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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 Feb 18. 2020

[이럴때 이런취미] 실수했을 때

나는 아직 과거의 실수를 완벽히 극복하지 못했다. 잊어버리거나 만회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실수는 참으로 고약한 과거다. 실수를 알아차린 순간부터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온종일 못살게 굴기 때문이다. 잊어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잊기가 참으로 힘들다.

 마음이 나의 행동을 두고 잘못된 , 실수였지만 죄라고 여기고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 나는 그것을 스스로 해결할 방도가 없다. 죄인이 죄를 스스로 해결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공정한 심판자를 찾아야하는  맞지만 나의 삶의 대부분 죄들은 심판자를 찾을  없다. 경찰에 끌려갈 범죄행위가 아니며 법으로 해결할 행위도 아니었고 다니는 회사들은 모두 징계위원회가 없었다.

취미는 해결책이 아니지만 내가 꾸준히 나일  있도록, 내가 나를 긍정할  있도록 돕는다. 나는 취미로 나를 어줍잖게 위로하며 살아갈 의지를 북돋는다.

과거의 잘못된 행동이 잊히지 않을 때는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거나, 아니면 하루종일 생각할만한 다른 것을 만나는 .

실수했을 때는 나의 과거로부터 아주 멀리 도망치기로 했다. 그걸 계속 곱씹고 곰곰 생각하다가는 자기비하나 연민에 빠지기 쉽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로를 밟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일로서 취미를 시작해야 한다.

나는 수다를 떤다. 친구에게 내가 실수했던 일을 늘어놓고 그걸 비웃거나 위로해주는 친구들을 통해 잠시나마 객관적으로 실수를 바라본다. 잘되면 지난날 웃음거리로 승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항상 효력을 발휘하는  아니다. 소식을 듣자마자 놀랍고 두려워하는 친구의 반응을 보게되면, 여전히 나는 실수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좌절하면서 깨닫기 때문이다.
함께 실수투성이인 인간으로서, 인류애를 담아 자신의 엄청난 실수담을 늘어놓는 친구들도 있다. 그에 비하면  실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나의 실수를 뒤엎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기도를 한다. (신앙생활은 취미가 아니지만, 기도는 취미가   있지 않을까?) 각자 믿는 신이 있다면 기도하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신에게 탓을 돌리기도 하면서, 실수를 뒤엎는 기적을 소원한다. 나의 실수가 사소해지도록 말이다. 마치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주문한 경우처럼 아주 사소한 실수로 치부될  있다면... 그래서  실수가 가십거리가 되지 않고 그저 넘길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빌고  빈다.
신을 믿는 믿음이 강할수록  바람을 들어주리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어느새 후련해진다.

그러나 일말의 의심이 남아있거나,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럴  중독이 답이다. 실수를 잊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모바일게임을 사랑한다. 게임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시간을 버틸  있도록 해준다. 특히나 무엇이 팡팡 터지는 단순한 퍼즐 게임들에 미친다. 팡팡 터질 때마다 희열이 느껴진다. 스마트폰은 언제나 곁에 있으니, 아무때나 실수가 떠올라 괴로워지면 게임을   있다.

물론 실수를 곱씹으며 반성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반성을 지나 자기비하와 혐오에 들어서게  ,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이런 취미들을 선택한다. 그런다고 실수가 사라지는  아니다. 다만 이미 주워담을  없는 말실수 같은 것들은 지나가버린 버스다.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엔 피하는  상책 아닌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수들은 나를 정신을 못차리게 한다.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삶을 내가 챙기기 위해, 뻔뻔하게  자신만을 위하여 취미를 고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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