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양 Sep 15. 2020

젊음을 쥐고 흔드는 사람

두 번째 페르소나 : 남이 보는 나, 내가 보는 나

해원이 인턴으로 첫 번째 입사한 회사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그중 한 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다.


 해원은 언급했듯이 앳된 외모를 지녔다. 그래서인지 스스로가 화려함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수수하게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해원의 모습을 보고 여팀장님은 "해원 씨는 고등학생인 우리 딸

보다 더 어린 거 같아. 요즘 사람 같지 않게 화장도 연하고, 참 수수해서 정이 가." 왠지 해원은 칭찬처럼

들리진 않았지만 웃으면서 넘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팀장님은 푸근한 인상이시고, 왠지 옆집에 사시

면서 반찬 나눠주실 것 같은 느낌이에요.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으실까' 


 해원의 자리는 팀장님 자리에서 가장 먼 자리이다. 하지만 팀장님은 늘 해원에게 다가와서 아침은 먹고

다니는지,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물어봐주신다. 해원은 늘 감사한 마음으로 팀장님에게 미소를 띠며

대답을 한다. 참 정이 있으신 분이야라며 좀 더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려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의심으로 바뀌어졌다. 해원이 작은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건 해원 씨에게 줘요." 그렇게 해원에게 돌아온 건 5,000장의 주차증을 일련번호 순대로 확인하는 것과

20,000장의 명함 정리 그리고 회의실 정리. 해원이 지원한 부서는 분명 마케팅팀이었다. 하지만 해원이 맡은 건 마케팅일의 자잘한 일과도 분명 거리가 멀었다. 적어도 엑셀 정리가 잡일의 마지노선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나름 이곳저곳 인턴일을 많이 해왔는데.라는 생각이 일하는 와중에도 떠나가질 않았다.


 그렇게 땀 뻘뻘 흘리며 12 곳의 회의실 정리를 한 해원에게 팀장님이 다가와 많이 힘들었죠?라는 말로 시원한 음료를 건네기도 하고, 가끔은 소소한 선물을 건네기도 한다. 해원은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마케팅일인데, 이 정 많으신 분은 나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해원은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속없게 해실 해실 웃을 수도 없는 노릇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그 답답함의 원인을 해원이 부서이동을 하기 일주일 전에 알게 되었다. 해원의 부서 이동 소식을 듣고 팀장님은 해원 책상에 수북이 쌓인 1년 치 서류를 올려놓으시며 말했다. 아,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으시며.

"해원 씨 1년 치 서류인데, 정리 부탁해요. 조금만 수고해줘요." 해원은 그래도 마케팅일을 조금이라도 시킬 줄 알았다. 하지만 남은 일주일간 결재 서류 1년 치를 정리해야 했다.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는 해원에게 팀장님이 다가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주며 안쓰럽듯 웃으며 말했다. '많이 힘들죠?'


 해원은 그제야 알았다. 이 사람이 내 젊음을 쥐고 흔들고 있었구나. 조그마한 친절에 감동하고, 조그마한 칭찬에 의욕 생기고, 조그마한 웃음에 마음 주는 젊음을 이용했구나. 팀장님은 해원의 젊음을 존중해주지 않았다. 도구로 생각하고, 언제든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젊음이라고 생각했다.


 해원의 옆자리 대리님은 늘 기분파에다가 욕을 달고 살았다. 전화가 끊기면 그 사람 욕을 하느라 시간이 다 갔다. 회사 첫날 오자마자 가장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닌 웃으면서 안부를 물어봐주는 팀장님이 해원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 줄은 해원도 몰랐다. 


 해원은 버스에서 생각했다. 동정 섞인 응원은 하지 않고, 젊음을 얕보지 않는 마음을 갖고 싶고, 내가 누군가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은 갖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무엇보다 젊음을 값싸고 대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그런데 요즘 그런 어른이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페르소나 :남이 보는 나, 내가 보는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