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만화책

by 여름달

서정주 시인은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만화였다. 나는 그야말로 만화광이었는데, 만화라는 만화는 정말로 닥치는 대로 읽었다. 순정만화는 말할 것도 없고 스포츠, 추리, 무협, 판타지, 액션, BL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들이붓듯 읽었다. 당연히도 나는 동네 만화대여점의 VVIP였다. 한 권, 두 권을 빌리는 게 아니라 한 질을 통째로 빌려서 하루에 다 읽었고 다음날 또 그만큼을 빌렸다. 내가 다니던 동네 만화대여점에는 오전에는 주인아저씨가, 오후에는 그 아저씨의 삼수생 아들이 근무했다.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아들은 법대에 가기 위해 삼수 중이라고 했다. 부모님께 신세 지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하면서 아버지 일을 돕고 있다고. 아저씨는 대단한 착각 속에 빠져 계시는 듯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곳을 들락거리면서 아저씨의 아들이 카운터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오빠는 늘 신간 만화를 보고 있었다.



“오빠, 원피스 22권 나왔죠?”하고 대여점 문을 열면, 늘 신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주인집 아들이었다.

“없는데.” 그는 자기 아버지 가게의 매출에는 별 관심 없는 듯했다.


“지금 오빠가 보고 있잖아요?”

“어, 맞네.”

“제가 빌려갈게요!”

"그럼 나 다 볼 때까지 기다려."


그 오빠는 평소 내가 만화를 빌리지 않고 서서 보고 있으면 “야, 돈 내고 봐.”라고 말했지만, 내가 자신이 보고 있는 신간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그리 야박하게 굴지 않았다. 그가 신간을 읽는 동안 나는 그곳에 딱 하나 있는 낡고 푹 꺼지고 얼룩이 묻은 1인용 소파에 앉아, 내가 빌릴 수 없는 빨간딱지 만화들을 보았다. 어느 날, 빨간딱지 만화를 보고 있던 내 뒤로 그가 슬금슬금 와서는 내가 보던 만화를 확 잡아챘다.



“얘 봐라, 봐라. 새파랗게 어린 게 야한 거 본다!!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

“잠깐 본다고 뭐 닳아요? 오빠는 그렇게 모범적으로 살아서 뭐 지금 삼수생 됐어요?”

“와 이거 이거 사람 상처 후벼 파네?”

“상처 안 받은 거 다 알아요. 이런 말에 상처받을 거면 지금 공부를 하고 있어야죠.”

“와, 씨발, 저 꼴통 씨... 콩 만한 게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오빠는 욕지거리를 하면서도 낄낄 웃었다. 그 뒤로 그는 가끔씩 아버지 몰래 나에게 19금 만화를 빌려주었다.



“오빠, 아저씨가 법대 가려고 삼수한다던데 그렇게 만화책만 보고 있어도 돼요?”

“나 법대 안 갈 건데, 나 여기 물려받을 건데.”


주인아저씨가 불쌍하고 어리석다고 생각했지만, 이 오빠랑 친해 두면 대여료도 깎아주고 신간도 몰래 숨겼다 챙겨주곤 했으므로 굳이 오빠의 공부 실태를 아저씨에게 일러바치진 않았다.


