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곧 사랑인 아가
루하 D+21
탯줄이 떨어진 이후 첫 물 목욕을 했다. 기저귀까지 다 벗긴 알몸을 물속에 넣으니 역시나 울음을 터트린다. 그렇게 우는 루하의 모습을 보니 똑같은 알몸으로 엄마의 자궁 밖으로 나와 울던 3주 전 루하가 생각났다. 지금보다 훨씬 깡마르고 왜소했던 갓 태어난 루하였는데 3주 동안 열심히 자랐구나.
3주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모르겠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출산 당일 새벽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 같긴 한데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느낌이다. 아내와 쉬프트를 나누어 루하 수유를 맡고 있긴 하지만 내 시간이 아니어 침대에 누워 쉬더라도 루하 울음소리에 계속 잠에서 깰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장모님이 보내주신 한약과 커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루하가 주는 기쁨은 그 어떤 어려움을 가뿐히 상쇄해 버린다. 만 8년을 꽉꽉 채우고 결혼 9년 차가 된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늦둥이 아들인 루하는 그 존재 자체가 우리의 기쁨이며 사랑이다. 배고파 울더라도 그 모습조차 이뻐서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볼 때도 있다. 아내와 내가 둘만 있을 때에는 둘이 각기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땐 집이 조용했는데 지금은 집이 조용해졌다 싶으면 어김없이 아기 울음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운다. 처음에는 둘 다 루하가 서럽게 울면 바로 달려갔지만 이제는 웬만큼 파악이 되어 울더라도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며 하던 식사를 마칠 때도 있다.
분명 큰 변화이다. 온몸으로 이 변화를 맞고 있는 우리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 아마 우리 둘이 충분히 사랑하는 시간을 보낸 후라 이 작은 새 식구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충만한 이 기분은 참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