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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정 Aug 18. 2023

지구 멸망 하루 전

2012.1

지구가 멸망하기 하루 전 날, 내가 처음으로 들은 목소리는 연희의 것이었다. 연희는 목이 잠겨 있었다. 밤을 새운 날이면 연희는 목소리가 탁하게 가라앉았다. 나는 연희의 하얗고 가는 목을 떠올렸다. 연희는 밥을 먹지 않았다. 뚱뚱한 것을 혐오했다. 밥을 먹지 않는데도 연희는 늘 생활비가 부족했다. 연희는 한 달 전기세로 만 원을 내고 9천 원짜리 휴지를 썼다. 천 원짜리 고무장갑을 끼고, 할인 행사가 있을 때만 화장품을 샀다. 생활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었다. 연희가 버는 돈이 적을 뿐이었다.

  “이틀 밤을 새웠어.”

  연희는 우울하다고 했다. 연희는 하루의 대부분을 우울해했기에 나는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잠을 자지 못한 날이면 연희는 더 침울해졌다. 연희는 지난밤 한 잠도 자지 않았다. 반면 나는 잠에서 막 깬 참이었다. 시계 알람을 맞추어 둔 것에 생각이 미쳤다. 탁상시계 쪽으로 손을 뻗는 찰나, 날카로운 울림이 튀어나왔다.

  “손가락이 아파.”

  서둘러 시계 알람 버튼을 눌렀지만 수화기 저편으로 소리가 샌 모양이었다. 연희의 목소리가 한결 날카로웠다.

  연희는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송국 사람들이 촬영을 해온 영상 속 말을 받아 적는 것이 연희의 일이었다. 촬영 테이프는 많았고, 테이프 안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말을 했다. 연희는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연희가 받아 적은 말들은 작가에게 전해졌다. 그것으로 대본을 만든다고 했다. 방송국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방송은 제시간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연희의 잠은 언제든 자도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방송국에서 전화가 오면 연희는 일을 하러 갔다. 그곳에서 며칠 밤을 새우고 왔다.

  나는 미안하다고 했다. 연희는 무엇이 미안한지 묻지 않았다. 나는 연희가 밤을 새우고 온 날이면 미안해졌다. 미안했지만 나는 시계를 힐끔거렸다. 회사에 가야 했다. 나는 연희에게 잠을 자두라고 했다. 연희는 말했다.

  “지구가 망한대.”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그래?라고 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유성과 충돌한대, 내일.”

  살아오면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었을 별 이름들이 머리에 떠오르다 사라졌다. 무수한 별 중 하나가 지구를 향해 날아온다. 잠시지만 잘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말을 내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에는 별처럼 반짝일 리 없는 목소리가 있었다.

  “집에 가래. 긴급 상황이니까. 방송국에서 오늘 하고 내일 뉴스만 내보낼 거래. 내일이 있을 수나 있을까? 방송이 한 주씩 늦춰질 거라는데. 다행이야, 일이 너무 많았어. 다 못 끝냈을 거야. 다행인데… 일 끝나면 바로 입금해주기로 했거든. 일이 다 안 끝났으니 입금도 안 되겠지?”

  연희는 방세가 밀렸다. 위층에 사는 주인집 여자는 화를 내면 무서웠다. 여자는 자주 화를 냈다. 수도를 많이 써도 문밖에 짐을 내놓아도 화를 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방세를 내지 않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여자는 지난달에 연희에게 화를 냈다. 연희는 다음 달에는 잘하겠다고 했다. 연희는 뜸을 들이다 물었다.

  “돈 좀 있어?”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화를 내지 않았다. 이미 연희에게는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지 않았다. 연희는 30만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뉴스 봐. 지구가 곧 망한대.”

  걱정한다기보다는 겸연쩍어하는 말 같았다. 전화를 끊고 텔레비전을 켰다. 앵커의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음량을 높였다.

  <소행성 H-12가 시속 3만 5천km 속도로 지구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소행성 H-12가 지구 대기권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방향을 선회하지 않는다면 지구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소행성이 방향을 선회하지 않고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행성과 충돌한다면 지구는 재에 뒤덮일 거라 했다. 검은 가루에 갇혀 온도를 잃어가는 지구. 인류는 얼어 죽는 걸까. 2012년을 떠올렸다. 인류 멸망에 대한 예언은 이번에도 틀렸다. 1년이나 오류가 났다. 충돌 가능성은 30%라고 했다. 소수점 몇 자리가 더 있었으나 곧 기억에서 잊혔다. 30%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았다. 상상이 잘되지 않았다. 내 주변에 실현 가능성이 30%나 되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앞으로 몇 년은 지금 같은 월급을 받고 비슷한 평수의 원룸에서 별 다를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창문 밖을 바라봤다. 간간이 지나는 사람들의 다리밖에 볼 수 없는 반지하 창문으로는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화면 속 앵커는 세계의 모든 이들이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각국 정상들의 얼굴이 뉴스 자료 화면으로 나오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회사 막내에게서 온 문자메시지였다.

  <형, 지구 망한대. 알아요?>

  진동이 또 한 번 울렸다.

  <그럼 회사는 어쩌죠?>

  텔레비전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방송에 나온 모든 사람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각 정당 대표들이 나왔다. 국방부 장관이 나왔다. 이름 모를, 저명하다는 과학자가 나왔다. 과학자는 행성과의 충돌 막기 위해 자신들이 하는 노력에 대해 말했다. 말이 길어질수록 왜 행성이 지구 코앞에 올 때까지 알지 못했는지에 대한 변명으로 바뀌어 갔다. 그의 변명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우주가 얼마나 예측 불허한 존재인가 하는 사실뿐이었다. 과학자들을 믿을 수 있을까 잠시 고민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지구로 날아오는 행성을 막을 방법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었다. 생각하는 것은 저들의 일이었다.

  뒤이어 화면에 나온 청와대 대변인이 정부는 이번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온갖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국민 여러분은 혼란을 가중시키는 언사와 행동을 자제하고 정부를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대변인의 말이 끝나고 지하 벙커에서 군복을 입고 회의를 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나왔다. 뉴스 앵커는 격양된 목소리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평온을 유지하라고 했다. 평온을 유지할 사람은 앵커 자신인 듯했다.

  막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는 가련다>

  지구의 운명은 끝이 아닐지 모른다. 30%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회사가 내 출근 여부를 알 가능성은 100%에 가까웠다. 4월은 신차 생산 달이다.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쁜 철이다. 사람들은 7월 여름휴가에 맞춰 차를 샀다. 회사는 7월에 맞추어 차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까지 라인은 멈추지 않는다. 회사는 사람들이 차를 사기를 원할 때, 차를 내놓지 못하는 일을 제일 두려워했다. 그에 비한다면 별과 별이 부딪히는 일쯤은 별것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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