난 그 오빠가 한심하고 못나 보였다. 법대 지망한다고 부모를 속이고 한량처럼 지내는 주제에 어린 여자애한테 만화책 대여비를 깎아주거나 연체료를 감해주면서 자신이 엄청 배포가 큰 사람인 척하는 것이 가소로웠다. 그렇지만 누가 봐도 망한 것 같은 자신의 인생을 저렇게 무념무상하게 남 앞에 전시하고 있는 그가 싫지 않았다. ‘표준을 이탈하고도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표상 같았달까. 나라면 쪽팔려서 죽어버렸을 상황에 있으면서도 태평스러운 그를 보고 있으면 왠지 웃음이 났고 마음이 편했다. 그 마음은 안도감이기도 우월감이기도 했다. 그 오빠 앞에선 내가 가진 이상적 자아를 연기하는 대신 그저 ‘보잘것없는 나’ 그대로 행동했다. 나는 그에게 아주 어린애처럼 굴었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나 스스로를 어른스럽다고 느끼게끔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 만화대여점에서는 아저씨의 냄새인지 오빠의 냄새인지 알 수 없는 꾸리꾸리한 담배냄새가 났다. 담배 냄새라는 표현보단 담배꽁초 냄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담배 냄새, 낡은 책과 벽지에서 나는 습하고 쿰쿰한 냄새가 주인 남자 2명이 뱉은 이산화탄소와 함께 환기되지 않은 채 좁아터진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곳 문을 열기 전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들어갔고 나올 때까지 주로 입으로만 숨을 쉬었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그곳을 애용했던 이유는 그곳은 더럽고 냄새나고 어두워서 ‘소녀들이 방문을 꺼릴 만한 조건’을 완벽히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순정만화는 깨끗했고 언제나 내가 원하는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손에 넣기 어렵다는 꽃보다 남자, 나나, 오디션 신간도 몇 번의 발품만 팔면 구할 수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담배 냄새는 그들의 쩐내였는데, 이상하게도 만화 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주인공들은 멋있었다. 그 대여점과 그들의 몸에서 나는 담배 냄새가 역겨웠지만 만화 속 주인공들이 뱉어내는 담배 연기는 뭔가 달라 보였다. 나는 ‘호텔 아프리카’와 ‘마틴 앤 존’을 그린 박희정 작가의 일러스트를 아주 좋아했다. 그녀의 그림 속 남자의 얼굴엔 추남과 미남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었고 그림체와 색감이 몽환적이고 멜랑꼴리 한 느낌을 풍겼다. 그리고 그녀의 일러스트엔 남녀를 불문하고 담배를 피우는 인물들이 많았다. 살짝 벌어진 섹시한 입술. 그 끝에서 흘러나온, 펜선으로 가늘게 그려진 담배연기. 그 연기는 내가 기억하는 담배냄새와 느낌이 많이 달랐다. 또 90년대 만화를 좋아했던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나는 야자와 아이의 ‘나나’에 열광했는데, 나나에 나오는 거의 모든 주인공들이 담배를 피웠다. 담배는 그들이 가진 상처와 고독의 일부 같았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다가도 키스했고 섹스 후에도 담배를 피웠다.



그 만화 속 오사키 나나는 펑크락 밴드의 보컬이었고, 골초였고, 피어싱이 많았고, 왼쪽 어깨에 연꽃 모양의 타투가 있었다. 나는 나를 흔들고 헤집고 망가뜨리고 싶은 마음과 밀도 있게 빚어 반질반질하게 윤을 내고 싶은 두 가지 마음을 다 갖고 있었다. 둘 중 더 쉬운 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었다. 순진한 십 대 소녀가 자신을 망가뜨리는 방법은 끽해야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셔보거나 귀를 뚫거나 하는 소심한 형태의 일탈이었다. 그래서 엄마의 허락도 없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을 때마다 귀에 구멍을 하나씩 뚫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엔 귀에 구멍이 7개였다. 나는 타투도 하고 싶었는데, 부모 허락 없이 10대에게 타투를 해주는 샵이 한 군데도 없었기 때문에 타투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연습장에 낙서를 끄적이며 스무 살이 되면 어떤 타투를 할까 구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자마자 실행에 옮겼다.)



담배를 피워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책인지 만화인지 영화인지에서 본 대사 한 마디 때문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이유 말이야. 어쩌면 자기가 뱉은 한숨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대사를 듣는 순간 섬광처럼 ‘담배를 피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갑자기 담배가 피워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담배 피우는 법을 가르쳐 줄 사람은 만화대여점 삼수생 아들 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그 길로 만화방으로 뛰어갔다.


“오빠 나 담배 피우는 법 좀 알려줘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가시나가 뭐라는 거야?”

“안 가르쳐주면 아저씨한테 오빠 공부하는 거 한 번도 못 봤다고 말할 거예요.”

