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0대에 돈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
(출처 : 픽사베이)
‘할머니’를 떠오르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따뜻함’, ‘정갈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우리 할머니는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계셨거든요. 그리고 어찌나 정갈하신지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매일 스스로 목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할머니에겐 항상 좋은 향기가 났어요. 나이가 들면 그러기가 참 어려울 텐데 말이죠. 이런 우리 할머니가 동네 마실을 나가면요. 할머니를 본 동네 사람들은 ‘어쩜 그리 피부가 좋아요?’라고 말했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듣고 나면 수줍지만 기분 좋은 목소리로 손주들에게 자랑을 하셨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참 귀엽고 참 좋았습니다.
저는 우리 할머니를 참 좋아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시고 예쁜 말을 쓰셨던 우리 할머니가 참 좋았습니다. 저는 언니와 나이 차이가 한 살 밖에 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언니의 물건을 매번 물려받았었는데요. 할머니는 저희 엄마에게 자그마한 인형이라고 제 것도 따로 주라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물론 너무 어려 기억이 안나지만요. 이런 말씀을 들으면 우리 할머니가 초등학교도 못 나오셨지만 대학을 나온 저보다 훨씬 지혜 로우시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할머니는 어느덧 연세가 82세가 넘기시던 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소화가 힘드시다고만 생각했어요. 저는 사실 그때 갓 취업을 했던 때라 그 사실 조차 몰랐어요. 이기적인 손녀는 자기 살 길만 찾아다녔죠. 그러던 와중에 엄마가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가 많이 아프셔”
할머니는 결국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검사 결과는 희망적이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해 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할머니는 결국 병원에서 마지막 남은 인생을 보내게 되었어요. 할머니는 호박 덩굴도 있고 대파도 심어져 있는 시골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셨어요. 시골집에는 할머니의 손길이 안 담긴 것들이 없었으니까요. 아마 시골집의 강아지들도 할머니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겠죠. 저는 숙모, 언니와 함께 할머니의 병간호를 했어요. 병원에 있어야 하니, 할머니는 입원을 해야 했는데요. 할머니의 입원실은 6명이 한 호실을 쓰는 6인실이었어요.
혹시 6인실을 사용해 본 적이 있나요? 6인실은 한 방에 6명의 환자가 입원을 해요. 운이 좋아 사람들이 별로 없을 때를 제외하곤 늘 북적여요. 왜냐하면 환자와 병간호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기 때문이에요. 환자의 입퇴원도 수시로 일어나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사람이 바뀌고 낯선 이들이 들락거리죠. 우리 할머니는 6인실 병동을 정말이지 불편해하셨어요. 할머니는 정말 단정하고 깔끔한 분이셨기 때문이에요. 남들에게 점점 말라 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셨을 거예요. 나중에는 병이 점점 진행되어 생리현상도 우리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에요.
“커튼 좀 쳐줘....”
할머니의 눈빛에서 나오는 말씀이었어요. 다른 환자들이 식사를 할 때도 할머니는 물 한 모금 삼키지 못했어요. 오히려 다른 환자들이 식사를 할 때 헛구역질이 나올 때가 있었는데 피해를 줄까 봐 커튼을 치라고 하셨요. 마음 같아서는 할머니는 편히 1인실로 모시고 싶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1인실, 아니 2인실을 갈 수 없었어요.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결국 할머니는 임종을 맞이할 때가 돼서야 겨우 1인실에 들어가셨어요. 그리고는 할머니는 1인실에 가신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눈을 감으셨어요. 그때 편안해 보이셨어요. 이 사건은 철없는 20대였던 나에게는 충격적이었어요. 그리고 돈이 없으면 불편하다는 것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계기였다. 정말 뼈저리게 느꼈지요.
‘돈이 없으면 죽을 때도 불편하다.’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온 날, 돈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최소한 죽을 때만이라도 편하게 죽기 위해서 말이에요. 돈이 없으면 죽을 때조차 편하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돈이 있으면 좋은 물건을 살 수도 있고요. 멋진 집에서 살 수도 있지요. 그러나 꼭 멋진 물질만을 위해 돈이 필요한 건 아니었어요. 돈이 없으면 생각보다 비참해지는 일들이 세상에는 많았어요. 한번 돈에 대해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돈이 없으면 불편한 것들이 점점 보였다. 죽을 때도 불편하게 죽을 수 있고, 몸이 죽을 만큼 아파도 일을 해야 해요. 좋든 싫든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돈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건 없었어요. 죽을 때에 편하게 죽으려고. 그리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좀 더 편하게 해 주려고. 그게 제가 20대에 돈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