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의하는 '꼰대'
“라떼는 말이야”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처럼 번져 꼰대를 풍자한다. 가끔 ‘꼰대’라는 단어를 말하고, 듣게 된다. 특히 빠른 세대변화로 꼰대로 지칭되는 사람들은 나이로 구분되지 않아 ‘젊은 꼰대’라는 말을 듣는다. 대부분 온라인 상에서 악의적으로 듣는 편이지만 스스로 ‘꼰대’가 되지 말자고 매번 다짐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꼰대’는 ‘늙은이’, ‘선생님’을 지칭하는 은어로 정의되었다. 그리고 “기성세대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젊은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 방식 따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꼰대질이 정의되었는데 매우 공감된다.
40대 후반 이상의 나이를 가진 분들을 자주 만난다. 꼰대질을 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상반되게 배울 점이 많은 사람도 있다. 그중 나는 배울 점이 많은 분들을 보면서 장점을 찾아 ‘나도 저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책임은 스스로, 성과는 당사자가’, ‘좋은 기회라도 강요가 아닌 제안으로’, ‘편협적이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등의 모습이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주로 ‘꼰대’, ‘꼰대질’을 나쁘게 표현한다. 하지만 나는 주로 부모님처럼 내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 생각하려 한다. 좋은 지적과 조언은 받아들이기도 한다. 악의적인 쓴소리는 흘려 넘기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확실히 몇 가지 안 좋은 점은 몇 가지 있다. 이런 사람은 나이를 떠나 내 또래의 분들도 많다. 그리고 20대의 사람 중에서도 자주 본다.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 것 마냥 강조하면서 말이다. 비슷한 몇 가지가 있다.
과거지향적인 사람
“세상 좋아졌어. 나 때는 말이야 ~ ”로 시작한다.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과거 자신의 영광에 취해 있는 모습이다. 이런 말은 예의를 강요하거나 열정 페이를 강요할 때다. 이런 분에게 “더 나은 사회를 이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라고 나에게 이야기하신 선생님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장준하 선생님의 돌베개에서도 이런 내용의 회고가 있다. 나는 이 말을 절대 잊지 않겠다.
권위적인 사람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특권 중 하나가 나이 특권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이를 통한 말을 놓는 것이 당연했고, ‘형이야’라면서 권위를 강조했다. 지금도 그 버릇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언쟁이 심해질 때 “너 몇 살이야”라는 말은 이제는 웃기지도 않는다. 권위적인 사람은 특히 회의 자리에서 많이 본다. 청년 관련 회의를 할 때 당사자와 전문가를 그룹 지어 이야기를 나눌 때가 많다. 청년들이 애로사항이나 희망사항을 이야기하면 학술적 이야기로 자신의 지식을 뽐낸다. 나 역시도 유식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색다른 단어를 자주 쓴 적이 있는데, 돌이켜보면 상대방을 전혀 설득 하지도 못 했다. 권위를 강조하는 것은 참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한다.
책임 회피하는 사람
TV 드라마에서 정말 싫은 상사의 모습 중 하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한 교수는 환자의 안 좋은 상황을 전공의의 탓으로 돌렸다. 정작 제때 오더를 주진 않은 자신은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좋거나 나쁜 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주로 한 사람의 책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한 개인의 의해서 벌어진 그 상황 자체가 잘 못 된 경우다.
경험 만능 주의
과거지향적, 권위주의적인 사람들이 합쳐진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서는 모습도 있다. 자신의 경험이 세상의 진리인 것 마냥 이야기하고, 강조하는 사람이다. 특히 이런 모습은 ‘젊은 꼰대’ 중에서도 쉽사리 보인다. 대표적으로 내 모습이다. 많은 경험을 한 것을 나의 장점으로 생각했다. 분명 장점은 맞다. 그러나 이에 취해서 이것이 전부인 것 마냥 이야기하고 다녔다. 경험은 분명 무언가 결정을 할 때 좋은 데이터이고, 사례이다. 다만 당시 상황이 모든 상황과 맞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경험을 통해서 보완하거나 수정할 수 있을지언정 그게 진리인 것 마냥 강조해서는 안 된다.
내로남불
이런 모습은 개인을 뛰어넘어 내 편에게는 관대하고, 남의 편에게는 엄격하다. 정치인들이 혐오받는 대표적인 이유이다. 일상에서도 쉽게 보여진다. 가끔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그만큼 항상 주의한다. ‘내로남불’이 싫은 이유는 기준도 없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앞뒤가 다른 모습이 복합적으로 섞여있다. 함께 하는 사람이 소중하지만 나와의 다름도 인정하여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이 더욱 멋져 보인다.
끄적여 보니 부끄러운 내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스스로가 하는 것만큼 미련하고 부끄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아마도 그런 용도이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적어놓음으로써 이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유의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그 어떤 상황과 다름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새겨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