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걸어왔던 시간들 - 김윤식 편 ⓶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by 홍지승

기록의 DNA 덕분에 취미가 일로 이어진 케이스.


그는 인터뷰 중에 자신과 형은 기록에 대한 남다른 DNA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무엇이든 잊지 않으려고 했었고 어떤 순간마다 기억을 위한 기록의 행위만 놓고 보면 그의 표현에는 꽤 많은 공감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꼭 글이나 메모가 아니더라도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진이나 영상으로 그 시간을 기억해 두는 일 또한 분명 남다른 일가견이 있거나 그 일 자체에 흥미가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련의 모든 행동들이 만약에 어느 날 갑자기 남들을 의식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그런 움직임들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때 형이 집에 사다 놓았던 카메라 한 대를 이야기했다. 어쩌면 그는 사진과 맞이할 제2의 운명이 될 첫 시작점에서의 그 매개체가 카메라가 될지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남들과 달랐던 기질적인 특별함 덕분에 집에 놓여있던 카메라를 무심코 지나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성능 좋은 노트북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글을 쓸 수 없듯이 그의 집 한편에 있었던 카메라가 본능적으로 그의 눈에 띄었다고 해도 그가 카메라를 배우지 않고서는 능숙하게 카메라를 다루고 사진을 찍고 멋있는 작품사진으로 만들 수 있게 될 때까지에는 많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해야 했다.

그의 말대로 인생의 성실한 기록자가 되기 위해 카메라를 선택한 그에게 카메라에 대한 애정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기록을 사랑해서 글을 선택하는 기록자가 있다면 그처럼 사진을 위해 매개체로 카메라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기질적인 DNA가 있어야 자꾸만 그 물건에 눈길이 가는 것이 맞는 일이었고 또한 그것을 보란 듯이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는 누구보다 카메라를 잘 다루고 싶었을 것이다.

발레리노로 활발하게 활동했을 때도 오전, 오후는 발레 연습을 할 때에는 발레연습에만 집중했었겠지만 퇴근 후에 그의 삶은 대부분 사진작업에 많은 부분 할애하게 되었고 그가 발레단 생활을 할 당시에도 발레단의 굿즈를 만들어 보았던 경험도 있었고 대중 문화인 케이팝(K-pop) 안무를 부탁받아서 안무를 짜 본 적도 있었지만 그 모든 일들이 그가 다시 또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연결고리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했다. 그런 걸 보면 우연이 필연으로 되기까지의 일들이나 취미가 직업으로 다시 이어질 수 있을 만큼의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오랫동안 긴 걸음을 참고 걸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롤모델


그가 사진을 배울 때부터 그의 롤모델은 자신의 대학선배 이자 직장 선배이었던 발레리노 출신의 박귀섭 사진작가 (활동명: Baki) 라고 말했다. 자신보다 먼저 그 길을 걸어갔고 그의 멋진 행보를 보면서 돈을 떠나서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멋있는 사람이었고 발레단 내에서도 춤도 잘 추었던 스마트한 멋진 선배라고 소개했다. 그가 무용수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은퇴 후에 사진작가의 길을 멋지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그의 발자국을 따라가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의 사진에 대한 막연한 감정이 있었을 때 선배가 보여준 모범적인 모습과 그가 보여준 세심함과 예술성 그리고 추상적인 것조차도 무용동작을 통해 잘 표현해 내고 이미지화하는 그를 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인생 1막에서 선택한 일이 '발레'이었다면 그가 발레계 은퇴 이후의 제2막의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사진'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선택의 이면에는 자신보다 먼저 그 길을 개척한 선배 덕분이었고 그 길을 뒤에서 보면서 그도 이 길로 나아가도 되겠다는 마음을 먹은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걸어갈 수 있었다.


사진출처: ⓒ 박귀섭(Baki) 작가. 본인제공.




체코 국립발레단에서의 활동


국립 발레단 활동에 매진하고 퇴근 후에 사진을 배우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던 그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국립 발레단에서 은퇴 이후에는 무조건 외국 발레단에 입단해서 꼭 그곳에서 활동하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 말에 갑자기 왜 그러셨나요? 하는 나의 질문에 그는 어떻게든 꼭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고 한국에서처럼 틀에 박힌 사고가 싫었기 때문에 그렇게 새로운 삶에 들어가 그 안에서 또다시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삶을 꿈꾸며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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