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도서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야 Apr 23. 2018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1999년에는 남녀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제정됐고,
김지영 씨가 스무살이던 2001년에는 여성부가 출범했다.    


80년대까지 여성의 삶은 “당연”했다. 남자에게 양보했고, 남자들을 위해 일해야 했고,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오미숙 씨는 오 남매 중 공부를 제일 잘했지만, 오빠와 남동생을 위해 돈을 벌었다. 그리고 남편을 위해, 자식들을 위한 삶을 살았다. 아마도 60년대 이전에 태어난 여성들의 삶을 그렇게 “당연”했다.


"동생이 특별대우를 받는다거나 그래서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원래 그랬으니까."


82년생인 김지영 씨의 삶도 남동생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남자 학생들, 남자 동기들이 우선이었다. 원래 그랬던 세상은 차별을 금지했지만 계속 그랬다.     

소설은 82년생인 김지영 씨.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여성’이었다. 김지영 씨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평범한 여성이 살아온 과정을 보여준다. 1980년대 가정의 딸, 1990년대 학교의 여학생, 2000년대 사회의 여자. 공감하기에는 나는 전형적인 남성이었다. 이해하면서 ‘그랬구나!’라고 받아드려야 했다. 불편함의 연속을.     

2001년부터의 이야기를 보면서 어쩌면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취업준비, 회사생활, 결혼, 출산, 육아. 그렇기에 더욱 공감해야 했고,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그게 앞으로 내가 알고, 지켜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부터 그래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녀 차별 금지법이 생겼고, 여성부가 생긴 그 이후이다.     


“그 선배들 거의 남자잖아. 너 여자 선배 몇 명이나 본 것 같아?”

취업준비에 한창이던 김지영 씨는 취업 설명회 등을 찾았다. 그러나 여자 선배는 없었다. 기업은 대학교수를 통해 비공식 채용 추천을 받는데 다 남자를 추천했다. 2005년 100여 개 기업의 여성 채용비율은 29.6%였다. 50여개 기업의 인사 담당자 설문 조사에서 ‘비슷한 조건이라면 남성지원자들 선호한다’는 대답이 44%, 여성 선호는 한명도 없었다. 능력 있는 여성은 부담스런 존재이고, 남자는 군대, 가정의 가장이 된다는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겨우 보게 된 면접에서는 신체 접촉시의 대응 방안을 묻는가 하면, 김지영 씨의 아버지는 시집이나 가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얘기했다.      


대표는 업무 강도와 특성상 일과 결혼 생활, 특히 육아를 병행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여직원들을 오래갈 동료로 여기지 않는다.


작은 홍보대행사에 들어간 김지영 씨는 회사의 장기프로젝트를 위한 기획팀에 들어가고 싶었다. 사내 평판이 좋았던 김지영 씨가 아닌 남자 동기가 합류했다. 여자 신입사원은 까다로운 클라이언트를 주로 맡기도 했다. 장기프로젝트였고, 남자였다. 그리고 연봉도 그들이 더 높았다.

김지영 씨의 상사 중에 김은실 팀장이 있다. 유일한 여자 팀장이었다. 누군가는 독하다고, 누군가는 남편을 칭찬했다. 직원이 50명 정도인 회사는 여직원이 많았지만, 관리직은 남성 비율이 높았다.     


“아직은 아빠 성을 따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
엄마 성을 따랐다고 하면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결혼을 하게 된 김지영 씨는 남편과 함께 혼인신고서를 작성한다. ‘5번.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 2008년부터 호주제가 페지 되면서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를 수 있다. 그러나 2008년 65건 이후 매년 200건 안팎에 불과하다.

결혼 후 어른들은 부부에게 아이 소식을 물었다. 부부는 아직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시댁 친척어른들은 김지영 씨의 몸 상태를 걱정했다. ‘아무튼 김지영 씨의 문제로 결론이 나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지영 씨와 정대현 씨는 내내 싸웠다. 그리고 정대현 씨는 잔소리를 안 듣는 방법으로 ‘그냥 하나 낳자’고 한다. ‘당연’히 낳을 생각은 있었지만 이처럼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그 한 사람은 당연히 김지영 씨였다.

