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수정이 국사 선생도 아닌 글짓기 수업 강사가 된 것은 아이러니였다. 글짓기 선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에세이 작가라는 한 줄짜리 경력 때문이었다. 수정이 자신의 글에 매일 같이 집어넣어야 하는 것은 지리한 일상이었다. 기억나는 것도 없으면서 자신의 삶을 긁어모아 200매 원고지 서른 장을 채워야 하는 직업을 갖다니. 그런 탓인지 수정은 흔해 빠진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 수정은 한 소설에서, 어떤 책이든 세상에 나오면 이상한 독자가 있어서 천 권은 팔린다는 말을 보았다. 수정 자신이 그런 독자이자 이상한 독자에게 선택받는 사람이었다.책을 내기 전부터 수정의 주 수입원은 논술 과외였으나, 대학 입시 전형이 개편되는 통에 방과 후 강사 자리를 소개받게 됐다. 방과 후 강사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곳이라, 수업이 없거나 방학이 되면 일절 한 푼 내어주지 않았다. 재충전의 시간이 임금으로 계산되는지 아닌지가 정규 직원과 임시직을 가르는 기준이 아닐까. 수정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 측면에서 태준은 ‘무기’라는 명칭이 붙긴 해도 재충전의 시간을 인정하는 직장이 있었다. 태준은 도서관 사서였는데, 구청이 용역을 맡긴 공단 소속이라 월급은 그다지 기대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계약직 앞에 붙은 ‘무기’라는 말이 평생직장을 의미했기에 태준은 수정에게 묘한 시샘을 불러일으켰다. 태준이 지닌 느긋함과 그 느긋함에서 비어져 나오는 무례함이 평생직장을 가진 자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만 같았다.
태준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누나가 있었고 외동이자 막내아들이었다. 막내, 아들, 평생직장. 이 세 조합이라면 인생에 너그러울 수밖에 없었다. 태준이 간혹 보이는 무례함은 너그러운 인생을 가진 사람이 타인에게 보이는 야박함이었다. 태준은 세상이 누구에게 야박한지, 반면 사람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덜 야박하게 구는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야박함을 드러낼 때 거름망이 될 판단 기준이-그것은 오롯이 경험으로 만들어지기에- 없었다. 12살짜리 다미마저 세상의 야박함을 깔깔거리는 웃음으로 방패 삼아 버티고 섰는데. 다미를 만난 후 태준을 보는 수정의 시선이 부쩍 야박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주임이 다미의 가정환경을 “할머니랑 같이 살아요”로 요약했던 날, 수정은 창문 너머 초등학교 운동장을 오래 바라봤다. 요즘 초등학교는 나무로 만든 미끄럼틀과 파스텔 빛깔 그네를 두고 있었다. “예쁘죠? 그래봤자 뛰어노는 애들도 없지만.” 코딩을 가르치는 강사가 수정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코딩은 몇 가지 소식을 더 알려줬는데, 같은 구에 있는 초등학교가 운동장을 워터파크로 만든 일이 기사로 크게 났다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이 학교 교장이 운동장을 활용할 방안을 찾아오라며 교무회의 시간마다 은근히 압박을 주고 있다고 했다. 코딩은 정교사들과 잘 지내며 학내 자잘한 소문을 섭렵했다. 수정보다 1년 먼저 이 학교에 온 것도 이유겠지만, 교육대학을 나와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신분 때문이기도 했다. 정교사들은 코딩이 언젠가는 동료가 될 거라 믿는 듯 굴었다. 그들에게 코딩은 후배였고, 수정은 임시 강사였다. 전해주는 풍문이 달랐다. 수정은 빨주노초 풀장이 생길지도 모르는 운동장을 지켜봤다. 