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파는 '브랜드'
어렸을 적 부모님과 쇼핑몰에 가면 알록달록하고 향기 좋은 걸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항상 그 앞에 서성이다. 부모님께 졸라서 몇 개를 사고야 말았다. 그중 하나가 입욕제였는데 그냥 단순한 입욕제가 아니라 정말 사람을 홀리는 색을 띠고 있으며 먹고 싶을 만큼 정말 좋은 향기를 가졌다. 이 입욕제를 파는 곳은 바로 '러쉬(LUSH)'라는 곳이었는데, 이 매장에 가면 직원들이 항상 밝게 손님들을 반겼고, 손님들이 제품 테스트하는 걸 전혀 망설임 없이 도와주었다. 어릴 적 러쉬는 나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러쉬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성장해 갈 무렵 원래 목표는 약대였다.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현실을 상대로 목표를 이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재수를 해서 경영학과에 진학하였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향이었다. 그렇게 애매한 감정을 가지고 학업을 이어나가던 중 알바를 해야 될 시기가 찾아왔다. 그래서 어떤 알바를 할까 고민하다가 눈에 띄는 공고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건 바로 '러쉬' 알바 공고였다. 이 공고를 보고 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컸지만 최소 근무 일수가 주 3회이고 계속 풀타임이어서 학업과 병행할 자신이 없었어 그래서 망설였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마음에 유튜브에 러쉬 관련 영상을 검색해 보니 정말 재미있어 보였다. 영상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결국 지원하였다. 사실 단순한 알바에서 붓기에 그렇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알바 면접 후기를 보니 생각보다 붙기 힘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뒤로 열심히 준비하였다. 내가 즐겨 쓰는 제품에 대해서 더 찾아보고, 더 나아가 러쉬가 어떤 기업인지,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제품이 좋아서, 매장에 방문하면 직원들이 친절해서 브랜드에 대한 호감이 생겼는데, 더 깊이 알아보니 러쉬라는 브랜드가 가진 철학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러쉬는 번 돈을 캠페인에 다 쓸 만큼 사회적 활동에 관심이 많고, 자신들이 생각한 가치에 맞는
예를 들면 동물 보호를 위해 모든 제품 임상 실험을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다. 또한 인권 보호를 위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로 업무상 지침을 만들어 두는 등 정말 많고 사소한 것들에 그들의 가치가 담겨 있었다.
면접 준비를 하면 할수록 러쉬에서 일을 하고 싶어 졌고 더욱 간절해졌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알바를 지원한 매장으로 약속 시간보다 20분 먼저 갔다. 그랬더니 천천히 매장을 구경하고 있으라고 하였다.
그러고 나서 몇 분 뒤에 어떤 직원분이 와서 손을 시켜주겠다며 개수대로 나를 데려갔다. 그때 너무 긴장해서 손을 부들부들 떨며 손 씻김을 당했다. 그 직원분이 물어보는 질문이 한 귀로 들어왔다 한 귀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긴장을 한 상태로 면접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고 나서 어떤 남자분이 다가와 나를 어디론가 연행해(?) 갔다. 그곳에는 어떤 여성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매니저님이었고, 나를 데려온 남자분이 부매니저님이었다. 그렇게 2 대 1 면접이 시작되었다. 초반에는 너무 긴장해서 말을 너무 많이 더듬어서 속으로 이건 망했다고 생각했다. 망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렸는지 마지막으로 갈수록 질문에 대한 답을 더 잘했다. '나는 떨어졌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면접이 끝난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원래 같으면 지하철을 타려고 집 도착해서 다시 연락했겠지만 뭔가 느낌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지하철을 그냥 보내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아보니 러쉬 채용 담당자분이었는데 그분이 나에게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곧 매니저님이 연락할 거예요"라고라고 하셨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떨어질 줄 알았는데 면접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렇게 전화가 올 줄 몰랐다. 이 연락을 받고 몇 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실감이 났다. 그래서 든 생각이 면접을 보면 대부분 합격하나 보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첫 출근일만 기다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첫 출근일이 되었고 기대 반 걱정반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출근했다. 출근하니 다들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매장에 들어가기 전 매니저님과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니저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왜 합격한 것 같아요?"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러쉬의 기업적 가치가 저랑 잘 맞아서 합격한 것 같아요...!"
그랬더니 매니저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저희는 말로 하는 언어보다 몸으로 하는 언어가 더 중요하게 보는데, 선준 님이 면접 볼 때 처음에 눈도 잘 못 마주치고 그랬지만 마지막엔 눈도 잘 마주쳤는데 그 눈을 잘 마주치는 게 '몸의 언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잘해 주었기 때문에 합격시켰어요."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내 면접을 되돌아보았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평소 사람들이랑 대화할 때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아 왠지 뿌듯하게 느껴졌다. 매니저님 말씀 덕분에 대화할 때 몸의 언어, 즉 '바디 랭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내 첫 근무가 시작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일단 매장과 친해질 수 있도록 계속 둘러보고 제품을 구경했다. 만약 사람이 많아서 다른 직원이 응대를 못할 경우에 짧게 응대하고 다른 직원분들의 응대가 끝날 때까지 손님을 붙잡아두는 게 나의 일이었다. 그렇게 맡은 바를 잘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뭐가 뭐였는지 모르겠는 하루가 지나가고 바로 다음 날 또 출근을 했다. 별로 한 게 없었지만 피곤했다. 그래도 틈날 때마다 다른 직원들이 어떻게 응대하면 되는지 알려주시고, 나랑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동기 누나와 같이 교육을 듣기로 하였다. 점점 적응해 갈 무렵 나에게도 정식으로 닉네임이 적혀 있는 명찰을 받았다.