출산예정일이 다가 온 부부는 회사와 육아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부부 중 한 사람이 직접 육아를 맡기로 결정했다. 정대현 씨의 직장과 수입도 있지만, 아내가 육아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직장을 그만둔 여성의 절반 이상이 5년 넘도록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어렵게 재취업하더라도 직종과 고용형태 면에서도 모두 하향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정지원 양이 어린이 집에 잘 적응해가면서 김지영 씨는 뭔가 시작해보고 싶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면서. 그러나 대부분이 파트타임이고, 방문교사나 학원강사도 일부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살린 프리랜서는 극히 드물었다.

아이스크림 가게 파트타임을 본 김지영 씨는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남편의 응원으로 진로를 고민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수업이 늦은 저녁이고, 수업료에 시터 비용은 부담이었다. 김지영 씨는 아이스크림 가게와 같은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김지영 씨는 오랜만에 공원에서 커피를 마셨다. 1500원이었다. 옆에는 직장인들이 있었고, 김지영 씨는 그들이 부러웠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대화가 들렸고, 김지영 씨는 급히 공원을 빠져나왔다. 출산과 육아를 위해 일도, 꿈도, 자신도 포기한 김지영 씨는 벌레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

김지영 씨를 상담한 정신과 의사는 스스로 평범하지 않는 40대 남자라고 한다. 김지영 씨와 비슷한 아내를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보다 능력도 뛰어나고, 욕심도 많은 아내였다. 출산과 육아로 할 수 있는 것이 수학문제 밖에 없던 아내였다. 그렇기에 자신은 아내와 김지영 씨가 좋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사가 자신에게 출산으로 퇴사하는 상담사 여직원을 보며 생각했다.     


책을 처음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당연’하다는 말로 불편한 진실을 넘어가는 모습들이었다. 특히 여성들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과 ‘아무’도 될 수 없었던 가정. 그 ‘당연’이라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혜택을 받는 것에 ‘당연’함을 느꼈던 내 모습을 돌아봤다. 분명 ‘당연’함이란 이유로 나는 인식조차 못 했을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불편함이었다.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겪는 불편한 진실은 너무나도 많았다.     

할아버지 의사의 말처럼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방망이 대신 세탁기로 빨래를, 쭈그려서 쓸고 닦는 대신 청소리로 청소를 하는 것처럼. 시어머니를 모시고,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던 오미숙 씨의 세상과 김지영 씨가 사는 세상은 달랐다. 여학생이 반장이 되고, 많은 여성들이 대학을 다니고, 일을 했다. 그리고 남녀 차별 금지법이 생기고, 여성부가 생긴 것처럼. 보여지는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할아버지 의사는 청소를 해봤을까?
정대현 씨는 육아로 일을 포기할 수 있었을까?
김지영 씨가 원했다면 정지원 양은 김지원 양이 될 수 있었을까?
카페의 남성 직장인들은 남자들에게도 똑같이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정신과 의사는 진짜 김지영 씨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누군가는 이제 여성들도 평등한 기회를 얻는다고 말한다. 대학진학률, 성공한 여성 창업가·정치인으로 여성의 삶이 나아졌다고 봐서는 안 된다. 집안일, 육아, 음식 등은 여성이란 이유로 해야 되는 일이며,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한다. ‘나는 안 그런다.’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나도 다 모르기에 이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기에 차별받는 것이 너무 많다. 일도, 꿈도, 인생도, 심지어 자신조차도 차별 받는다. 세상은 과연 참 많이 바뀐 것일까.

  

‘예전에 비하면’이라는 말로 해결될 수 없다. 책에는 오미숙 씨와 김지영 씨의 세상은 다르다. 참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도 세상은 남자가 하는 일, 여자가 하는 일로 나뉘어졌다. 오미숙 씨와 김지영 씨라서가 아닌 여자라서, 엄마라서. 그 이유로 일도, 꿈도, 인생도, 심지어 자신조차도 포기하는 삶을 사는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82년생 김지영』은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고 한다. 실제로 나로서는 평범한지, 아니면 그나마 나은 여성인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이게 전부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사는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거칠게 정리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정리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보다 더 하면 더했지, 나을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넉넉하진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고, 김은영 씨, 강혜수 씨, 김은실 씨처럼 불합리에 대응하는 동료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남편인 정대현 씨는 그나마 나은 남성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몇 분과 이야기 나누며 꽤 괜찮은 남편에서 하향되긴 했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