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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정 Aug 18. 2023

지구 멸망 하루 전(2)

  출근하는 걸음이 황급했다. 다른 날보다 거리가 술렁이는 듯했지만 기분 탓일지도 몰랐다. 대로변 건너편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가는 것이 보였다. 신도들은 교회 마당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교회 건물을 지키는 경비가 사람들에게 건물 안으로 들어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신도들은 주여, 구원을, 외쳤다. 교회 건물 벽에 ‘2012년 종말 기도회’ 현수막이 펄럭거렸다. 현수막에 눈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이 놀랍지 않은 이유를 그제야 깨달았다. 너무 많은 예고편을 본 느낌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탄 버스는 움직일지 몰랐다. 도로는 꽉 막혔다. L마트가 있는 사거리는 아예 주차장이 됐다. 사람들은 마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리에 차를 세워두었다. 버스 기사가 경적을 눌러댔다.

  “망해뿔면 다 끝인데! 뭘 사재기를 하고 지랄이여, 지랄이!”

  분통을 삭이지 못하고 기사는 소리를 질렀다. 승객들은 조용했다.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 채 거리에 멈춰 선 차들을 보며 체증이 풀리기를 바랐다. 퇴근을 하고 슈퍼에 들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라면조차 몇 봉지 없었다. 전복이 먹고 싶었다. 게장도 먹고 싶었다. 평소에 비싸서 못 먹은 것을 사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통장 잔고를 떠올렸다. 그러다 지구가 망하지 않으면….

  망할 것들.

  작업장 건물 앞에서 담배를 태우던 업체 조장이 가래침을 뱉었다. 모른 척 지나치는데 김여사가 팔을 흔들며 다가왔다. 멀리서부터 입술이 달싹거리는 것이, 수다를 떨 주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이제 와? 그거 알아? 회사 사람들 다 안 나왔어.”

  나는 이맛살을 구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김여사는 정규직 직원을 회사 사람들이라 불렀다. 그러면 우리는? 김여사는 어깨를 과장스럽게 추켜올렸다 내렸다.

  “다 월차라도 썼나 봐. B라인은 반장도 안 나와서 난리가 났어.”

  탈의실로 가서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 회사 사람들, 아니 정직원이 다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홀아비 한 명과 A라인 반장은 출근을 했다. A라인 반장은 휴일에 잔업으로 끌려 나온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장에게는 정직원으로 취업시켜야 할 아들이 하나 있었다. 정직원이 되려면 돈이 들었다. 돈만 드는 것이 아니었다. 보증인의 평소 행실도 평가 목록에 들어갔다. 그는 아들의 보증인이었다. 결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반장이 있어 업체 사람들은 회사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을 욕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구의 마지막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날은 몸뚱아리 회포나 풀어야 하는 건데…. 일이나 하다 좆 빠지면 억울해서 쓰나. 다른 걸로 좆이 빠져야지.”

 “왜 집에 가면 마눌님이 기다리고 계신데?”

  "누가 마누라랑 한데? 내 인생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날에.”

 “오늘까지도 제수씨한테 면박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망할 것들을 찾던 업체 조장이 들어왔다. 조장은 업체 사람 몇을 지목했다. 지원을 가야 한다고 했다. 결근을 한 정규직원들 담당 라인으로 일을 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구시렁대는 소리에 휴게실이 소란스러웠다. 이쪽 일손 달리는 건 어쩌라고? 염병할, 죽기 직전까지 뒤치다꺼리야. 조장은 축 늘어져 더는 내려갈 곳이 없어 뵈는 눈을 애써 내리깔며 비실 웃었다.

  “사정이 그런 걸 어쩌겠어, 알잖나.”

  사정이야 모두 알고 있었다. 본사와 업체의 재계약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어깨를 떨군 몇 사람이 앞장을 섰다.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둘 발을 끌며 각자의 라인으로 들어갔다.

  라인 역시 곳곳에서 투덕거리는 소리로 부산스러웠다.

  “아, 진짜.”

  “억울해? 억울하면 너도 먼저 들어오던가!”

  “아 씨벌, 더러워서.”

  “뭐? 씨벌? 이 씨벌 새끼야. 너 뭐라 그랬어?”

  “씨벌이라고요. 세상 끝난다는데 그깟 욕도 못 해요?”

  사람들은 욕을 부리는 틈으로도 물량을 확인하고, 장비를 챙겼다. 앞 시간 근무자가 제자리에 두지 않은 공구를 정신없이 찾아 헤매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 날까지 이런단 말이지! 씩씩대는 그의 목소리가 작업장에 낮게 퍼졌다. 작업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렸다. 기계가 움직였다. 사람들은 자리로 돌아갔다.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였다. 나는 자동차 카펫이 제 속도를 찾으며 벨트를 따라 이동하는 것을 보다가 그리로 다가갔다.    


작업물량을 확인한 후, 카펫을 대차에 옮겨 싣는다. 이것이 내게 할당된 일이다. 한참 물량 개수를 맞추고 있는데, 김여사 목소리가 짜랑짜랑 울렸다. 엄마한테 와서 밥 먹으라니까. 내일이면 엄마 못 볼 수도 있는데, 밥도 같이 안 먹을 거야? 아줌마는 아이 둘을 남겨두고 집을 나왔다. 남자가 난봉꾼이었다. 아이들은 친할머니가 키웠다. 사춘기가 된 아이들은 뭐든 삐뚤게 굴었다. 돈이 궁할 때만 엄마를 찾았다. 김여사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기드릴이 드르륵 헛도는 소리를 냈다. 김여사는 전기드릴을 고쳐 잡았다. 브레이크 조명등이 빠른 속도로 조립되어 갔다.

