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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정 Aug 18. 2023

지구 멸망 하루 전(3)

점심시간이 되자, 나이 든 무리는 저희들끼리 약속을 잡았다. 아무래도 얌전히 놀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탈의실에서 빠져나왔다. 연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자니?>

  전날 밤을 새운 연희는 자고 있을지도 몰랐다. 마지막 날을 잠으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잠시 후, 연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간단했다.

  <ㅠㅠ>

  전화를 하니 연희는 진짜 울고 있었다. 나는 울지 마,라고 했다. 연희는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왜 울어?라고 물어야 했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연희는 천천히 전화를 받았다. 나는 왜 울어?라고 물었다. 연희는 집주인이 내려왔다고 했다. 아직 월세를 낼 날이 아니었다. 집주인 여자는 지난달 밀린 월세라도 내놓으라고 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데, 받을 돈은 받아야 되지 않겠어요? 여자는 말했다. 우리 식구끼리 한우 한 점이라도 먹고 죽어야겠어요. 여자는 버짐이 핀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다. 꽃등심 따위와는 거리가 먼 얼굴이었다. 연희는 소고기를 굽는 주인네 가족을 떠올렸다. 여자는 무능력한 만큼 마른 남편과 악다구니 밖에 나올 소리가 없게 하는 아이들 입에 연신 고기를 넣어줄 것이다. 연희는 배가 고파졌다. 그래서 크게 울었다.   

  나는 말했다.

  “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연희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연희는 그제야 웃었다.

  “그곳에 들어갈 때는 캥거루처럼 콩콩 뛰어 들어가야 해.”

  “왜?”

  연희가 더 큰 소리로 웃었다.

  “왜냐하면 캥거루 모양 상표를 쓰는 곳이거든. 캥거루처럼 뛰어 들어가면 음식값을 30%나 할인해 준다네.”

  지구가 사라질 만큼의 할인율이었다. 나는 열심히 뛰겠다고 했다. 연희는 레스토랑 자리를 예약하겠다고 했다.

  작업을 한 판 뛰었을 때, 연희가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패밀리 레스토랑 예약이 다 찼어. 사람들이 다 거기서 죽으려나 봐.>

  나는 조금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캥거루 흉내를 내고 싶지도 않았지만, 월급도 받지 못할 처지였다. 연이어 메시지가 왔다.

  <마치 크리스마스 전날 같아.>




 오후가 되자 유성과 지구 충돌 가능성이 25%로 낮아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소수점 몇 자리가 더 있었지만 사람들은 기억하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맞지 않냐고 호기를 부리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쉬는 시간마다 주기도문을 외우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거짓 보도라고 단정했다. 있는 것들은 우주로 도피를 하고 있을 거라고 했다. 작업장은 어쩐지 긴장이 풀린 듯 보였다. 결국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점은 라인이 섰다는 것뿐이었다. 생산라인이 멈춰 섰고, 조장은 하얗게 된 얼굴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오른쪽 조명등을 왼쪽 등 작업장으로 옮기는 바람에 라인을 세운 신입은 지구가 곧 망할 것 같이 내내 울상이었다. 그는 차라리 지구가 없어지기를 비는 듯 보였다.

  지구의 종말을 바라는 사람은 신입만이 아니었다. 연희는 방송국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이 말을 하며 연희는 또 울었다.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날에 사람들은 연희를 울렸다. 방송국 데스크는 25%의 확률을 높게 보지 않았다. 다음 주부터 정상적으로 방송이 나갈 준비를 했다. 방송을 위해 대본이 필요했고, 대본을 위해서는 대사를 받아 적을 사람이 필요했다. 그들은 연희에게 이번 주말에 출근을 하라고 했다. 일이 밀렸으니 주말에는 종일 방송국에 있어야 했다. 만약 지구가 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연희는 준비한 적 없는 말을, 그러나 단호히 했다. 싫어요. 담당 작가는 아, 소리를 내더니 곧 ‘다른 사람을 구해보지요’라고 했다. 연희는 겨우 입술을 두어 번 씹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연희는 지구를 망하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었다. 인생 처음으로 교회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연희가 말을 받아 적은 촬영 테이프 중에는 아이의 뺨을 때리고 밥을 주지 않고 옷을 벗겨 추행하는 부모의 24시간을 관찰한 영상도 있었다. 테이프에서는 개 같은 년아, 너 같은 것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는 말이 내내 들렸다. 연희는 24시간 내내 그 말을 듣고 받아 적었다. 다단계 사업체에 위장 잠입한 구성작가가 몰래 촬영한 영상도 있었다. 경기 도중 뇌혈관이 터져 죽은 권투선수의 장례식 장면도 있었다.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받은 죄수와의 면담, 천 원짜리 물건을 파는 노점상의 하루, 한 해의 마지막 날에 기차여행을 떠나는 연인들을 담은 영상도 있었다. 연희는 그것들을 혐오하고 그것들을 아꼈다. 연희는 아주 잠시 이 모든 것이 사라지길 빌었다. 자신이 방송국 책상 한 켠에서 사라지는 데 너무 짧은 시간이 걸린 탓이었다.

  나는 더 좋은 레스토랑에 가자고 했다. 연희는 아까처럼 웃지 않았다. 그곳도 이미 예약이 다 찾을 거라고 풀 죽어 말했다. 나는 게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연희는 전복이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대게도 먹고 싶다고 했다. 연희는 복어도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일을 마치고 서둘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연희는 웃지 않았다. 잠긴 목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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