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고 무모했던 그 시절을 놓아줄 때가 됐다
학창 시절도 어느덧 아득히 먼 과거가 되었다. 비록 인간은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하는 존재라지만, 대학원 진학이라는 '넥스트 레벨'을 택하지 않는 (아마 대다수의) 학부 졸업생들에게 대학생활의 끝은 강의실 공부와 작별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대학 졸업은 초. 중. 고등학교 졸업과는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 대학교 졸업은 16~20여 년 간 가슴팍에 붙이고 있던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불가역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이라는 신분, '젊음'이라는 시간은 수많은 과오를 낳았고 또 눈 감아주었다. 새내기 때 술을 조금만 덜 마셨더라면 내 학점의 앞자리가 달라졌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했다. 잃은 게 어디 뇌 세포와 깨끗한 장기뿐이었던가. 사람에게 쓸 수 있는 마음의 총량이 있다면, 아마 대학시절 맺은 인간관계를 통해 내 마음은 다 거덜 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외로운 방구석 생활을 영위 중인가. 우리는 실로 귀중한 시간을 학업뿐만 아니라 사랑, 우정, 꿈 등에 소비했다.
젊음이란, 인생이란, 광기라는 탈을 쓰고 참으로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스가 아쓰코는 "과거의 향기는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 마법을 써서 돌아간다 해도 같은 향기를 반복해서 음미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졸업 후 적적한 마음에 학교를 찾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적해진 캠퍼스에서, 운동장 둘레길 위에 쌓인 낙엽을 사부작사부작 밟으며 걸었다. 한 걸음씩 내딛으며 게 눈 감추듯 흘러버린 세월을 떠올렸다. 그 속엔 보고 싶은 사람들과, 학생들의 총기로 가득 찬 강의실과, 단풍을 배경 삼아 매 학기 열린 축제의 열기가 있다. 학교를 다시 찾았지만, 과거는 기억 속에만 머물러 있을 뿐, 그때의 향기를 반복해서 음미할 수 없었다.
졸업을 한 지도 어언 1년이 다 되어간다. 좋은 때는 다 지나간 걸까? 더는 세상을 무모하게, 눈치 보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걸까? 나도 어느덧 어른이 되어 버린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진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나이 드는 거'라던 할아버지의 말이 맞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게 막막하다.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이제 이야기의 첫 장을 탈고했을 뿐인데도, 이야기를 완결하지 못할 것만 같다는 두려움에 잠겨 무기력해지는 요즘이다. '푸릇한 봄 캠퍼스를 떠나온 것처럼, 언젠가는 두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상 또한 떠날 날이 오겠지.' 모든 일에는 결국 끝이 있다는 삶의 진리를 떠올리며, 지난 시간을 붙들고 또 새로이 쌓아나갈 추억을 기대하며 용기를 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