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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뤼 Jul 23. 2021

지금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청하던 드라마 떠나보내기

태생부터 아싸였던 나는 학창시절 골방에 틀어박혀 드라마만 주구장창 봤다. 2000년대 후반 ~ 2015년에  방영한 드라마의 제목과 내용은 왠만하면 다 알고 있을 정도로 드라마와 짱친을 먹었다.


월화 미니시리즈, 수목 특별기획 드라마, 금요일 시트콤 또는 일일 드라마, 온갖 종류의 드라마를 다

섭렵했다. 연말에는 각종 방송사 시상식 챙겨보느라 바빴다. 지금은 케이블이나 종편에서 제작한 드라마가 훨씬 더 세련됐지만, 2010년대 초반에는 지상파에서도 명작이 쏟아져 나올 때라 수상 경쟁이 치열해 누가 대상을 탈 지 한 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박진감이 넘쳤다. 아무튼, 찐따 주제에 일 년 내내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내게 드라마는 적당히 시간 때우기 위한 유희의 도구 그 이상이었는데, (진부한 표현이지만) 드라마는 안식처이자 현실도피를 돕는 탈출구였다. 캐릭터 설정, 인물, 갈등, 반전 등 온갖 요소들이 합심하여 나를 드라마라는 가상의 시공간에 결박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가상 세계에 머물러 있고 싶은 내 의지가 더 컸다. 그렇게라도 지겨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으니까. 집-학교의 연속인 무료한 일상에 대안적인 삶의 그림을 제시해주던 게 바로 드라마니까.


드라마는 비루한 찐따, 중딩의 삶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숱한 좌절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끝내 모든 걸 이겨내는 주인공처럼, 나 또한 내 삶의 마지막 날에는 반드시 웃게 될 거라는 희망. 모든 일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희망을 붙잡고 현실을 살아갔다. 해피엔딩이 좋았다. 그리고 내심 작중 인물들이 부러웠다. 나만큼 평탄한 인생을 살진 않았겠지만, 마지막에 웃는 자들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도 아프고 다쳐도 좋으니 그들처럼 마음껏 모험하고 싶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고등학교 졸업 후, 학업에만 편중되었던 내 삶에도 다양한 사람들과 경험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현생에 집중하면서부터 드라마와 멀어졌다.


요즘 들어 한국 드라마에 미쳐 있던, 드라마가 내 삶의 전부였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무엇보다도 더 그리운 건, 때론 충격적이고 때론 설레는 엔딩에 잠을 설치던 그 날들. 다음 화 전개가 너무너무 궁금해서 시간을 마음대로 앞당기고 싶었지만, 시간 앞에서 무력한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한없이 좌절하곤 했던 지난 날들. 그러다 (고작 1주일이지만 나에겐 영겁 같았던) 기다림 끝에 다음 화가 방영하는 날이 되면


"하 드디어, 오늘 <XXX> (드라마 이름) 하는 날이네"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TV 앞에 자리를 잡던 그 날들.


"오늘 스카이캐슬 하는 날이라 일찍 일어나 봐야 돼" 라고 하며 술자리에서 파하던 날들.


'본방사수'가 더 익숙하던 날들.


너무나 그립다.  


그리고 이젠 이 엔딩 크레딧도:


지금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엔딩 크레딧 문구가 시청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겪던 이유는 엔딩 크레딧이 뜨는 순간 작품의 세계관에서 방랑하던 과거의 ‘와도 작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세상이 현실이 아니라 허구였음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것이다. 이른 바 현실자각타임- 줄여서 ‘현타씨게 맞는다.


중.고딩 시절, 나에게 가장 뼈아픈 이별은 바로 애청하는 드라마와의 이별이었다. 매 주 같은 시간, 내 일상에 똑똑! 말을 걸어주던 친구가 이제 더는 나를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라! 가슴에 큰 구멍이 뻥 뚫린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OTT 플랫폼이 등장하고, 몰아보기 (binge-watching)이 보편적인 콘텐츠 시청행태로 자리 잡으면서부터 이런 깊은 여운을 느끼기 어려워졌다. 다음 화가 궁금하면 바로 이어서 보면 된다. 며칠 씩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과거의 ‘나’란 존재하지 않는다. 애청하던 드라마를 그리워 할 새도 없이 다른 작품을 봐야한다.

얼마든지 몰입할  있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이별에이 잦은 만큼 그러려니, 덤덤해진다.


콘텐츠의 홍수 시대다. 좋은 작품과의 이별에 더는 아파하지 않는 것도 우리 시대의 크나큰 상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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