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한 아이들과 달리 안절부절못하는 쪽은 수정이었다. 수정은 그럴 때마다 아이들을 더 열심히 가르쳤고, 더 조용히 시켰고, 더 많이 다미를 칭찬했다. 칭찬할 만하기도 했다. 결말이 서두에 비해 꽤 성의 없이 마무리되곤 했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초반에 글을 꽤 잘 썼다는 말이기도 했다. 수업 때는 칭찬을 입에 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수정은 칭찬에 박한 성격이었다. 왜 이리 성정이 박한가를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부모의 간헐적인 부재를 더듬어야 했기에 수정은 그저 모난 성격이라 치부했다. 그러므로 다소 무뚝뚝한 교사가 됐다. 그런데 어쩐지 다미의 글 앞에서는 칭찬이 쉽게 나왔다. 그래봤자 ‘이 문장이 참 재미있네’ 라거나 ‘글을 참 잘 쓰는구나’ 정도였는데, 그게 5학년 다른 아이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모양이다. 어느 날 5학년 아이가 팩 하니 소리를 내질렀다. “내 지우개 그만 빌려 가!” 그러고 보면 다미는 내내 아이들에게 지우개를 빌리고 있었다. 크레파스나 색연필 같은 것은 미리 준비해 두기에 티가 나질 않았는데, 그 외 문구들은 어김없이 친구 것을 빌리고 있었다. 아니다. 친구는 아니랬지. 또 다른 5학년 남자아이가 말했다. “쟤는 지네 반에도 친구 없어요.” 수정은 못 들은 척 수업을 이어갔다. 수업 종이 울릴 때를 맞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여기서는 모두 친하게 지내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다음날부터 수업 준비 물품에 지우개를 포함했다. 교구함에 색색의 지우개를 넣으며 수정은 다미와 자신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재개발을 부러 기다리는 것 같은 허물어진 주택이 촘촘히 모여 있는 동네에서 온 아이들과 새로이 지어 올린 아파트에서 온 아이들이 섞여 있는 학교였다. 다미는 낡은 골목을 걸어 학교로 오는 아이였다. 수정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진 않았지만 가난으로 인해 불행하지 않았다. 친구가 이리 없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지우개를 조몰락거리는 다미를 볼 때마다 수정은 자꾸만 어린 시절을 건져 올렸다.
묘사하는 법을 가르친 날이었다. 수업 명칭은 거창했지만, 가지고 있는 물건 하나를 택해 모양과 특징을 글로 표현하게 하는 흔해 빠진 수업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고르려고 필통과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소중한 물건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도, 가진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그리고 싶어 했다. 반면 양말이나 실내화를 그리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그날도 4학년 아이가 며칠 전에 산 운동화를 그리겠다고 신발을 책상에 올리자 아이들은 비명에 가까운 야유를 보냈다. 냄새 같은 것은 품어본 적도 없이 반짝이고 자그마한 운동화였지만, 그 나이 때 아이들이야 원래 그랬으니까. 시무룩해진 아이는 운동화를 다시 꿰신고 카드지갑을 꺼냈다. “운동화도 멋졌는데, 나중에 따로 글로 써보자.” 그렇게 수습에 가까운 위로를 건네는데, 또다시 교실이 시끌시끌했다. 이번에는 다미가 가방을 엎듯이 뒤집어 물건을 꺼내고 있었다. 종이 뭉치와 연필, 볼펜 몇 자루, 지우개 한 개, 공책 한 권이 개수에 비해 요란스럽게 책상에 떨어졌다. “선생님, 얘 가방에 책이 하나도 없어요.” 누군가는 일렀고 다른 아이는 소리쳤다. “더러워.” 아이들은 근처에 있지도 않았지만, 의자를 옆으로 끌며 더 가까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수정은 태연함을 가장하며 물었다. “다미는 무얼 그리려고?” 다미는 선택의 길목에 놓인 것처럼 너저분한 물건들 사이에서 진지했다. 고를 물건이 없다는 것은 수정 눈에도 보였다. 아이들이 하나씩 찬 색색의 팔찌나 시계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미야 말로 운동화 같은 것을 책상에 올렸다가는 비명으로 끝나지 않을 테였다. 수정은 다미의 빈곤을 감추기 위해 가방의 어수선함을 꺼내 들었다. 다미도 가방 정리하기 싫어하는구나. 선생님도 어렸을 때 그랬는데. 다미가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도 그랬어요?” 수정은 단호하게 끄덕였다.
