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람일 뿐입니다
루하 D+384
약 백일 동안의 육아일기 공백기 중 루하는 돌을 맞았다. 오미크론이 최절정을 찍는 미국 상황이라 돌잔치 대신 우리 세 식구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홈 스튜디오 촬영도 했다. 돌이라는 것이, 따뜻한 엄마의 자궁을 떠나 바깥 세상에서 무사히 365일을 지내온 것을 축하하는 면도 있지만 기존의 생활리듬이 박살나버린 엄마 아빠의 헌신을 기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시끌벅적한 돌잔치가 아닌 조용히 우리끼리 보내는 돌이어서 더 담백하게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루하는 걷는다. 스스로 목을 가누는 것을 보며 경탄했었는데, 이젠 이족보행으로 엄마 아빠를 졸졸 따라다닌다. 예전에는 엄마 아빠를 따라가기엔 난 작고 느린 존재라고 인식해 (진짜 그렇다고 한다) 엄빠가 안 보이면 일단 울었지만 지금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는 나를 단번에 찾아낸다. 아주 환한 표정으로.
점점 루하가 사람의 면모를 갖춰가는, 아니 이미 작은 사람이라고 느끼는 부분들이 많다. 그중의 하나가 우리 부부의 표정과 대화의 톤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같은 굳은 표정이라도 장난으로 짓는 것과 진짜 훈육시의 표정을 정확히 구분해 낸다. 장난으로 굳은 표정을 지으면 실실 웃으며 더 해보라는 미소를 짓지만 훈육을 할 때에는 스파이더센스급 인지력으로 선 울음을 터뜨린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어버리면 훈육 효과는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은 덤이다.
울고 웃는 것은 통상 아기의 일상이기 때문에 익숙하다. 하지만 최근에 등장한 '매우 서럽고 구슬픈 울음'은 나나 아내나 처음 경험하는 류라 신기하면서도 이 아기도 작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제 루하는 '루하'가 자신을 지칭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엄한 표정과 단호한 톤으로 "루하야!"라고 운만 띄워도 루하는 바로 서러운 울음을 터트린다. 으앙~에서 시작한 울음은 이내 윽윽 거리는 흐느낌으로 바뀐다. 훈육의 훈자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세상의 모든 서러움을 짊어진 아기가 된다.
이 모습이 너무 귀여우면서 짠해 우리 부부는 표정관리가 힘들다. 아까도 루하가 손톱으로 내 발을 찍어 상처를 내길래 "루하야! 손톱으로 사람을 찌르면 안 돼."라고 말하자마자 바로 눈물의 비가 쏟아졌다. 끄윽끄윽 거리는 모습을 잠시 보고 있다가 너무 격해지길래 안아서 달래고 있는데 옆에서 아내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끄윽끄윽 웃음을 참고 있다. 우는 루하가 짠하지만 너무 귀여운 거지. 나도 자꾸 입술이 씰룩거려 힘들었다. 감정은 보듬어주되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알려줘야 할 텐데. 게다가 표정관리까지. 쉽지 않다.
예전에는 배고픔과 아픔같은 본능적인, 자신만의 감정에 충실했었는데 이제는 상대방의 감정에 반응한다. 이 아기도 희로애락 모든 감정을 느끼는 작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언제 이렇게 자랐나.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