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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May 18. 2020

마음껏 즐기세요, 그것만 빼고 <투 핫>

관계 맺는 법을 처음부터 배우다


코로나 시국을 타계하기 위해 넷플릭스 유영 중, 대놓고 선정적인 작품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투 핫 (Too hot to handle)'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인데 섬에서 뭐 남녀들끼리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작품 같았다. 19금이다. 아직도 이런 선정성으로 승부를 거는 프로그램이 있다니.. 하며 혀를 끌끌 차며 다른 작품으로 옮겨갔더란다.


몇 주 후, 이번엔 유튜브 유영 중 '투 핫' 리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어? 그런데 내용이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쁘고 멋있고 섹시한 것은 낚시였다는 사실을 리뷰 영상을 보고 알았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원나잇의 관계에만 익숙한 젊은이들에게 진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교정'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어, 이거 괜찮은데? 에피소드도 8개밖에 없어 한번에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주행을 시작했다.



왼쪽부터 클로이, 해리, 프란체스카, 쉐론, 론다

멕시코의 어느 아름다운 섬에 전 세계에서(라고 쓰고 영미권이라고 읽는) 10명의 선남선녀들이 모였다. 7천 명이 넘는 오디션에서 뽑힌 사람들이니 대략 1:700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사람들인 것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보면 그럴만하다고 느낄 것이다. 완벽한 몸매, 얼굴, 끼(?) 등등 피가 끓는 청춘의 시기에 완벽한 밤을 즐기기에 태어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두 명씩 입장을 하며 그들의 소개하는데 각각의 캐릭터가 여기서 조금씩 드러난다. 공통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원나잇을 매우 즐기며 원하는 이성은 누구나 넘어오게 할 수 있다는 자뻑들이 충만했다. 이런 쪽으로만 발달한 남녀들을 외딴섬에 모아놓는다는 것은 기름탱크에 횃불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너무 결론이 뻔하지 않는가.


실제로 그들의 행동에 아무 제약이 없는 12시간 동안 탐색전이 벌어지는데 참 볼만하다. 그 짧은 시간에 키스를 나누기도 하고 자신에게 맞는 짝을 찾아가며 뜨거운 밤을 보낼 것을 상상하며 기뻐한다. 그들은 이제 한 달간 합숙을 하게 된다. 이 멋진 사람들과 한 달을 함께하게 된다는 사실에 이곳은 천국! 을 외친다. 어떤 소식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채.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이다.


라나에 불이 들어오면 모두가 긴장하지


'라나(Lana)'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은 이 곳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 공손하지만 단호한 영국 엑센트를 구현하는 라나에게서 이들이 처음 들은 것은 한 달간 이곳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3가지 규칙이었다.


1. 섹스 금지
2. 키스를 포함한 모든 유사성행위 금지
3. 자위 금지


이 규칙을 처음 들었을 때의 리액션은 정말 볼만했다. 그런 것 있지 않는가, 정말 상상도 못 한 것을 들었을 때의 반응. 절망 정도가 아닌 멘탈이 순간적으로 나가버리는 그 광경이 그들에게 엄습한다. 한 달의 천국이 순간 한 달의 지옥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100,000이라는 총상금이 걸려있다. 한화로 하면 1억 2천 정도 되는 돈이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성적인 행동들을 할 경우 이 금액은 계속 깎이게 된다. 참가자들은 2차 멘붕을 겪는다. 섹스만큼 중요한 것이 돈인데 이 프로그램은 영리하게 그 두 가지를 끊임없이 저울질하게 만든다.


선생 라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기간은 여러분들이 진정한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는 기간이라고. 하지만 그 누구도 라나의 말을 듣는 사람은 없다. 섹스가 없는 관계를 이때까지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섹스가 없이 어떻게 관계가 가능하냐고 하소연하는 참가자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맞아, 내가 아는 서방 친구들은 이랬지.. 하며.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



남성 참가자들
여성 참가자들


참가자들의 비주얼을 직접 보면 수긍하겠지만, 정말 이쁘고 잘생기고 몸매 좋고 섹시하다. 700대 1의 경쟁률을 통과한 자들이니 오죽하겠는가. 서로를 아예 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잠도 같이 자고(큰 침실 하나에 같이 잠), 하루 종일 같이 뒹구는데 불꽃이 튀지 않을 수가 없는 구도였다. 역시, 며칠 되지 않아 키스를 저지르는(?) 커플이 탄생한다. 제발 벌금이 비싸지 않기를 기도하지만 결과는 키스 한 번의 벌금은 $3000이다. 삼백만 원이 넘는 비싼 키스인 셈이다. 오럴은 $6000, 섹스는 $20000이다 (섹스 5번이면 모든 상금 탕진 잼). 이들은 생각보다 너무 큰 벌금의 스케일에 아연실색한다.