“너네 부모나 담임이 너 이러는 거 아냐? 너 진짜 꼴통인 거 알지? 너 진짜 별종이야.”


나는 늘 그 오빠가 한심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한심한 사람이 나를 꼴통 취급하는 게 싫지 않았다. 범생 취급 보단 꼴통 취급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온통 특별한 척 연기를 하고 있던 나는, 내 주변 모두에게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유일하게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나’에 대해서 알았던 그 오빠는 나에게 꼴통이고 별종이라고 했다.



그는 나를 만화방 건물 바깥 외벽으로 데리고 가 담배 피우는 법을 알려주었다.

내가 담배를 입에 물자 그가 라이터에 불을 켰다. 나는 담배를 문 채로 “불도 내가 켜 볼래요.”라고 말했다. 그는 “네, 네. 그러시겠죠.”라고 비웃듯 말하며 내 손에 라이터를 넘겨줬다. 라이터를 긁어내리자 사포에 쓸린 듯한 얼얼한 감각이 엄지에 옮겨 붙는 것과 동시에 라이터의 심지 위로 동그랗고 뾰족한 불꽃이 떠올랐다. 불길을 담배에 갖다 대고 한참을 기다려도 불이 옮겨 붙지 않자 나는 ‘왜 안 되죠?’라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리석은 중생아, 빨아 당겨야 불이 붙지.”


조금 부끄러웠지만 불을 붙이고 담배 필터 끝을 빨아 당겼다. 그 순간, 매캐하고 뜨거운 연기가 목구멍 속으로 거칠게 밀려들며 엄청난 헛기침이 나왔다. 눈물 콧물이 나올 정도로 헛기침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오빠는 낄낄 웃었다.


“이거 원래 이런 거예요?”

“들이키다 말아서 그래. 애매하게 빨지 말고 쭉 들이켰다 뱉어야지.”


그의 말대로 빨대로 주스를 마시듯 담배를 쭈욱 들이켰다. 뜨겁고 무거운 공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폐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입 밖으로 나왔다. 담배 연기가 지나간 내장 곳곳이 불에 댄 듯 뜨거웠다. 입에서 허연 연기가 흘러나왔다. 아, 이게 담배의 맛이구나.


“어, 코로도 연기가 나와요!!” 내가 신기한 듯 외치자, 오빠는 “좋냐? 좋아? 도넛도 만들어 보지 그래?”라고 말하며 킥킥 웃었다.


나는 그 뒤로도 괜스레 울적할 때나,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나, 사람들이 나라는 원석을 알아봐 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마다 종종 아빠의 담배를 훔쳐 피우곤 했다. 그때 피웠던 담배의 맛은 달콤 쌉싸름했고 난 그게 인생의 맛인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스무 살이 되어 당당하게 편의점에서 담배를 살 수 있게 되자 담배는 더 이상 그때의 맛이 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만화대여점을 물려받겠다’ 던 오빠의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블록 뒤에 넓고 밝고 좋은 냄새가 나는 새 만화대여점이 생기자 아저씨의 가게는 경영난에 시달리다 결국 폐업했다. 아저씨와 오빠와의 의리를 지키고 싶었던 나는 문 닫는 날까지 그 만화대여점을 애용했다. 폐업을 1주일 앞두고 그곳에선 대여용 만화책을 떨이로 팔았다. 나는 집에서 가장 큰 캐리어를 들고 가서 내가 좋아했던 만화 중 그나마 깨끗한 책들을 대거 사들였다. 커다란 캐리어에 만화책을 꽉 채워서 내 방으로 몇 번씩 들고 날랐다. 집을 지으려고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는 제비처럼 만화책을 나르기를 여러 번, 내 방 책꽂이는 내가 사랑하는 만화책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요새가 되었다. 나는 만화책 겉면에 붙은 대여용 바코드 라벨지를 하나하나 손수 뜯어냈다. 그리고 그 뒤로 오랫동안 나의 컬렉팅을 자랑스레 여기며 ‘만화가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만화를 빌려보지 않고 구매하여 소장하는 의식 있는 독자’인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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