그 명찰을 받으니 느낌이 이상했다.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모르는 모든 일을 하지 못하지만 모든 일을 못하지만 명찰을 받았다는 사실에 뭔가 이제야 진정한 러쉬인이 된 것 같았다.
알바를 방학 때 시작했는데 벌써 개강을 하게 되었고 학업과 알바를 병행할 수 있을지 약간 걱정되었다. 학교는 멀리 있어서 평일 화수목에만 학교 기숙사로 갔고, 나머지는 본가 근처에 있었다. 나머지 4일 중 3일은 풀타임으로 일했고, 쉴 수 있는 하루마저도 대회 활동을 하느라 쉴 수가 없었다. 친구들을 만나 놀 여유도 없었지만 일을 그만둘 순 없었어. 왜냐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일을 하는 데 보람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고객님께 어떤 제품을 추천해 주었을 때 좋아하는 모습이 나에게 성취감으로 다가왔고, 동료들이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즐거워졌고,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해 가는 것 같았다.
또한 정말 힘들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하지만 쉬는 날 없이 거의 세 달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스스로의 한계에 봉착했다. 몸과 마음이 둘 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기력해져 가는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험 기간이 다가와 정말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이 찾아온 것이다. 이때 거의 좀비 상태로 있었는데 이때 시간 한 사건이 터졌다. 내가 3분 정도 지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전날 너무 피곤해서 알람을 여러 개 맞춰 놓았지만 결국 듣지 못했다. 그래서 매장에 들어가기 전 매니저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매니저님은 왜 늦었냐고 여쭤보셨고, 나는 전날 학교 행사가 있어 늦게까지 잠을 들지 못해 늦잠을 잤다고 말씀드렸다. 서운하게도 그 스스로 일정 관리를 못한 잘못이라며 꾸짖으셨다. 너무 다 말씀이라 할 말이 없었다. 깊이 반성하고 있었다. 매니저님이 다음에는 늦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때 나는 마음에 다음에 늦지 않을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래서 나의 상황을 솔직하게 말씀드렸고, 건강 문제로 인해 주 3일 출근은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한계에 다다른 나는 그만둘 각오로 매니저님께 말씀드렸다. 나의 지각으로 다른 직원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거면 내가 그만두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님이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시더니 나에게 이 일을 하는 게 즐거운지 물어보셨다. 난 약간 망설이다 대답했다.
"예전엔 정말 즐거웠는데 지금은 너무 힘이 들어 잘 모르겠어요."
그랬더니 매니저님이 한 가지 제안을 해주셨다.
"주 3회 출근 말고 주 2회 출근만 하는 건 괜찮아요?"
나는 속도 없이 바로 긍정의 끄덕임을 하였다. 그러고 나서 매니저님이 스케줄 조정을 해주셨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그만둘 각오로 이야기를 꺼냈는데 정말 다행히도 배려를 해주셨다. 주 2회 출근 후에도 여전히 바빴지만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아서 살 만했다. 그래서 즐거운 러쉬를 학업과 병행할 수 있게 되었다.
여러 행사가 겹쳐 정말 바쁘게 일을 했고, 정신없는 연말을 맞이할 무렵 한 통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다음 달 부로 입대하시기 바랍니다. 그 문자를 보고 순간 뇌정지가 왔다. 너무 예상치 못했듯 입영 통지가 왔다. 입대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나는 고민하였지만 결국 입대를 결정했고 매니저님께 말씀드렸다. 너무 갑작스럽긴 했지만 매니저님께서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다. 그렇게 유종의 미를 거두어 갈 때쯤 마지막 출근일이 다가왔다. 마음이 싱숭생숭했고, 정이 너무 많이 들어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퇴근 시간이 다가왔고, 그 무렵 매니저님이 나에게 편지 하나를 보내주셨다. 열어보니 전 직원들의 마음이 하나씩 담겨 있었고, 다 같이 돈을 모아 나에게 스파 바우처를 선물해 준것이었다. 다들 너무 감사했다. 눈물이 날 뻔했지만 간신히 참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직원분들이 나를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해 주었다. 다들 너무 고마웠고 정말 잊지 못할 행복한 알바 경험이었다.
사실 말이 알바지 거의 가족과 같이 느껴졌다. 이 기억들이 나에게 온전히 스며들어 나의 새로운 목표를 만들게 해 주었다. 이 경험을 토대로 나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경영학과에 진학하면서 막연히 나중에 회사를 차려야겠다는 꿈이 러쉬로 인해 '가치를 실현시키는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목표가 생겼다. 더 이상 추상적인 꿈으로만 치부되던 회사 CEO가 아닌 명확하게 윤리적인 가치를 토대로 사람들에게 가치를 파는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앞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배움의 자세를 지니며 항상 겸손한 태도로 브랜드 가치를 하나둘씩 세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