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용수로 산다는 것은-김기완 편⓶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의 위엄.

by 홍지승

발레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우리가 무대 위에서 보는 발레가 역사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발레의 전통은 최고로 중요한 것이다. 이 전통의 지속성은 대부분 개인으로부터 개인에게, 발레 마스터로부터 댄서에게,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전수된다는 특성이 있다. 이 개인적인 접촉은 댄서들로 하여금 과거 속에 위대한 발레의 인물들과 직접적인 연결을 갖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댄서들 개인은 각자 그들의 스승을 통해 그 스승의 스승과 연결되고 그런 식으로 하여 발레의 초창기 스승에게까지 연결되어 그들의 테크닉을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발레의 전통은 오늘날 공연되는 발레 속에 그리고 댄서들 각자의 테크닉 속에 바로 그들의 살아 있는 육체 속에 존속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이덕희. 「불멸의 무용가들」 중에서. 작가정신. p.23




사진출처: 작가 본인. 2025년 12월 14일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중에서 커튼콜 때 주역 무용수 김기완의 모습.




발레로 말할 수 있는 그의 터닝포인트의 순간들.


앞서 말한 대로 그는 한국발레의 교과서 이원국에게 발레를 배웠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쳐 한예종 예비학교 시험을 준비하다고 말했을 때 이원국은 블라디미르 킴과 마르가리따 쿨릭 선생님께 발레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이유인 즉, 예전에 한국에서 그분들과 함께 공연을 하면서 그들의 춤을 보고 "아~발레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마음이 처음 들었다고 하면서 그분들에게 너희가 춤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놀랐던 순간을 기억해 냈다. 그분들은 직접적으로 언어적 소통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으나 '발레'라는 키워드 하나만 놓고 봤을 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조차 아름다운 일로 기억하고 있다고도 했다. 또한 그가 대학시절 가장 기억나는 사건은 공연 연습 중에 부상을 당해 오른쪽 다리 아킬레스건이 파열된 순간을 꼽았다. 1년 6개월이나 쉬어야 했고 준비했었던 무용 콩쿠르도 나가지 못하는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가장 혈기왕성하고 가장 잘할 수 있었을 때 발레를 하지 못하게 된 그 상황에서의 그는 조급해하지 않고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그는 자신이 12살 때부터 발레에 올인했지만 그때 그가 택한 마음 처방전은 그저 방학을 맞아 처음으로 쉬어보는 학생의 기분을 내면서 재활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마음이야 말로 다 전할 수 없었겠지만 그 고통을 참아가면서도 발레를 하고자 했던 그 마음에 그 어떤 다른 것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런 마음으로 꽤 긴 시간에 재활에 참여했고 준비한 덕분에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이겨내고 국립발레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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