첫 수업에 들어가기 전, 주임은 수정에게 주의사항을 몇 가지 알려줬다. 논술 학원도 많은데 굳이 방과 후 수업으로 글짓기를 배우려는 아파트 아이들은 없다고 했다. 대부분은 슬레이트 지붕과 고층 아파트 사이, 그 어디 중간쯤의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래도 다 얌전한 아이들이에요.” 그래도, 라니. 수정은 주임이 사용한 접속사에 물음표를 붙이고 싶었으나 잠자코 있었다. “딱히 어려운 점은 없을 거예요.” 어려움이 없는 초등반을 본 적이 없다만 이번에도 입을 다물었다. “다만” 이번에는 접속사가 ‘다만’이었다. 다만 몇몇은 슬레이트 지붕에서 왔다고 했다. 그리고 다만, “유다미라는 아이가 있는데. 좀 불안해요. ADHD이기도 하고. 약을 먹고 있어서 나아지긴 했는데, 수업 분위기를 해칠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사전 정보를 과하게 들은 덕분인지 다미는 예상보다 얌전했다. 그러니까 수업 중에 의자와 의자 사이를 징검다리 삼아 뛰어다니는 일 같은 것은 없었다. 생각보다 수업을 잘 따라왔고 글은 제법 꼴을 갖춰 썼다. 그 말을 주임에게 하자, 주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약을 먹는다니까요.”
수정은 다미가 약을 먹어 호전된 상태가 자신의 어린 시절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아갔다. 정리 정돈을 하기 어려워하고, 악필인 데다가, 자신이 관심이 없는 일엔 집중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다미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수정도 그랬다. 수정도 어릴 적에 글짓기 대회 상을 여러 차례 부모에게 안겨줬고, 그랬기에 부모는 수정의 어질러진 방 같은 것은 무심히 지나쳤다. 글 속에 가득한 상상력을 보니, 방 한 칸의 무질서도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의 부모는 방을 치우는 일이 어렵다는 말보다 수정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정돈된 상태라는 말을 더 듣기 좋아했으므로, 수정은 그리 말했다. 수정은 다미에 비해 나을 것 없는 가방을 들고 등교했다. 다만 그 가방에 교과서와 참고서를 넣어주는 부모가 있었을 뿐이었다. “다미는 할머니랑 같이 살아요.” 주임이 다소 귀찮다는 듯, 아니 임시직 강사가 왜 이리 학생 개개인에 관심이 많은지 알 수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 말해준 정보였다. 그러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선생님도 그랬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다미야, 선생님도 그랬다. 글씨 예쁘게 쓰는 게 어려웠어. 그런데 조금만 참고 조금만 반듯하게 써보자. 다미는 글을 참 잘 쓰는데 사람들이 글씨가 삐뚤삐뚤해서 못 읽으면 너무 아깝잖아.” 그럴 때면 다미는 되물었다.
“선생님도 그랬어요?”
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학기가 끝나기 전에 학부모들에게 보여줄 글 한 편을 완성해야 했다. 아이들과는 동심과 상상력을 나눠도, 그건 부모들과 나눌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흘려 쓴 두 줄짜리 동시는 창의력이 아니라 나태한 수업이라는 평으로 되돌아왔다. 어떻게든 아이마다 원고지 10장 분량의 글은 만들어 내야 했다. 아이들 또한 고학년답게 부모에게 보여줘야 하는 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그런 협조를 바탕으로 수업 시간은 묘한 열의로 불타고 있었으나, 그 열기에 비껴간 것은 홍당무 다미였다. 글을 완성해야 하자, 글쓰기를 향한 다미의 관심은 급속하게 사그라들었다. 가만있지 못했고 그대로 두면 의자를 징검다리 삼을 것 같았다. 그런 다미가 선생님도 그랬다는 말에 꽂힌 것이다. “선생님도 그랬어요?” “이런 것도 했어요?” 수업 중간 맥락 없이 물어왔다. “그럼, 그랬지. 그런데 다미야, 원고지 한 장만 더 쓰면 참 좋을 텐데.” 그때 다미가 자신의 소매를 올려 하얀 손목을 내밀었다. 손목 안쪽에 겹쳐 그어진 붉은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 선생님도 이런 거 했어요?” 수정은 반사적으로 물었다. 무얼 말이니? “자해요.” 칼로 그었던 곳이 아물어 생긴 자국.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만 대답이 우선이었다.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놀라울 만큼 다미를 무시했으나, 불편할 만큼 다미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봤다. 그것은 관심이 아니었다. 아이들만의 유희라 부를만한 행동이었다. 수정은 그 눈길들을 피해 답하는 대신 물었다. “그건 너무 무서운 표현이다. 안 무서운 표현 없을까?” 다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선생님도 아야아야 해 봤어요?” 아야아야라. 수정은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미는 어쩌면 표현도 귀엽게 하니. 글을 정말 잘 쓸 거야.”
