순간, 내 눈을 사로잡았던 바다의 모습. 또 한 번 숨이 트인다. 깊은 들숨과 긴 날숨으로 속을 털어낸다. 바다 곁에 산다는 건 참 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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