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좋은 마음

내 마음이 네 마음 같다면...

  기록자의 삶에서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아이러니하면서도 당연한 것은 어제와 같은 오늘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당연한 날들이기도 했겠지만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자신에게만큼은 거짓 없이 말해야 했고 거짓 없이 기록되었어야 했다. 그런 시간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까지 쌓인 기록물과 메모들은 내가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길잡이이자 글의 소스가 되어주었다.

  베프인 내 친구는 도대체가 불안해서 어떻게 그렇게 무언가를 써대면 가족 중에 누구라도 읽을까 봐 불안하지 않냐고 웃으면서 물어본 적도 있지만 누군가 읽고 안 읽는지에 관해 신경이 쓰였더라면 어쩌면 처음부터 쓸려고 시작조차 안 했을 이 습관들은 사실 어떤 낯선 이의 연습에 연습으로 이어진 훈련 같은 것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만약 슬펐던 어떤 하루를 거짓으로 기록했다면 나는 두 번 다시 그 부분을 펴서 읽을 엄두조차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기록의 힘이라기 보단 어쩌면 나 스스로 나에게 한 작지만 큰 약속이기도 했으니까..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말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지 않는 것처럼 거짓의 글은 언제나 쓸모없는 쓰레기 같아 그저 한 줄만 읽어도 바로 쓰레기통으로 그 내용들이 사라지기에 딱 적합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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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쓰는 스타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길게 오래 잡고 오랫동안 글을 쓰시는 분의 스타일도 있을 것이고 짧게 바로 집중해서 한 번에 쓰는 스타일로 글을 쓰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오랜 경험상 나는 후자에 속한다. 길게 붙잡고 늘어진다고 해서 글이 잘 써지는 편이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쓰기 시작하면 술술 넘어가는 편이어서 마음의 부팅이 걸릴 때까지 자신에게 시비를 잘 안거는 스타일의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을 담아 후회 없이 일사천리로 글을 쓰는 편이다. 물론 펜을 잡거나 키보드에 손을 올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글마다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늘 내 마음속 한편에 글을 써야 하는 공장 속 부품 같은 단어들이 늘 내 뇌리 속에서 또 다른 언어로 춤을 추어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런 자투리 같은 생각들을 모아 또다시 글을 쓰고 글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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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이 열광해하던 물건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에 나 또한 홀릭하게 되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여러 가지 것들을 천천히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다. 효율적인 공간 활용을 위해서도 마찬가지 이겠지만 물건을 사는 것보다 안 쓰는 물건들을 먼저 정리하는데 집중해서 버리기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능률적이었고 삷의 질 또한 좋아진걸 스스로 느끼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료조사차 모아놓은 복사본 종이들은 생각보다 버리기 쉽지 않았다.

  그 좋이들은 대부분 내가 읽은 책들 중에 발췌해서 기억하고 싶은 자료들이었지만 복사본이라고 해서 쉽게 버려지고 내팽개쳐지게 되지는 않았다. 정리하기 전에는 그래도 어렵지 않게 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무용책의 경우에는 거의 아르코 예술 기록관 같은 곳에서 책을 빌려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내 책이 아니어서 줄을 치거나 형광펜으로 그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중요한 부분은 거의 복사를 해서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카피본들의 글들조차도 저마다 다 살아남은 문장들로 생존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기 때문에 투명 박스안에 오려지고 붙여져 쌓여있을지언정 저마다의 사연과 서바이벌로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언제라도 빛을 볼 그 날을 기다리며 지내고 버티고 있었던것이다. 

  반면 복사본의 글들과는 다르게 날짜대로 매일처럼 기록하는 연습장의 경우엔  날마다의 다른 상황들과 사연으로 저마다의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 편이었다. 어떻게 보면 보기에 따라서 너무나 유치하거나 기억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라고 폄하할 수 도 있겠지만 그 유치하고 별 볼 일 없는 기록이 때론 큰 글의 줄기가 되어주고 단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습관처럼 하는 기록이 무서운 것이고 그 기록이 주는 선물 또한 의외의 곳에서 의외의 기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매일같이 하는 기록은 아주 가끔 생각나서 하는 기록과는 다른 면이 있다. 