자신이 어릴 때와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 있다면, 그건 늑목이었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정글북과 구름사다리가 사라진 자리에도 늑목이라는, 초등학교에 어울리지 않는 명칭을 가진 기구는 살아남았다. 얇디얇은 어릴 적 기억의 표면을 동동 떠다니는 이미지는, 잡으면 손에서 어김없이 쇳내가 나던 늑목과 구름사다리 그리고 교실 뒤에 붙었던 학급안내 게시판, 분식집에서 팔던 피카츄 돈까스 꼬치, 문방구 앞에 팔던 불량식품들. 그렇게 빨강이고 초록이고 노란색인 기억들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가 유독 알록달록하게 기억되는 것은 가판에 깔아 놓고 팔던 분홍 헬로키티 문구용품과 컬러풍선, 빨아먹으면 혀가 파래지는 사탕과 콜라 맛이 나는 젤리, 그런 류의 것들 때문이었다. 포장지가 전부 빨갛고 파랬다. 주황색이고 노랬다. 수정이 다닌 문방구는 학교로 이어진 오르막길 초입에 놓였는데, 젊은 부부가 운영했다. 아이들이 북적이는 등교 시간이면 아내인 여자는 가판 앞을 지키고, 남자는 계산을 했다. 그곳에서 수정은 요요와 과학 주머니, 캐스터네츠 같은 것을 사며 자랐다. 3학년이 되자 엄마는 가방을 둘러맨 수정에게 천 원짜리 지폐를 쥐여주며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사서 가라고 했다.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까 준비물은 직접 살 수 있지?” 엄마가 그토록 힘주어 말했던 까닭에는 새로이 출근하게 된 화장품 회사가 있었다. 엄마는 수정이 10살이 되었을 때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 경리로 취직했고 그곳에서 10년 근속을 했다. 규모가 작은 회사여도 사무직이었고, 결혼하고 임신하고 출산하고 애를 키운 후에도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엄마의 자부심이었다. 그 자부심을 알 나이는 아니었지만, 저학년이 아니라는 말에 동의했기에 수정은 천 원짜리 지폐 두어 장을 손에 꼭 쥐고 문방구로 힘차게 내달렸다.
문방구는 늘 북적거렸다. 학용품을 떨어트리는 아이, 구기거나 찢는 아이, 혼잡한 틈을 타서 무언가를 주머니에 넣는 아이, 모자란 금액의 돈을 가지고 온 아이, 잔돈을 안 받고 냅다 뛰어가는 아이. 그 사이에서 수정은 엄마가 적어준 준비물 목록 중 하나두 개씩을 빼고 물건을 사는 아이였다. 문방구를 나와 몇 걸음 걷다가 소고는 샀는데 샤프심은 안 산 것을 알아차렸고, 샤프심은 샀는데 색 도화지를 안 산 것을 기억했다. 친구들은 그런 수정을 위해 문방구에 같이 가주었고 수정은 그때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살았다. 하나씩 빼먹으며 자라나던 한 날, 알림장을 다 썼으니 새 공책을 사 오라는 담임의 말이 교문에 다 와서야 떠올랐다. 전날 담임은 엄한 얼굴로 말했는데, 그건 수정이 알림장의 뒷부분 몇 장을 뜯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알림을 적을 자리가 없었다. 담임은 마치 벌을 준다는 표정으로 수정에게 알림장을 새로 사라고 했다. 벌이 아닌 당연한 지시를 내리면서도 혼나는 기분을 느끼게 했던 담임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제법 연륜 있는 교사였을 것이다. 교문에서 문방구까지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으나, 이미 학교 안에 걸음을 들여놓았기에 다른 날처럼 친구들에게 같이 가자고 말하지 못했다. 철제 대문이 하는 역할이 그러했다. 안과 밖의 경계. 이미 경계 안으로 들어선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고 수정은 나름 비장하게 경계 밖으로 걸음을 돌렸다. 조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수정의 걸음이 빨라졌다. 알림장 노트는 오백 원. 수정에겐 천 원이 있었고 오백 원을 거슬러 받으면 되는 일이었다.