  옆자리 공룡은 나를 힐끗거렸다. 말을 걸고 싶어 하는 눈치이기에 나는 부러 대차만 만지작거렸다. 내일 세상이 끝장난 데도 공룡이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을 거였다. 미크로케라톱스와 닮은 공룡은 자신이 미크로케라톱스를 닮지 않았냐고 업체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다. 미크로케라톱스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공룡이라 불렀다.

  업체 조장은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정신 빠트려 라인 세우는 일 없게 조심하라고 닦달을 했다. 김여사가 지구 마지막 날 회식은 어떠냐고 했다. 다음 주가 생일이었다. 김여사는 생일도 못 챙겨 먹고 죽을까 봐 억울하다고 했다. 조장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애들도 기다리고…. 조장은 말끝을 흐렸다. 아줌마는 시무룩해졌다.

  “둘이 잤을까?”

  지게차를 모는 형이 바싹 몸을 붙이더니 물었다.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옆자리에 있던 막내가 피식거렸다.

  “형은 인생 마지막 날에 궁금한 게 겨우 그거예요?”

  “마지막이 될지 그저 그런 날이 될지 어떻게 알아?”

  “진짜 망하면 어떻게 하죠?”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는 줄 알아?”

  그리 말은 해놓고 지게차 형은 괜히 마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훑어 내렸다.

  누군가는 미국 대통령을 찾았다. 빌어먹을 놈들, 영화에서는 잘도 세계를 구하더니만. 미국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은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라고 미국 NASA나 CIA가 무얼 하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각국 정상들이 영상회의를 하고, 군부대가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는 뉴스만 반복됐다.

  “초속이라는데, 그걸 무슨 수로 막는데요?”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사람들은 시시껄렁했다. 마치 월드컵 경기라도 열리는 전날 같았다. 삑, 물량이 나옴을 알리는 알람이 울려댔다. 사람들이 슬슬 몸을 일으켰다. 그때,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어떤 새끼야!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몰렸다. 홀아비 정규직이 차 시트 뭉치를 발로 차고 있었다. 누가 지게차 가는 길목에 자재를 놓아둔 게였다. 저 새끼 또. 막내가 낮게 중얼거렸다. 홀아비는 성질이 괴팍하기로 유명했다. 공룡이 홀아비에게 뛰어갔다. 홀아비는 공룡이 차 시트를 옮기는 내내 성을 냈다. 미크로케라톱스는 몸집이 가장 작은 공룡이라고 했다. 몇 겹씩 포개진 차 시트는 공룡에게 버거워 보였다. 일을 거들어주려 공룡에게 다가갔다. 공룡이 눈을 빛냈다.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공룡이 소곤거렸다.

  “그거 알아요? 6천5백만 년 전 지구에 떨어진 행성의 파편이 원래 H-12와 한 몸이었다는 걸요? H-12가 속해 있던 소행성군 중 하나가 멕시코에 떨어져 공룡을 멸종시킨 거예요.”

  마지못해 공룡을 바라봤다. 공룡은 얼굴을 붉혔다.

  “마치 운명 같지요?”

  먼 옛날, 화성과 목성 사이에 거대한 행성 충돌이 있었다. 이때 만들어진 행성 파편 중 하나가 1억 년을 떠돌아 지구에 떨어졌고, 6천만 년 후 다른 하나가 같은 별에 떨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공룡과 우리는 같은 운명이에요.”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공룡이 싫었다. 똑같은 운명을 맞이한다니 더 싫었다.

  “제 몸이 화염에 싸이기 직전까지 공룡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어요. 크로노사우로스는 암모나이트를 물어뜯고 카스모사우루스는 무리를 지어 이동했겠죠. 고통도 없었을 거예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으니까요.”

  나는 용암 열기에 타들어 가는 미크로케라톱스를 상상했다. 철갑옷을 입은 공룡이 아닌, 용광로에 빠져 죽었다는 공룡의 친구가 떠올랐다. 용광로에 빠지기 직전, 공룡의 친구는 졸았고 졸면서 걸었다. 다섯 걸음 앞에 자재를 놓아두고 왔어야 하지만, 잠결에 그는 두어 걸음을 더 걸었다. 무릎을 낮은 난간에 부딪쳤고, 그 반동으로 고꾸라졌다고 했다. 난간 아래 용광로가 있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용광로 주변에서 일하는 그의 동료들은 모두 반쯤 눈을 감고 걸어다녔다. 그들은 모두 밤에 나와 일을 했다. 공룡의 친구는 햇빛 비치는 낮에는 잘 수가 없었다. 잠을 못 잔 지 꽤 되었다.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공룡은 긴 목으로 야생 잎을 뜯는 초식공룡에 대해 이야기했다. 기린과 잘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나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공룡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주 조금쯤은 수백만 년 전 지구를 누볐을 그들을 좋아해 볼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남은 차 시트를 옮기며 공룡은 말했다.  

  “우리도 몇 백 세기 후에 공룡처럼 화석으로 발견될까요?”

  순간 공룡은 내게 가장 재수 없는 생명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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