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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Feb 09. 2021

악역이 필요한 때

너를 위한 터미타임

루하 D+22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행복한 신생아 시절을 보내던 루하는 며칠 전부터 아빠로부터 극심한 핍박을 받고 있다. 터미타임, 즉 아기가 목을 가눌 수 있도록 엎드려 놓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놀이(라고 부르는 맹훈련)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 말똥말똥하지만 그렇다고 배고픈 상태가 아닐 때 아빠는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여지없이 루하를 엎어놓는 빌런이 된다.


태어난 지 이제 3주가 된 루하이지만 터미타임을 신생아 때부터 시켜야 한다는 말을 들어 눈물을 머금고 터미타임을 시키는 중이다. 아직도 자신의 머리가 너무 무거운 루하를 엎어놓으면 코와 입이 둘 다 막혀 질식하시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첫 터미타임을 가졌는데 놀랍게도 루하는 서럽게 울면서도 자신의 머리를 옆으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반복해서 다시 땅으로 머리를 향하게 해 봐도 연속해서 고개를 살짝 틀어 호흡을 확보하는 루하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이 생존 본능은 강하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루하는 터미타임 때 많이 운다. 얼굴부터 발까지 밀려오는 중력을 거슬러야 하지만 아직은 미약한 근육이 힘들고 서럽겠지. 하지만 자식이 그렇게까지 괴로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달래 가며 그 길을 걷게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인 것 같다. 이것이 아이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는 거라는 사실을 요즘 루하를 보며 새삼 느끼고 있다. 터미타임을 시키는 아빠가 지금은 서럽고 밉겠지만 이것이 기어 다닐 때, 걸어 다닐 때, 달려 나갈 때 도움이 될 것이란 것을 후에 깨닫게 되겠지. 아이에게 정서적인 트라우마나 결핍을 주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훈련과 도전을 감내하게 하는 균형을 맞추는 것이 최대 관건인 것 같다.


터미타임으로 낑낑대면서도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루하를 보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 짠하다. 이 세상을 살아나가며 겪어야 할 수많은 터미타임이 있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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