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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양 Oct 18. 2020

세 번째 페르소나: 혐오와 좋음은 티 내지 않기(1)

 1. 해원은 대학교 2학년 때쯤 1년 동안 짝사랑하던 과 선배가 있었다.

사실 짝사랑이기보다, 존경과 호감을 오갔던 긍정적인 감정을 짝사랑인지 아닌지 긴가민가 했다.

무튼간에 해원은 그 선배의 취향, 말투, 생각을 닮고 싶어 했다는 건 분명했다.

그래서인지 대학생이었던 해원에게 영향을 가장 많이 끼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해원은 짝사랑 아닌 짝사랑이 일방적으로 끝이 날 때, 울면서도 사랑인 줄 몰랐다.

억울하고, 속이 타 분노에 차올라 눈물이 난거지 사랑했기에 힘들어했는진 몰랐다.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선배를 많이 좋아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갔다.


2.  해원의 과는 정치판 같다. 남의 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비교와 부러움이 공존하는 과였다.

해원은 과 사람들 입방아에 많이 올라오는 인물이다. 선배들을 통해 인턴 경험을 쉽게 하며 왠지 모르게

운이 좋아 취업과 좋은 인연의 기회가 잦았던 해원은 함께 열심히 하는 동기들에게도, 소수의 선배들에게도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해원의 선배 중 한 명인 영아는 특히 해원을 아니꼽게 봤는데, 영아의 주장으로는

잘난 것 없어 보이는데 사회성 하나로 (특히 남자 선배들에게만) 쉽게 원하는 것을 갖는 해원은, 그 어떤 것도 스스로 못해낼 것이다.라고 주변 동기들에게 말해왔다. 그리고 주변 동기들은 적극적으로 동의를 표하진 않았지만 맞는 말인 것 같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안주했다.


3. 그런 과에서 지내온 해원은 사실 뒤에서 해원을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무능력자, 사회성으로 먹고사는 사람, 필요에 의해 관계를 맺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입을 거쳐 듣기도 했고, 해원을 싫어하는 동기 앞에서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모욕을 당하면서 해원은 속으로 그 동기를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겨우 찾은 내 단점으로 네 자존감을 채우려 하는 너는 행복하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해원은 모욕을 당하면서 울거나 감정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그냥 듣기만 했다.


4. 선배를 많이 알고 지내고, 잘 웃는 성격에 호감형인 해원은 늘 후배들이 친해지고 싶어 하는 선배였다. 하지만 해원은 후배들을 챙기는 선배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는 인정한다. 해원은 선배들이 더 중요했고, 취업을 적극적으로 돕진 못하더라도 도움되는 사람에게 노력을 쏟아붓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해원을 후배들은 더 좋아했다. '언니 나랑 오늘 저녁 먹어요.', '언니 그 선배랑 많이 친해요? 저랑도 친하게 지내요.'라고 2년 동안 꾸준히 먼저 다가오는 후배들에 해원은 어느덧 좋은 선배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쯔음에 해원에겐 안 좋은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해원이 인턴을 하는 동안 해원의 동기와 선배는 해원을 철저히 사회성으로 먹고사는 무능력자의 이미지로 만들어놓았고 해원이 학교에 돌아오자 후배들은 싸하게 뒤돌아섰다. 해원은 원래 자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선배의 시선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많은 정을 주었던 후배와 친한 동기들의 시선은 해원을 못 버티게 했다. 해원의 존재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해원을 필요로 했고, 이제 해원은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좋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원은 본인도 필요에 의해 선배를 알아가는 자기를 되돌아보는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5. 해원은 억울했다. 사실 사회성도 노력이다 라고 생각했다. 왜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해원을 사회성을 통해 취업했다고 몰아갈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하면 그 사람과 교감을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이해가 필요한지 모르거나 하지도 않으려 하면서 왜 해원을 아니꼽게 볼까. 그리고 해원은 사실 노력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자소서를 써서 서울에 있는 선배를 찾아가 피드백을 받기도 하며, 일을 할 땐 2시간이나 일찍 와서 업무를 익히려 하며 스스로의 발전에 누구보다 박하고 실천이 빠른 편이다. 무엇보다 이런 모습을 선배들에게도 보여주고 활용할 줄 아는 후배였다. 그래서 해원은 이번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어떤 피드백도 받지 않고 6개월 동안 준비해, 원하는 기업의 인턴이 되었다. 심지어 채용 연계형 인턴이다. 해원은 사실 스스로가 붙을 줄 알고 있었다. 다른 길에서 선배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만 해원은 해원이 잘했기 때문에 그 도움이 통한 것이고, 해원은 해원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언제나 있었기 때문이다.


6. 해원의 취업 소식은 금방 과 사람들에게 소문이 났다. 다들 졸업을 했고, 해원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해원의 소식을 보러 영아는 해원의 SNS 염탐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묻기까지 했다.

영아는 해원이 스스로 들어갔는지의 유무가 중요했다. 선배의 도움을 받고 들어갔어야 영아의 마음이 불쾌하면서도 편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배들은 해원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해원은 연락을 아무렇지 않게 받고 인연을 이어갔다. 좋아서가 아니다. 속으로는 후배들을 혐오하고 있다. 하지만 해원은 애정 없는 웃음으로 후배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고민을 들어준다. 해원은 후배들이 영원히 마음속 짐을 가져갔으면 한다. 자기와 마주할수록 해원을 험담하고 방관했던 지난 일을 되새길 것이다. 그러면서도 해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자기들의 상황을 마주했으면 좋겠던 해원은 그저 건조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7. 회사를 다니고 있는 해원을 영아는 늘 궁금해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해원의 근황을 늘 이렇게 말한다.

'걔 그 선배 좋아했잖아'  비아냥 거리는 말투엔 해원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담겨있다. 해원은 늘 궁금했다.

나도 몰랐던 감정을 영아 선배는 왜 함부로 단정 지으며 말하고 다니지. 해원은 화가 났다. 해원은 그 선배가 정말 소중한 추억이었고, 정말 아픈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을 해원을 무시하는 도구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해원은 영아 선배와 동기들, 그리고 후배들이 해원에 대한 소문을 내고 믿었을 때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해원을 동정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도구가 그 선배를 좋아했던 감정이라는 점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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