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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정 Aug 18. 2023

지구 멸망 하루 전(4)

 연희와의 약속은 지킬 수 없었다. 일이 끝나갈 때쯤 업체 조장이 잔업이 있다고 했다. 매일같이 있는 잔업이지만, 사람들은 야유했다.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었다. 사람이 없어 업체 담당 라인 일을 못 마쳤다고 했다. 업체 사람 대부분이 정규직 담당 라인에 지원을 나간 덕분이었다.

  B조에서는 라인이 5분간 섰다고 했다. 라인이 1분 설 때마다 업체는 몇 백만 원의 손해배상액을 내야 했다. 정규직 반장은 생산라인이 멈춘 시간을 본사에 보고하는 일을 했다. 그는 라인이 멈춘 시간을 줄여 보고 할 수도, 아예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업체 조장은 정규직 반장 집안의 경조사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반장이 나오지 않았다. 라인이 멈춘 시간이 바로 본사로 올라갔다. 4월은 신차출시 달이라고 조장은 울먹이듯 웅얼거렸다. 본사는 생산 라인이 멈춘 것을 알았다. 조금 후에는 업무량을 다 마치지 못한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다음 달에는 업체 재계약이 있었다. 대기업 자동차 공장의 하청 자리를 노리는 업체는 차고 넘쳤다. 조장을 비롯한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자사 건물은커녕 기계 하나도 자신의 것이 없는 업체가 계약을 따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었다. 물론 본사도 잘 알고 있었다.

  조장은 대신 끝나고 거하게 회식을 하자고 했다. 아빠를 기다린다는 조장네 아이들이 떠오르다 사라졌다. 쇠뭉치가 바닥에 나뒹구는 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연이어 씨벌 욕설이 들려왔다. 지게차 형이었다. 김여사가 지게차 형 쪽으로 뛰어갔다. 괴성이 들렸다. 조장은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늘 먹던 빵과 우유가 아닌 햄버거가 손에 들려 있었다. 사람들이 햄버거 포장지를 뜯었다. 정규직 반장과 홀아비가 멀리서 오는 것이 보였다. 작업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저것들은?”

  이번에도 지게차 형이었다. 자리를 피하려던 조장이 붙잡혔다.

  “어우, 씨벌. 나 보고 어쩌라고!”

  조장은 소리를 질렀다. 지게차 형이 주춤했다. 그 옆으로 정규직 반장과 홀아비가 지나갔다.

  “내일 봅시다!”

  그들은 인사를 했다. 순간 저들에게는 내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괜찮았다. 공룡이 울었다. 그것은 괜찮지 않았다. 공룡은 흐느끼면서도 입을 다물지 몰랐다.

  “인간은 너무 추잡해.”

  그는 공룡처럼 평화롭게 죽고 싶은 게였다. 하지만 공룡은 마지막 날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와 같은 운명이 아니었다. 나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소수의 과학자에게 기도를 했다. 공룡처럼 죽지 못할 거라면, 살고 싶었다. 죽는 것을 뻔히 알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억울했다.

  라디오에서는 사람들이 광신도처럼 기도를 하고, 집단 자살을 하고 있다고 했다. 행성 충돌 예상 지점인 하와이와 멀어지기 위해 사람들은 공항으로 몰려가고, 일부는 광화문으로 가 시위를 했다. 지구 마지막 날 그들 때문에 교통 체증이 일고 있다고 아나운서는 전했다. 병력은 치안을 위해 증가되고, 대통령은 담화를 준비하고 있으며, 소행성 H-12는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공룡은 흐느꼈고 지게차 형은 자재를 발로 찼다. 조장은 담배를 피웠다. 공장 안은 금연이었다. 조장 인생의 마지막 반항이었다. 조장은 전화를 걸었다. 그가 밖으로 나가기 직전,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게차 형의 발길질이 잠시 멈췄다. 나는 전화를 했다. 연희는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나는 보고 싶다고 했다. 연희는 알겠다며 잠들었다.

  잔업이 시작됐다. 라디오에서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누가? 속으로 물었다. 컨베이어 벨트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더는 물을 시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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