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윤의 세계
잘 나가는 K팝 아이돌보다도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을 더 깊이 덕질하는 이유는 참가자들의 ‘성장 서사’를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 또는 무명 가수인 참가자들이 실력을 발휘하고 인지도를 얻는 과정에 과몰입하며 ‘나도 성공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 지난 겨울, 무명가수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는 취지의 프로그램 ‘싱어게인’을 애청했다. 개성 넘치고 내공이 탄탄한 실력자들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무명가수 30호'로 출연한 밴드 알라리깡숑의 보컬 이승윤이 내 ‘최애’ 참가자였다.
이효리의 댄스곡 <치티치티뱅뱅>을 펑키한 록 스타일로 재해석한 3 라운드 무대를 보고 반했다. 특유의 오버스러운 발음과 약에 취한 듯한 기괴한 몸짓은 그 자체로 멋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무대 위에서 언제나 민낯을 드러낼 줄 아는 태도는 다른 참가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멋짐이었다.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 그냥 그냥'이라고 읊조리는 첫 소절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서바이벌 체계에 던지는 반항기였다. 모두가 생존하기 위해, 대중과 심사위원의 기호에 맞게 재능을 포장하기 바쁜 오디션장에서, ‘그 누구도 내게 간섭마 여긴 나만의 것 it’s my world’ 라며 눈치보지 않고 자신의 것을 해나가겠다고 선언한다. 앞선 라운드에서 극찬을 받았던 기타 연주를 포기하고 맨 몸으로 무대에 오르는 당돌함이 멋있었다.
이어지는 세미파이널과 파이널 무대에서도 산울림의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BTS의 <소우주>, 이적의 <물>을 편곡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펼쳐보였고, 매 무대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1000만 뷰 이상을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았다. 그는 끝내 우승을 차지했다. 그동안 앨범 8장을 발매했지만 유의미한 성과 없이 간신히 음악 생활을 해오던 이승윤은 하루 아침에 ‘우주대스타’가 됐다.
별이 상징하는 성공 서사에만 익숙한 나는 이승윤이 얻은 인지도와 재능을 부러워했고, 노력하면 닮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가득찼다. 하지만, 기성 가수들의 곡으로만 경연을 펼쳐야 했던 ‘싱어게인’에서 벗어나, 이승윤의 음악 세계가 온전히 담긴 그의 자작곡들을 음미해본다면, 그에게 성공이란 ‘반짝’하고 지는 인기 따위가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간절한 마음’같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이승윤의 대표곡 <게인주의>의 가사를 보자. '헤이 미스터 갤럭시 뭐 그리 혼자 빛나고 있어/ 착각은 말랬지/ 널 우리가 지탱하고 있어/ 별과 별 사이엔 어둠이 더 많아/.' 별이 제 아무리 빛나도 어둠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통렬한 야유를 보내는 전복적인 메시지다. 빛과 별이라는 상투적 이미지를 버리고 어둠을 주변화하지 않는 이 대목에서는, 세계는 빛과 어둠의 총체적 관계로 이뤄진다는 깊은 통찰을 전한다.
'삶의 신조'가 담겼다는 또 다른 자작곡 <달이 참 예쁘다고>에는 '밤 하늘 빛나는 수만 가지 별들이/ 이미 죽어버린 행성의 잔해라면/ 고개를 들어 경의를 표하기 보단, 허리를 숙여 흙을 한 웅큼 집어들래/‘ 라는 가사가 있다. 반짝이고 생동감 넘치는 별도 어쩌면 이미 사라진 행성의 잔해일 수 있다며, '눈부시게 빛나는 건 다 아름답다'는 기존의 통념을 비꼰다. 함부로 누군가를 상징으로 만들고 영웅으로 둔갑시켰다가 원치 않는 모습을 발견하는 즉시 내치는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을 맹렬히 비판하는 곡 <영웅 수집가>와 맥락을 같이 하는 가사다.
이승윤의 음악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시적 찬미로 가득하다. 그 세상이 설령 별처럼 빛나지 않더라도 귀하다고 말한다. '우린 우리 자신일 때 더욱 빛나'와 같은 위로와는 차원이 다른 메시지다. 별이 아니어도, 빛나지 않더라도, 어둠으로서도 충분히 이 세계를 구성할 수 있으며, 어둠이 빛보다 쓸모가 덜하지도 않다는 뜻이다. 나는 이승윤을 선망한다. 선망은 부러워서 닮고 싶은 마음이라 했다. 진득한 노력으로 일궈낸 그의 성공만을 부러워한다면 그를 영영 닮을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진솔하고 겸손한 내면을 닮고 싶다. 내가 선망하는 스타 이승윤처럼 ‘무명성 지구인’으로서 ‘죽어서 어딘가 이름을 남기기보단, 살아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한 번 더 불러’봐야겠다고 읊조리며, 하늘을 올려다 봤다. 과연, 그의 노래 가사대로 별과 별 사이엔 어둠이 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