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루하야

17일 빨리 나온 우리 아기, 루하

by 선샤인

누가 첫 아이는 늦게 나온다고 했던가.


우리의 첫아기 루하는 예정일보다 17일이나 빠른 37주 4일 차에 태어났다. 예정보다 훨씬 빨리 태어난 루하를 맞이한 지 7일이 지난 오늘에야 조금 정신이 돌아와 그간의 시간들을 되짚어본다.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2021년 1월 18일, 새벽부터 숨 가쁘게 진행되어온 출산 과정을 당일날 적었던 메모에 기반해 복기해본다.




4:00 am

화장실을 간 와이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배에서 퐁! 하는 소리가 났고 속옷이 흥건하도록 액체가 나왔다고 한다. 설마 양수가 터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출산일이 가까울수록 요실금도 있었기에 딱히 구분이 되질 않았다.


4:30 am

이것저것 검색해보다가 가장 확실한 건 직접 병원으로 전화하는 게 맞다는 판단을 하고 응급실로 전화를 했다. 혹시 진짜 양수가 터진 것이면 응급상황인 것이니까. 한참을 기다리다 연결됐다. 기본사항을 묻길래 대답해줬더니 당직의(on call doctor)한테서 전화 갈 거라고 한다. 15분 지나도 전화가 가지 않으면 다시 전화를 달라고 한다(?). 아니 진짜 응급상황이면 어쩌려고 이렇게 느긋하나 싶었다. 참고로 미국은 한국처럼 일단 산부인과로 쳐들어가지 않는다. 미리 전화를 하고 오라는 대답을 듣고 출발하는 것이 정석이다. 아마 세팅 준비+보험 관련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게 아마 한국과 가장 다른 점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4:50 am

15분이 지나도 전화가 오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려는 찰나, 와이프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의사가 증상 듣더니 내원해서 검진을 받아보자고 한다. 설마 오늘 출산을 하겠나 했지만 혹시 모르니 출산 가방을 후딱 싸서 병원으로 출발했다.


5:30 am

몇 달 전에 쌍둥이를 낳은 친한 형이 현금을 꼭 가지고 가라는 조언이 생각나 ATM기 들려 현금을 뽑고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 도착했더니 코로나 때문에 와이프만 검색대를 통과하게 해 주고 와이프가 응급실에 접수를 하고 왔다. 시간이 꽤 걸리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접수창구에서 또 처음부터 다 물어보더란다. 아아 답답한 이 미국이여.

5:45 am

출산 병동으로 들어가 가운으로 갈아입고 기다리니 간호사가 들어와 기본 문진을 했다. 꽤 여러 가지를 물었는데 왜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 와이프는 코로나 검사와 채혈을 했다. 난 그저 이 모든 상황을 멀뚱멀뚱 지켜볼 뿐이었다.


6:00 am

당직 레지던트(+의대생 한 명)가 들어와 내진을 진행했다. 흑인 여성이었는데 레지던트답지 않게(?) 차분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진행을 해서 인상 깊었다. 와이프 상태를 보자마자 양수가 터졌다고(broke water) 확인해 주었다. "We will deliver today." 하며 미소를 짓는데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전날에 피곤하게 잠이 들었던 터라 아직도 비몽사몽인데 오늘 출산이라니?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오늘 출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기쁨보다는 막막함이 더 컸던 것 같다.