다미의 손에 연필을 쥐여주며 수정은 10살 때 모은 방부제를 떠올렸다. 도시락 김 봉지마다 들어있던 방부제였다. 방부제 봉지에 먹지 말라고 쓰여 있어서 먹으면 죽는 줄 알았다. 스무 개쯤 모았을 때, 그걸 먹어봤자 죽지 않고 아프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세숫대야에 물을 담고 방부제를 하나씩 뜯어 부었다. 물속에 잠긴 하얀 알갱이가 개구리알 같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해주느니 웃는 게 나았다.
진료실에서 의사는 콘서타라는 약물 처방을 내리며 덧붙였다.
“어린 시절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요. 이제는 약물치료나 인지 행동 훈련으로 교정을 하면 되는 문제예요.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네요.”
무겁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의사의 말로 인해 무거워졌다. 수정은 무표정하게 그러나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해 문 앞에서 돌아서 고개를 숙이고 진료실을 나왔다. 한층 더 무거운 표정으로 간호사들에게 14개의 알약이 든 흰색 통을 받아들었다. 2주 후에 오라는 소리였다. ‘어린 시절은 지나간 일이니까요.’ 수정에게 어린 시절은 지나가지 않았다. 남지 않았을 뿐이다. 어릴 적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단기 기억력 주머니가 작은 것도 ADHD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어린 시절은 단기 기억이 아니라 추억이라 불리는 종류가 아닌가. 수정은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된 A 사이트에 들어갔다. ADHD 자조 모임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병원과 약물치료 정보를 교류하고 고민과 신세 한탄을 주고받았다. 이 대화들을 살피며 수정은 집에서 가까우며 검사비가 저렴한 병원 정보를 알 수 있었고, 질문을 가장한 한탄의 글도 올렸다. 어린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도 증상 중 하나인가요?
중학교 동창이 ‘그때 그 선생님이’라고 말을 꺼내면 수정이 해야 하는 대사는 정해져 있었다. 누구? “그때 그 수학 말이야” 그 뒤로는 침묵했다.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친구가 몇 학년 때 만난 애인지조차 헤아릴 수 없었다. 태준에게 자신이 전에 만난 애인들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그것이 단지 지금 연애 상대인 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의미로 덧붙여 한 말. 나는 내가 사람들과 뭘 했는지가 기억이 잘 나질 않아. 태준은 그 말을 귀담아듣지도 않았지만, 설사 그가 수정의 자취방에서 자신의 속옷을 찾는 데 집중하지 않고 대화에 집중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너 같이 기억력 좋은 애가?”라고 되물었을지도 모른다. 태준은 수정이 역사 속 인물의 디테일한 면을 기억하고 그걸 자신에게 알려주는 일을 지겨워했다. 몇 번 헤어질 위기를 겪으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겨움을 표현하는 방식을 바뀌었을 뿐이다. “유튜브를 하지 그래?” 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들이 쳐들어간 바스티유 감옥엔 실제 정치범이 아닌 날품팔이나 부랑자 몇 명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듣던 태준이 한 말이었다. 수정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좋았다. 그런 모순으로 점철된 것이 인간의 역사라고 생각하면 지금의 일상도 조금 숨 쉬고 살만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일상과 역사는 달랐다. 일상이 축적된다고 역사가 되진 않았다. 역사란 해석과 정제로 이뤄지지만, 일상이란 일분일초를 겪어내야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일상은 아무래도 수정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 증상은 관심 없는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