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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정 Aug 18. 2023

빌려 쓴 지우개(4)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낯선 동네에서 성당을 발견하자 수정은 자신이 가톨릭 신자였던 사실이 떠올랐다. 신자라기보다 세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어릴 적 동네에 성당이 생기자 또래들 사이에서 미사에 가고 성경 공부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 수정도 세례를 받기 위해 매일 성당에 갔다. 세례명은 카타리나였다. 마리아나 아녜스 같은 흔한 이름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수정이라는 본 이름만으로 충분했다. 그래서 고른 것이 카타리나였다. 6살에 신비 체험을 한 후 수녀원에 들어가 병자들을 돌봐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이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엄마는 카타리나가 교황에게 ‘박사’라는 칭호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정의 결정을 내버려 두었다. 엄마는 수정이 어릴 때 두 가지 사실을 주지시켰는데, 여자도 공부를 잘하고 똑똑해야 한다는 것과 남편감으로는 회사원을 만나라는 것이었다. 사업에 손을 댄 아버지 때문에 집 평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므로 사업하는 남편도 없고 박사라 불렸던 카타리나 성녀를 엄마는 흡족해했다. 수정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이름을 쓰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야고보라는 이름을 눈여겨봤지만 고집하진 않았다. 말해봤자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았다. 남자애 중에서도 아녜스를 세례명으로 하고 싶다는 아이는 없었으니까.


   카타리나도 나쁘진 않았다. 성당에서 이 이름을 선택한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고, 이후에도 세례명이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 없었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는 일이 자유로워지자 수정은 자신의 세례명의 영어식 이름을 알게 됐다. 캐서린. 영어권 소설을 보면 한 번은 등장한다는 지영, 민지, 은주와 다를 바 없는 이름이었다. 세례명이 탐탁지 않아서였는지 성당 가는 일도 뜸해졌다. 가족 중 세례를 받은 사람은 수정밖에 없었으므로, 성당에 가지 않아도 누구 하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수정은 그렇게 15년 만에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이었지만, 고해성사하는 법은 기억하고 있었다.


   한때 수정은 고해성사에 진심이었다. 사춘기를 맞이한 수정은 하얀 미사포를 쓰고 문양이 새겨진 정교한 나무 문을 열고 사방이 막힌 곳에 들어가 죄를 고한다는 그 비통한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그 행위가 마음을 간지럽혔다. 간지럼을 타는 것은 수정만은 아니었는지, 고해성사실 문 앞은 북새통을 이뤘다. 급기야 수녀님이 등장해 고해성사는 하루에 한 번이라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동네 성당이라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 집 아이인지 빤했기에, 수녀님 눈을 피해 고해성사실에 들어가도 신부님은 인사를 건네자마자 “안 돼, 마리아”라며 쫓아내기 일쑤였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수정과 친구들은 꼬리잡기하듯 문 앞에서 줄을 섰다. 고해성사실에 들어가면 맡을 수 있는 나무 냄새가 좋았다. 고해성사실 안에서는 신부님이 목소리를 더 엄하게 내는 것이 좋았다. 그러니까 이건 초등학생 고학년의 유희 같은 것이었다. 그 안에서 고하는 죄라고는, 예배 시간에 떠들고 지난주 미사를 빠진 일 정도였다. 고해를 유희로 알 정도로 어렸지만, 진짜 죄를 고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어리진 않았다. 그래서 문방구 주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건 진짜 죄였으므로.


   스무 해가 지난 후 수정은 알게 되었다. 고해성사는 진짜 죄를 고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죄를 고해할 수 있는 장소는 오직 이곳뿐이었다. 경찰서로 가면 그건 진술이나 자백이 되고, 동료에게 말하면 추문이 된다. 그러니까 수정이 말할 데는 이곳뿐이었다. 제가 사람을 죽였어요.


   죄는 고해졌으나, 이를 듣고 사해줄 사람은 없었다. 칸막이 너머는 비어 있었다. 낯선 성당이었다. 미사 날이 아닌 평일 오후 고해성사실에서는 나무 향이 아닌 비릿한 곰팡내가 났다. 장마를 막 지난 참이었다. 다미가 아야아야 한 손목을 보여줬을 때, 그때 그어진 빗금은 6개. 여섯은 애매한 숫자니까 다미는 일곱이란 숫자를 채우고 싶었나 보다. 커터 칼로 손목을 그었다. “선생님도 아야아야 했어요?” 수정은 다미만큼 용감하진 않았다. 칼날은 무섭고, 잠이 들면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하얀 알갱이 방부제는 개구리알이 되어 하수구로 사라졌다. “어린애가 참 무서워요.” 주임은 말했다. 수정은 참 불쌍해요,라는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 주임을 빤히 바라봤다. 그 눈에 담긴 경멸을 알았겠지만, 주임은 수정보다 열 살이나 더 먹은 노련한 사람이므로, 그 노련함을 엉뚱함으로 위장하는 사람이므로 모르는 척 자신이 전달해야 할 정보를 전했다. “한동안 병원에 있을 거예요. 수업은 못 들어가고.” 수업이 끝나는 날에도 다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미 소식을 들려준 것은 코딩이었다. 코딩은 다미가 퇴원 후에 쉼터로 갈 거라고 했다. “잘 됐죠. 차라리 거기로 가는 게. 정서 불안만 있었던 게 아닌가 봐요. 소아 우울증도 있던 모양이에요.” 수정은 다미의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 물건을 기억했다. 필통조차 없던 가방이었다. 커터 칼은 어디에 있었을까. 글씨를 또박또박 써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문장의 마무리를 마침표를 찍어서 끝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독후감을 쓸 때는 책을 읽은 이유를 먼저 밝히면 좋다고 말했던 것처럼, 손목을 자꾸 그으면 안 된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그건 아픈 일이니까 하면 안 된다고 말했어야 했다고 수정은 뒤늦게 생각했다.


   뒤늦게 떠오르고 더디게 눈치를 채는 게 너무 많았다. 그게 증상 중 하나라고 했다. 문방구 주인도, 다미도, 누구도 죽지 않았지만 수정은 어쩐지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고하고 싶었다. 그러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아무도 모르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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