수정이 문방구 앞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조회 시간이 얼마 안 남은 터라 바글거리던 아이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텅 빈 문방구는 본 적이 없기에 수정은 왠지 낯선 기분이 되어 주춤거렸다. 문을 밀자 딸랑, 풍경 소리가 울리고 안쪽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 남자가 카운터 쪽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왜?” 수정은 왠지 침이 고여 단번에 대답할 수 없었다. “저, 알림장을 사려고요.” 주인은 턱 끝으로 공책이 쌓인 곳을 가리켰다. 수정도 무엇이 어디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자잘한 사물만 층층이 쌓이고 포개져 칸을 이룬 문방구가 어쩐지 낯설었기에 허락을 구한 뒤에야 조심스레 가판 사이를 걸었다. 고양이가 그려진 알림장을 골랐고 주머니 안쪽에서 천 원을 꺼낸 후에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에는 유리로 된 진열대가 있었는데-그 진열대에는 갖가지 장식품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것은 부모님과 같이 온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안쪽에서 꺼내져 나왔다- 수정은 그 위로 알림장과 지폐를 올려놓았다. 주인은 알림장을 힐끗 보더니 손을 내밀었다. “어른한테는 돈을 손에 직접 줘야지.” 그 말이 수정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수정은 예의를 지키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진열대에서 지폐를 들어 두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문방구 주인은 수정이 내민 팔을 잡았다. 두툼한 손이 수정의 살갗을 쓸며 올라와 반소매 선이 있는 팔뚝까지 왔다. 그리고 다시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고. 그 행위가 두어 번 반복되었을 때, 수정은 생각했다. 어른은 어디 있는 거지?
그 행위는 쓰다듬기였다. 팔 전체를. 팔 안쪽의 말랑한 살을. 누구나 알았고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고 문방구 주인도 알았겠지만, 그 행위에는 어린아이를 예뻐함만 있지 않았다. 수정은 팔을 빼냈고 잠시 주인과 눈이 마주쳤고, 놀랐고, 고개를 숙였고, 알림장을 챙기지도 못하고 문방구를 빠져나왔다. 새 알림장을 가져오지 않아 담임에게 혼이 났고, 그날은 다소 침울했다. 여전히 담임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문방구 주인의 얼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가 입었던 옅은 갈색 체크무늬 남방은 또렷했는데, 그런 패턴의 남방은 흔하디흔했고 유행도 타지 않았다. 수정은 옛 기억이 별로 없는 자신이 그날 아침만은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를 알았다.
그러므로 수정이 진료실을 나와서 하얀 약통에 든 약이 14알인지를 찬찬히 세어본 후에 했던 말은 이것이었다.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자신이 덜렁거리지만 않았다면, 준비물 사는 것을 잊지 않았어도, 일찍 등교만 했어도, 알림장 뒷장을 찢지만 않았어도, 부모랑 같이 문방구에 갔어도, 계속 저학년이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것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없었다면, 이라는 말로 합쳐지려는 것을 떨쳐버리려는 듯 체머리를 흔들었다. 학교 가는 길에 있는 문방구는 그곳 하나였다. 수정은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문방구를 가야 했다. 매일 준비물이 있다는 사실이 수정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수정은 다소 우울한 어린이로 자랐다. 그리고 부모 모르게 김 봉지에 든 방부제를 모았다.
수정은 다미가 보고 싶었다. 다미는 약을 먹고 있었고, 약을 먹어 호전된 상태가 자신의 어릴 적과 비슷했고, 자신이 겪었을 법한 위험을 안고 살 것만 같았다. 착각이고 상상이고 허상이었지만, 그랬다. “내가 만약 입양을 한다면 그 애를 입양하고 싶더라고.” 어느 날 다미 이야기를 하자, 태준은 그날따라 세상을 다 안다는 얼굴을 하고 대꾸했다. “당연하지.” 당연한가? “유기견 보호소에 가도, 더 정이 가고 꼭 데려가야겠다 싶은 강아지가 있대. 그러니 당연하지.” 태준은 다미가 어떤 아이인지 묻지 않았다. 혹시나 올지 모를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와 다미가 겹쳐 보이려 했기에 수정은 생각을 치워버렸다. 치워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마침내 기억 주머니에 남는 것은 그런 생각들이었다. 하얀 약통 속에 회색 알약이 14개인 것이 마음을 심란하게 했기에 수정은 태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진단 결과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병원에 갈 거라 말해둔 참이었다. 잠시 후 태준은 답장을 보내왔다. “야, 그게 아니었으면 얼마나 더 잘했을 거라는 거야.” 메시지를 들여다보던 수정은 그의 이름과 연락처와 메시지가 영원히 뜨지 않도록 태준의 번호를 차단했다. 아무래도 ‘야’가 사람을 낮춰 부를 때의 호칭인 ‘야’ 같았다. 1년 가까이 만난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 걸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수정은 지금 사람을 죽이러 가는 길이었으므로 무엇이건 괜찮았다.
(참고도서 : 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문학동네,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