6:30 am

분만실로 이동. 미국 분만실은 대체적으로 가족 분만실이어서 보호자가 출산과정을 함께 할 수 있다. 분만 의자와 보호자가 누울 수 있는 소파가 있었고 반대쪽에는 수술대처럼 생긴 신생아 검사대가 있었다. 검사대를 보니 출산이 더 실감 났던 것 같다. 곧이어 산모의 배에 두 개의 기구를 설치했다. 하나는 아기의 심박동을 재는 심박동 측정기, 그리고 근육 수축 강도를 재는 수축 측정기. 아기의 심박동 소리는 스피커에 연결이 되어 분만실을 울렸다. 분당 150회로 빠르게 뛰는 아기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난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게 진진통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9:00 am

진진통이 시작되었다. 와이프는 임신 때부터 연습해 두었던 명대사를 인터폰으로 날렸다. "I need epidural right now!" 곧바로 의료진이 투입되어 에피듀럴을 위한 시술을 시작했다. 에피두럴이 척추 주사이다 보니 의료진과 환자만 병실에 있을 수 있어 보호자는 잠시 나가 있어야 한다. 20분 정도 걸린다길래 병원 근처에 있는 스벅에서 빵과 커피로 아침을 때우고 들어왔다.


10:00 am

중간 내진. 5cm 열렸다 한다. 촉진제를 맞지 않았는데도 생각보다 진행이 빨랐다. 의사가 거듭 나중 푸시(Push)를 위해 푹 자두라고 했다. 생각 이상으로 체력소모가 크다며 (이 말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실감했다).


10:04 am

아까 입원하자마자 뽑았던 피가 굳었다고 다시 뽑으러 왔다. 미국에서 2위를 한다는 클리브랜드 클리닉에서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미국에 살다 보면 그러려니 하게 된다.


10:55 am

양수가 터졌기 때문에 마냥 기다릴 수 만은 없다고 판단되어 촉진제가 조금씩 투여되었다 (2ml/hr). 레이블을 보니 옥시토신.


11:35 am

아기가 나오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산모를 옆으로 눕히고 촉진제 양을 늘였다 (4ml/hr).


12:05 pm

중간 내진. 9cm 열렸다. 루하가 열심히 몸 풀고 있나 보다.


2:15 pm

자궁 경부가 다 열렸다는 뜻으로 간호사가 Complete란 표현을 썼다. 본격 푸시 준비로 들어갔다. 나보고 오라더니 한쪽 다리를 잡으라 한다. 반대쪽에서 어떻게 잡는지 보여주며 따라 하라 한다. 산모가 올챙이 자세로 다리를 굽히게 한 후 무릎과 발목을 잡아 자세를 유지하게 해 주는 것이다. 수술 조명을 켜고 자궁을 비추었다. 영화에서 보던 출산 장면이 내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2:30 pm

푸시 시작. 진진통을 나타내는 수축 그래프가 올라갈 때마다 푸시를 했다. 초산은 평균 2시간 푸시를 한다고 한다. 매 푸시마다 사력을 다해 힘을 주는데 이걸 2시간이나 한다고? 그게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성애가 동반이 된 초능력이지 않고서야 불가능해 보였다. 산모들이 왜 탈진을 하는지 와이프의 첫 푸시를 보고 바로 이해가 되었다.


3:00 pm

30분을 푸시하자 머리카락이 귀엽게 나 있는 아기의 머리가 조금 보였다. 그런데 그 시점부터 아무리 푸시를 해도 진전이 보이질 않았다. 의사가 장갑을 끼고 손으로 회음부를 늘려서 아기가 나오도록 도왔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때부터 안쪽에서 무엇이 터졌는지 피가 많이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왜 옛날에 출산을 하다가 죽기도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사력을 다해 아기를 바깥세상으로 밀어내는 이 순간이 참 고귀했지만 한편으론 안쓰러움에 마음이 아팠다. 점점 지쳐가는 와이프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기력함을 느꼈지만 다리와 목을 잡아주며 힘내라고 격려할 수밖에 없었다.


3:20 pm

아이의 심박수가 급격하게 떨어졌다가 다시 높이 치솟기를 몇 번 반복했다. 전문가가 아닌 내가 봐도 뭔가 정상은 아니었다. 와이프도 열이 치솟기 시작해 금세 38도까지 올라갔다. 의사가 '크리오(Chorio)'라고 하는데 내가 그 말 뜻을 이해 못하니 터진 양수를 타고 감염이 일어났고, 지금 당장 아이를 꺼내야겠다고 한다 (나중에 찾아보니 Chorioamnionitis, 융모 양막염의 약자였다). 말투는 차분했지만 응급상황이었던 것이다. 의사가 무전으로 응급상황을 알리고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분만실에 의료진 대여섯 명이 추가로 투입이 되었다.