  무엇보다 기록이 주는 최고의 정점이 주는 순간은 종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진심 어린 위로'라고 생각한다. 슬펐을 때 가장 친한 그 누군가에도 조차 내 속내를 보여주기 조차 힘든 그런 순간에 맞이하는 그때, 하얀색 종이 위에 거짓 없이 진실되게 그 마음을 오롯이 드러내다 보면 그날만큼은 한없이 초라하고 하찮한 자신이 미워서 견딜 수 없을지라도 훗날 세월이 흘러 똑같은 장면을 다시 회상하며 그 글 속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며 그 글을 읽어볼 때의 내 모습은 기록한 날의 모습과 절대 오버랩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없이 많은 순간에 좌절하고 괴로워했던 나 역시도 지금은 그 순간들을 자주 다시 마주해서 읽어보지는 않지만 그때 내가 그 글을 써 내려갈 때의 진심은 그 순간이나 다시 마주 볼 용기를 내 모습과 같은 사람이 쓰고 읽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만큼은 남들보단 나에게 관대하려고 노력한다. 

  실수를 해도 예전처럼 화부터 내고 모든 화살을 나에게만 쏘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처럼 나에게만 화를 내고 미워하고 고통을 주진 않는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에게 써먹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하겠지만 이미 충분히 힘든데 나 스스로 타인의 잣대로만 생각하고 판단할 경우 좋은 결과로 오지 않는다는 걸을 체험한 후부 터는 잘못된 일에 대해선 엄격하게 반성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문제 될만한 일은 처음부터 시작조차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다. 

  살아보니 나를 남들보다 더 미워하며 힐난하며 살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때의 내가 누구보다 내가 더 힘들다는 걸 알고부터는 조금은 덜 피곤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어릴 적엔 더 좋은 사람이 되어보고자 필요 이상의 감정의 에너지를 쏟다가 지친 적도 여러 번이어서 그때마다 내 감정을 힘들게 하면서 얻는 그 어떤 게 나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건지 생각해보니 생각보다 그 가치가 높지 않았기에 그럴 바엔 나와 사이좋게 지내고 나에게 늘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기쁘게 사는 편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훨씬 덜 지치면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좋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이해되지 않은 삶이 없는 게 아니라 나와 타인 그 누구도 힘들지 않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을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루는 금방 가지만 그 하루들이 모여 1년이 되고 2년이 되어 세월로 흘러가면서 배우는 그 수많은 감정들에게 배우는 그 많은 것들을 놓치기 싫어서 나는 오늘도 기록을 한다.   많은 것을 갖고자 부러워하며 동경하던 삶이 예전처럼 부럽지 않은 나이가 되고 보니 지금이 삶과 하루도 그저 감사하고 좋다. 거창한 하루가 기대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를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그 행복한 감정들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그 순간들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사랑이라는 말은 나처럼 톰보이 기질의 여자에겐 낯설고 이상한 감정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감정을 드러내고 사랑해 사랑해 라고 말하는 일 또한 상상만 해도 간지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지금의 나이에서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배려하려고 노력하며 그 누구라도 내 마음대로 어떤 선입견을 갖고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오래된 내 사람들이 주는 평온함을 타인들을 통해선 쉽게 느끼기 힘들기 때문에 인연이 되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하되 내 마음대로 상황이나 생각을 마음대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건 괜한 선입견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내 마음속의 나에게 먼저 충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내 친구들과 내 사람들을 생각하면 생각만 해도 좋아서 마음이 울렁울렁거린다.

  실제 보면 아무 말도 쉽게 못 할 만큼 밍숭 밍숭 한 쭈뼛대며 스타일로 나가기도 하지만 만나기만 해도 마음이 떨리는 이 감정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랑받고 사랑하고 변하지 않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 삷에 늘 더없이 감사한다. 이 또한 나이가 주는 선물이자 세월이 알려준 지혜이기에 나는 오늘이 감사하고 좋았던 것처럼 내일도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행복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예전에 책에서 읽은 대로 만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보다 내 사람들이라고 여겨 크리스마스 카드 5장을 보낼 사람을 떠 올릴 수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에 이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나이는 무겁지만 하루하루 성실하게 타인과 함께 나눈 행복과 기쁨 그리고 그 외의 여러 가지 감정들에게도 늘 배우기 때문에 삶은 신이 인간에게 준 큰 선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