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시절 나는 존재감 없는 소녀였다. 비대한 자의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존감은 낮았다. 사회시간에 ‘준거집단’이라는 단어를 처음 배웠을 때, 나는 내가 나의 준거집단에 속해있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래 아이들의 대화가 유치했고 때로는 한심했다.
나는 세상에 하나뿐인 사람이었다. 내가 남들과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지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친구들이 입시에 몰두하거나 아이돌을 덕질하거나 옆 건물 남자고등학교에서 누가 가장 잘생겼는지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어폰을 끼고 혼자 책상에 앉아 도스토예프스키나 알베르 카뮈를 읽는 소녀였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메탈리카, 스트라토 바리우스, 메가데스, 랩소디, 슬레이어와 같은 헤비메탈 밴드의 음악이었다. 귓가로 흘러들었다는 표현보단 귓가를 망치질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노래를 큰 소리로 들었다. 누군가 왜 이렇게 소리를 크게 해서 듣냐고, 그러다 청력에 이상이 생기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들어야 베이스 드럼 소리가 잘 들린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가 한 그 대답이 무척 마음에 들어 며칠 동안 그 말을 곱씹었다. 사실 볼륨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서 음악을 들은 이유는 내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옆 친구들에게 새어 들리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가 듣고 있는 음악이 얼마나 특별한지, 내 취향이 얼마나 마이너 하면서도 고급진지, 록 음악의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장르가 대중가요와 얼마나 다른지를 궁금해해 주길 바랐다. 이따금씩 나의 이어폰 줄을 뽑으며 “넌 대체 하루 종일 무슨 음악을 듣는 거야?”라고 물어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음악을 듣는 시간 중 그때가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 그럼 난 무심하고 시크하게 (사실은 친구들이 그 이름을 모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 앨범이야. 명반이지.”라고 말했다.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덧붙이지 않았다. 길게 말하지 않는 것,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고 들어보라고 권유조차 하지 않는 것이 더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도 별로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매일 그 음악을 들으면서도 그 음반이 왜 명반인지 몰랐다. 인터넷에서 메탈리카의 이름을 검색하면 누구나 한 번에 찾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정보였다.
헤비메탈 음악을 들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읽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두껍고 복잡하고 어려웠다. 거기다 한 명의 인간이 이렇게 많은 이름을 가지다니! 이건 책을 읽으란 건가 말라는 건가. 학교에서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하나도 머리에 남지 않았다. 학교에서 책을 펼 때면 나는 늘 독서 시작 부분을 조금 접어두었다가 집에 돌아오면 그 부분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었다.
헤비메탈 음악은 솔직히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알베르 카뮈,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작가들을 좋아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책만 읽어도 되는데 헤비메탈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던 이유는... 친구 없이 구석에서 책만 읽는 소녀는 왠지 찐따 같았기 때문이다. 문학선생님은 나에게 독서광이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책 보다 책을 좋아하는 내 모습을 좋아했다.
얼마나 쓸데없는 허세였는지. 그럼에도 내가 책과 락, 그 두 조합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친구들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학교에서 유일한, 친구들이 만난 또래 중에 가장 신기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말이다. 나도 사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에서 한 두 명씩은 꼭 나를 좋아해 주고 동경해 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상냥하고 관심사가 다양하고 외향적인, 어쩌면 반에서 소외된 친구를 못 본채 하지 못하는 그런 친구들. 그 아이들을 통해서 나는 아주 가끔씩 반 아이들의 대화 속에 등장했다. “소연이 말이야, 좀 특이한 것 같지 않아? 무지 시끄러운 외국 음악을 듣고 엄청 두꺼운 책을 읽어.” 안 듣는 척했지만 다 듣고 있었다. 아무리 시끄러운 음악을 듣고 있어도, 아무리 어려운 책을 읽고 있어도 그건 다 들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러든지 말든지”하는 반응을 보였다. 내가 친구들의 화제로 떠올라도 두 세 마디 이상 이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그 시절의 나에겐 그게 중요했다.
나는 나에게 몰두하는 척했지만 사실은 나를 제외한 모든 것에 몰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