3:26 pm

의사가 둥그런 접시같이 생긴 흡착기를 질 속으로 집어넣고 진공을 걸었다. 다음 진진통에 맞추어 와이프가 푸시를 하자 의사도 동시에 아이의 머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저렇게 세게 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두 번째인가 세 번째 푸시 때 갑자기 뾱! 하고 아이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생각보다 머리가 커서 깜짝 놀랐다. 푸시로만은 절대로 저 머리가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회음부 절개를 하나보다). 흡착기는 계속 아이의 머리에 붙어 있었다.


3:28 pm

한두 번 더 푸시를 하며 의사가 아기를 당기니 나머지 몸통 부분이 쑥 하고 빠져나왔다. 엄청난 양의 피와 함께. 탯줄이 잘리고 갓 세상에 나온 루하가 울기 시작했다. 루하야 안녕, 아빠야.


3:35 pm

아기의 기본적인 검사가 끝나고 나에게 탯줄을 잘라보겠냐고 한다. 아까 엄마와 아기 사이의 탯줄을 순식간에 잘라버리길래 어 나에겐 기회를 안주네 하고 살짝 뾰루퉁 했던 마음을 읽힌 것 같았다. 보니까 길게 잘린 탯줄을 어느 정도 처치한 다음 (아이 배꼽 쪽을 집게로 집고) 아빠에게 짧게 한번 더 자르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었다. 일종의 세리머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탯줄은 한 번에 안 잘린다는 선배 아빠들의 조언이 무색하게 난 탯줄을 한 번에 잘라냈다. 의료진 모두가 감탄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나도 실험실 짬밥이 10년이 넘었는데.


4:00 pm

갓 태어난 루하는 기본 검사가 끝나고 엄마의 품에 안겼지만 문제는 태반이 계속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의사가 탯줄을 잡고 30분 동안 잡아당겨도 떨어지지 않았다. 의사가 체력이 후달리는게 눈에 보였다. 20분쯤 씨름을 했을까 의사가 나한테 자궁이 태반을 놓으려 하지 않아 25분이 넘어도 분리되지 않으면 직접 손을 넣어 분리시키겠다고 했다. 그렇게 손으로 자궁을 여러 번 휘저은 끝에 태반이 분리가 되었다. 와이프 허리 위로는 아기와 엄마의 행복한 첫 만남이었지만 밑으로는 정말 피칠갑이었다. 회음부가 너무 많이 찢어져 너덜너덜한 상태를 와이프가 보지 못하는 게 참 다행이었다.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엄마도 생명을 걸었던 흔적이었다.


4:30 pm

회음부 파열이 꽤 심해 의사가 또 다른 의사를 불러 두 명이서 꼬박 30분을 꿰매었다. Second degree tear(2도 열상)라고 했다. 항문까지 파열이 되는 3도 열상 직전까지 간 꽤 심각해 보이는 파열이었다. 미국에서는 이 정도의 파열이 흔하지 않았는지 수술을 하는 의사들과 이 과정을 지켜보는 의료진들의 표정들이 사뭇 심각했다. 내가 불안해할까 봐 내색하려 하지 않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행히도, 경력이 꽤 있어 보이는 두 의사의 콜라보 덕에 나름 재건이 잘 된 것 같았다. 모든 수술을 마치고 수술 장갑을 벗으며 의사가 아주 힘든 출산이라고 말했다 (it was a very tough delivery). 그래도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한 게 어디인가.


우리 부부가 오롯이 둘이서 시간을 보낸 만 8년 만에 새 식구가 찾아왔다.


반가워, 루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