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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Feb 10. 2021

출생신고를 준비하며

미국은 자동, 한국은 수동

루하 D+23


루하의 소셜 카드가 오늘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Social Security Card, 미국 주민등록번호라고 할 수 있는 Social Security Number가 적힌 카드이며 미국에서 신분을 증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카드이기도 하다.


출산병원에서 퇴원하기 전 간단한 서류 2장만 제출했을 뿐인데. 신분 관련 서류들과 비자 관련 서류들을 바리바리 준비해 몇 시간씩 대기 후에야 신청이 가능했던 아내와 나의 케이스와는 참 대비되는 순간이다. 이것이 내국인의 클라스인가 싶었다.


생각난 김에 한국 출생신고를 준비했다. 한국에 있었으면 주민센터 가서 바로 해결했을 텐데, 여기서는 가장 가까운 시카고 총영사관이 7시간이다. 순간 왕복 14시간 운전을 해야 하나 흠칫했지만 다행히 우편접수 옵션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인지라 기본 옵션인 출생신고서에 덧붙여 미국 Birth Certificate(출생증명서), 출생증명서 번역본, 부모 여권 사본, 전자적 송부 신청서, 우표 붙인 회송용 봉투가 필요했다. 게다가 루하의 영어 이름인 John은 한국 출생신고서에 넣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름이 다른 사유를 담은 사유서까지 첨부해야 했다. 뭐 이 정도 서류는 미국 생활하면서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 치곤 매우 간단한 편이라 마음이 놓였다.


출생신고서를 작성하며 루하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잘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십 대 시절을 외국에서 보냈지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어찌 됐건 내 국적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하는 이중국적자이기 때문에 나처럼 자동적으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리란 보장이 없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 얼마나 더 있게 될지 모르지만 루하가 유년시절을 미국에서 보내게 된다면 이 정체성은 더 희미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우리 부부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하겠지만 말이다.


보스턴에 있을 때도, LA에 있을 때도 미국에 꽤 오래 사셨고 적응도 잘하셨지만 자녀 때문에 귀국하시는 분들을 종종 보았다. 한국의 입시문화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와도 여기에서 '이방인'으로 내 아이가 자라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그렇다. 아무리 영어를 잘하고 미국인으로 태어났다 해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순간 이방인이다. 미국에 완전히 융화되는 단 한가지 방법은 온전한 미국인이 되는 것. 하지만 난 루하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한국계 미국인들이 어떤 identity crisis를 겪는지 봐왔던 케이스가 있어 더 그런 것 같다.


내가 십대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내고 대학을 한국으로 갔을 때 느꼈던 그 소속감, 내 조국이라는 느낌을 루하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너의 의견 또한 존중할게 루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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