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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 Aug 28. 2022

#3 그 여름의 매운 향연

여름

  난 눈 시리게 매운 향연에 뒤를 돌아보았고, 그 자리에 네가 있었을 뿐이다. 처음 만난 너의 인상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어울리지 않는 그 밤색 코트는 그렇다 치고, 머쓱하게 손을 머리 위로 올릴 때 나는 하얀 연기 냄새는 불친절했다. 스터디 일원으로 친구가 아무나 뽑게 내버려 두었던 것은 내 잘못이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사람을 맞이할 수는 없는데.

  신념이란 판단, 주장, 의견 따위를 진리라고 생각하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나는 담배가 거북하다. 그리고 그 신념은 어릴 때부터 꽤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태우시는 아빠는 담배만 태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믿음마저 태운 것이다.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로 하얀 연기를 들이마시면서 살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아빠의 텁텁한 웃음이 달갑게 다가오진 않았다. 일생 전부를 까맣게 만들어버리고 싶은 거냐는 의사의 호통에 아빠는 그제야 그 행위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매캐한 연기가 올라올 때, 얄궂게 눈치를 보던 아빠의 표정만이 생각나 그 자리를 피한다. 그리고 그 행위자도 피한다.

  그런데 신념이란 게 참 선이 없다. 진리는 상대적이어서 감정 앞에 무너지기도 하니 말이다. 그날의 엉뚱한 고백이 피어올라 지금도 황당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넌 무슨 생각으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담배를 태우며 고백을 했던 걸까. 네가 몇 번을 시도해도 켜지지 않는 라이터를 어색하게 만질 때, 나는 네 몸의 온 시선이 내게 꽂혔기 때문임을 알았다. 바닥에 버린 담배꽁초들의 개수는 네가 몇 번을 망설이다 내 이름을 부른 것인지도 나타냈다. 미묘하게 흔들리는 시선이 재미있어서 자꾸만 뚫어지게 네 까만 동공을 쳐다보았다. 그 속에 있는 내가 이미 너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이만하면 그만 놀려도 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네 손을 잡았다.

  후에 네가 왜 고백을 받아줬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름의 아지랑이 때문인지 연기 때문인지 모를 그것 때문에 내 시야는 가려졌고, 그때의 네 얼굴이 어쩐지 나쁘지 않게 보여서였다고. 사실 나는 내 풀린 신발 끈을 엉성하게 묶어주던 네 모양새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길거리에서 할머니들이 작게 채소를 팔면 모조리 사와 우리와 함께 나눴던 그 마음의 크기도 가늠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그 크기를 재고자 사용했던 도구가 때론 너를 다치게 했다. 나에 대한 마음의 깊이를 알고 싶어 추궁하듯 네 마음을 물었다. 잘 모르겠으니 네 마음을 직접 꺼내 보여달라며 떼쓰기도 했다. 때아닌 스무 살의 지나친 어깃장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뭉개졌다. 너는 연인끼리 흔히 하는 한 번만 더 기회 줄게 하는 의미 없는 카운트조차 세지 않았다. 웃어넘기며 심호흡을 하다가 그걸로 끝. 그리곤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게 네 뒷모습의 방식이었다.

  별로였다. 너는 끝도 시원찮은 놈이라며, 맘에 들지 않는 것들을 마음에 움켜두고 혼자만 꺼내보는 이상한 놈이라며 욕을 해줬다. 그런데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네가 가장 싫어하는 술을 진탕 먹은 뒤에 발음도 꼬고 몸도 꼬는 짓을 해봤다. 유치하게 너와 내가 겹치는 지인들과 만나 은근슬쩍 너에게 이런 내 모습을 알리기까지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상처에 딱지가 앉았어도 그 딱지를 보란 듯이 떼어버리고 싶은, 너에게 나는 딱 그 정도였을 뿐이다.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술집을 잠시 나섰을 때, 딱 이맘때쯤이었지 했다. 여름의 아래에서 담배 연기와 함께 네 고백도 같이 마신 그날 말이다. 취해서인지 모든 경계선이 풀린 나는 친구가 건넨 담배 한 개비를 받아 불을 켰다. 사실 내가 그 담배를 손에 들어 피고 싶다는 충동보다도 그냥 내게 말도 안 되는 벌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싫어하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애정을 가졌다는 모순적인 내 모습에 대한 비웃음도 함께였다.

  연기를 들이켠다. 나는 너를 돌이킨다. 네 손을 잡은 이후로 너는 내 앞에서 단 한 번도 담배 냄새를 풍긴 적이 없었다. 너는 담배 냄새를 풍기고 데이트에 나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향수를 뿌리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탕을 씹어 넘기며 애써 그 냄새를 없애려는 네 모습이 선명해졌다. 사실 담배의 잔향이 났지만, 모른 척 넘겨도 좋을 만큼 나는 너에게 무례했다. 손가락을 거는 약속은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지한 네 얼굴을 뒤로하고 새끼손가락을 스치듯 걸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거친 행동에 카운트조차 세지 않고 수많은 기대를 죽였던 네가 절대 가벼웠을 리가 없다. 담배가 맵다. 눈물이 나는 건 매워서, 자꾸만 기침이 나서 그런 걸 것이다. 너를 연상시키는 담배 냄새가 내 온몸에서 나니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너를 여전히 품고 있기라도 한 듯 말이다. 난 눈 시리게 매운 향연에 뒤를 돌아보았고, 그 자리엔 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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