작은 사고들(+한 번의 큰 사고)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든 이 기간을 나름 선방하면서 지낸다.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처음 만났던 사람과 잘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하며, 삼각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원수가 되기도 하고 절친이 되기도 하는 인간관계의 발전단계를 모두 밟아나간다. 육체관계가 배제된 애틋한 시간들이 지속되며 그들은 점점 상대방의 몸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자체를 보게 되는 눈이 길러지기 시작한다. 입소했을 때의 그 사람들이 맞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하는 참가자들도 있다.



남성 워크숍 중 켈즈와 해리

이 프로그램의 재미 중 하나는 제작진이 제안하는 여러 워크숍과 테스트다. 제작진은 적절한 시기에 참가자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워크숍을 진행한다. 커플로 진행하는 줄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워크숍도 흥미로웠지만 내가 가장 괜찮게 봤던 것은 남자들만 불러 진행했던 워크숍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내면의 남성성을 찾는다다는 워크숍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내면의 가장 큰 두려움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동료들과 공유하고 대상화시켜 그것에서부터 벗어나는 심리상담적인 워크숍이었다. 너무 오글거리지는 않게, 하지만 충분히 진지하게 진행되는 워크숍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멋지게 보이는 사람이라도 내면에는 불안한 내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는 워크숍이기도 했다.



테스트를 위한 스위트룸

한편, 제작진은 육체적인 접촉을 배제하면서도 진정한 관계를 맺어 나가는 듯한 커플들은 테스트를 통과하게 한다. 커플 단 둘만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호화로운 스위트 룸을 허락하는 것이다. 그들이 평생을 살아온 습관을 과연 거스를 수 있을지에 대한 테스트이다. 멀쩡한 사람도 그런 상황이면 힘들 텐데 육체적으로 완벽한 두 사람이 한 침대에, 그것도 로맨틱한 섬에서 하룻밤을 보낸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힘든 테스트일 것이다. 결과는 직접 확인하시길.


중간에 입소해 분위기를 휘저어놓은 리디아, 코리, 메디슨


참가자들이 한 달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긴장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멤버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이 기간 중 4명이 중도 퇴소하고 4명의 새로운 멤버가 조인한다. 새로운 멤버 또한 비주얼적으로 탑급의 참가자이기 때문에 새로운 멤버가 조인할 때마다 기존 멤버들 간에 맴도는 전운 또한 볼만한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다. 처음 입소할 때는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제는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이해하며 '관계 형성'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진 하나의 팀이 된다.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아쉬운 평생 추억거리를 공유한 좋은 친구들이 되었다. 게다가, 상금 또한 라나가 n 분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돈도 벌고 (각각 800만 원) 친구도 얻고, 유명세까지 얻었으니 정말 남는 장사인 셈이다 (참가자 중 한 명인 프란체스카는 현재 400백만 인스타 팔로워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 달 간의 촬영본을 제작진이 어떻게 편집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후에 참가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한 달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방송에 나온 것은 정말 일부라고 말한다. 참 좋은 경험이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마 참가자들을 본격적으로 소개하자면 끝도 없을 테니 극히 주관적인 내 기준으로 소개를 해보자면:


가장 멋있는 참가자 - David


프로그램에서 나이를 말해주지 않아 누가 가장 연장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어른스러우면서 삶에서 뭣이 중한지를 아는 청년이었다. 특히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망설임 없이 우정을 선택하는 모습은 30대 중반 아재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영국 특유의 엑센트가 영국을 많이 생각나게 한다. 영국에서 종종 보는 찌질남이 아니라 진짜 멋있는 그런 부류의 남자이다. 특히 워크숍에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게 했을 때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여자라면 심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매력 있는 참가자 - Harry

호주에서 온 이 천진난만한 영혼의 가장 큰 매력은 웃음이다 (나의 전성기가 생각나는). 해맑게 웃는 그의 모습 앞에서 넘어오지 않은 여자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키도 커, 몸매도 좋아, 매너도 좋아 뭐 하나 떨어지는 것이 없는 듯했으나..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굴곡이 심했던, 자신의 치부가 다 드러났던 참가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하게 그것을 극복하는 모습에서 참 매력적인 참가자라고 생각했다. 입담도 좋아 해리가 던지는 농담에 참 많이도 웃었다.



가장 솔직한 참가자 - Chole

지성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은 컨셉인 참가자였다. 하지만 클로이 덕분에 이 프로그램이 더 활기를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멋진 남자들을 보면 즉각 반응하고, 중간중간의 개인 인터뷰 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그녀가 철부지에서 점점 성장하는 것을 보면 내가 부모가 된 듯한 뿌듯함마저 든다. 여러 남자들의 구애를 받지만 결국에는 아무하고도 성사되지 못하는 비운의 여주인공이지만 그녀 특유의 밝음 에너지는 이 프로그램의 백미이다.



가장 재미있는 참가자 - 나레이터

미국 코미디언 데시레가 나레이터로 참가한다. 설명도 하고 끊임없이 추임새도 넣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하는데 정말 재미있다. 미국 스타일의 개그와 풍자를 마음껏 느낄 수 있다.



마치며


미국식 프로그램으로서 영미권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서방세계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육체적인 관계로 외로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공허한 청춘들이라면 꼭 한번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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