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주 Sep 27. 2022

#4 물에 빠진 물고기

여름

  어린 내가 건조하고 지루한 시골집에 가는 유일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할머니 집 앞에 있는 작은 연못 때문이었다. 사실 연못이라고 불릴 수도 없이 아주 작고 볼품없었다. 여기부터 연못이라는 것을 나타내듯 무성한 돌들이 네모나게 연못 주변을 대충 감싸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나는 그 뻔한 연못 안에 있는 흔한 물고기들을 구경하길 바빴다. 그 당시 나에게는 가장 생기 있는 구경거리였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곳에 사는 이 물고기들이 자신들만의 세상이랍시고 열심히 버둥거리는 게 신기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그저 흔하고 뻔한 여름날이었다. 평소에는 자신의 등지느러미를 보이며 유유히 헤엄치던 이 물고기들이 어쩐지 미동도 없이 옆면으로 헤엄을 치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헤엄을 치는 것이 아니라 저 위에 맞닿은 햇빛과 마주한 것이었다. 평생 자신의 힘으로만 물에 떠오를 줄로만 알았겠지. 이젠 자연에 의해 떠올라 가엾은 모습이 되었다. 나는 뒷마당에 있는 뜰채를 가져다가 이 아이들을 건져냈다. 이곳에만 갇혀 있다가 쉽게 가버린 이 물고기들에게 먹먹한 연민 같은 것이 올라왔다.

  물고기는 아가미로 숨을 쉰다. 그런데 물속에 산소량이 적어지면 자연히 숨이 막혀 죽는다. 물이 마르기 시작하는 연못에서는 자주 이런 일이 일어난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이 연못에서 물의 양이 줄어들어 물고기들이 앞다투어 산소를 모두 마셔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이 물고기들은 물에 빠져 죽은 것이다. 물속에 사는 물고기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말에 어이없는 회의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책임을 묻고 싶은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동네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이 물고기들이 사는 작은 연못에 있는 이끼라도 건져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다못해 연못 주변에 있는 돌로 경계라도 잘 만들어줬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평생 먹고 살아온 생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물고기 이야기를 떠올린다. 분명 물관리를 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였겠다. 익숙한 자신의 아가미에 불현듯 물이 울컥 차오르는 그 순간만큼은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비단 사람들 간의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매년 그 사소한 것 때문에 스스로 숨통을 조이는 학생들이 넘쳐난다. 수조와 같이 작은 학교라는 공간을 돌이켜볼 때, 우리는 책상과 칠판, 친구들과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책상과 칠판의 온도, 그리고 함께 다니는 친구들의 촉감을 떠올린다. 차가웠던 그날의 기억들과 날카로운 시선들이 여전히 몸에 배어있을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네모난 세상 속 세모난 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천성이 산만하고 우악스러웠다. 가지고 태어난 것이 사람들에게 뭇매를 맞을 만한 성격이라는 것이 즐거울 리는 없었다. 관찰자로서만 본 그 친구의 주변은 늘 조용할 날이 없어 그 주변 공기가 고막을 푸르르 떨리게 했다. 그리고 원치 않게 날아 그 아이의 머리와 충돌한 죄 없이 구겨진 종이들이 즐비했다. 시끄러운 쉬는 시간에 내 평화를 위해 잠재우고 싶었던 그 아이들이 그 당시에는 왜 이렇게 커 보였는지 모른다. 지금 잘못된 그 행동을 당장 멈춰달라는 말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서는 수천 번을 곱씹고 그 아이들이 가진 권력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현실에 눈을 떴을 때는 내가 멈추어야만 했다. 교실 안의 생태에서 우리는 잠자코 숨죽여 그 끔찍한 환경을 직관하기만 했다.

  사실 나는 선생님께 몰래 가서 여러 번 고발했다. 내 작은 수첩 안에는 날짜부터 어떤 말들로 악질적인 행위를 했는지까지 그 아이들의 행태가 빽빽하게 차 있었다. 들키지 않으려고 교과서 밑에 수첩을 숨겨 열심히 적어 온 내 노력을 무마하듯 선생님은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전에 그 친구와도 한번 이야기를 나눠봤었지만 그렇게 심한 문제는 아니었다며. 그리고 당사자가 신경 쓰이면 그때 가서 학교에 이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는 그 후로도 여전히 시끄러운 계절을 맞이했다. 

  국어 숙제로 그 친구의 이름을 물었을 때, 이를 지 머금을 함, ‘지함’이라고 했다. 인내와 노력으로 꿈꾸는 세상을 이루어내라는 뜻으로 지어준 것이라며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 많은 인내가 고통을 일으킨 것일까? 마음속으로 ‘참을 인’ 자를 몇 번 반복했을지도 모를 그 아이는 그해 겨울 도망치듯 학교를 떠났다. 우리는 모두 조용해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 일이 불을 켜고 끄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던 것일까. 그 아이의 작은 불씨는 이 속에서 자꾸만 꺼져갔다.

  더러운 생태, 그 안을 열심히 헤엄쳐야 했을 아이들, 그리고 점점 오염의 방도가 커지는 모습. 나는 추운 날에도 여름의 그 물고기들을 생각한다. 작은 연못일지라도 그들에겐 세상 전부였다. 그냥 둬도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던 그 손이 물고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다시 물을 먹이고, 다시 올라오면 밀어 넣고…. 결국은 가장 익숙한 그 물에 빠져버린 것이다. 네모난 연못의 모서리는 날카로워 연못 안에 있는 물고기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그 오염된 연못 속 물고기들은 아주 서서히 오염된 물을 먹는다. 그리고 옆에 있는 물고기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도 그렇게 똑같이 네모난 모습이 된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펜을 드는가 보다. 끔찍한 옆면을 보이며 우리의 생태에 떠오르는 세모난 아이들을 세모난 펜촉으로나마 건져 그들 앞에 보여줄 수 있다면야, 기꺼이.

작가의 이전글 #3 그 여름의 매운 향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