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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 Sep 27. 2022

#5 연필을 쟁기 삼아

여름

  열무김치를 담글 때가 되었다. 그러니 소매를 걷어 올리는 거추장스러운 일이 없어도 된다. 이미 내 팔은 천도 걸치지 않은 민둥민둥한 상태이니. 가령 이 여름에 열무김치만 떠오른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김치말이 국수도 먹고 싶고, 여기에 좋아하지도 않는 오이도 썰어 넣겠다는 유난도 떨어본다. 이맘때쯤이면 이것을, 또 이럴 땐 이런 음식을 먹어야지 하는 것은 모두 그녀가 남긴 관례였다.

  농부의 손녀는 안다. 그들이 농사에 쏟는 짙음은 단순한 애정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삶이고 생계였기에 자연의 장난을 그저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만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 태풍이 쓸고 가면 남는 잔해들 언저리에 앉아서 꿈쩍 않고 하루를 보낼 때도 있다. 하지만 또 그렇게 뭉그적댈 여유도 없이 시키지도 않았지만, 그다음에 도전한다. 어쩌다 내가 놀린 밭에 그늘이 만들어질 정도의 나무 한 그루가 생기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매번 기대와 실망의 연속이다. 나는 농사가 인생과 딱히 다를 바 없다고 느꼈다.

  그렇게 매번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밭에 들어서는 그들의 삶에 어떤 쉼이 허락될까? 짙음은 지침으로, '오, 주님'은 주저앉음으로 바뀌는 순간마다 내 땀방울을 감히 욕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우리 집 그녀가 선택한 건 요리였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음식에 오는 계절에도 애정을 쏟았다. 밭은 가끔 배신하지만, 이미 완성되어 손에 쥔 재료는 그럴 일이 없다며. 특히 계절에 먹는 음식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가장 자신 있을 때 머리를 내민 것들이니 얼른 먹어주어야 서운해하지 않는단다. 그래서인지 나는 밭에서 날고 기는 온 계절을 먹고 자랐다.

  그뿐만 아니라 할머니는 뽐내는 재료들의 잘난 점을 알아봐 주었다. 배 아플 때 매실 진액을 듬뿍 한 숟갈 가져다줄 땐 아, 매실이 최고구나. 배앓이 이후에는 또 밤이 야무지구나. 병원에 안 가는 이유 중 시골 때문인 것이 열에 아홉은 된다. 그래도 그중 하나는 꼭 할머니 음식 덕분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나를 키운 건 음식에 깃든 소리였다. 한 입 베어 물면 귀에 들리는 다 괜찮다, 다 괜찮다… …. 그 소리를 들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해 뜰 때 보고, 달 뜰 때나 다시 볼 수 있는 엄마, 아빠의 모습도 잠시 잊혔다. 풍파를 맞아도 아픔을 잊고 그다음 시련에 도전하는 나무는 건강하다. 나는 건강하고, 또 건강했다.

  단상 밑에서 듣는 할머니의 요리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 여느 척척박사 못지않았다. 그러나 박사는 한 분야에 매몰되어 있다. 요리 박사 그녀는 글을 읽지 못했다. 종이고 간판이고 글이 안 쓰여 있는 곳이 없다. 그래서 학교 끝나자마자 매번 같이 가는 곳이 시장이었다. 나는 할머니가 떠듬떠듬 읽기도 전에 그녀의 검지가 가리키는 곳을 적당히 때려 맞춘 뒤, 말해주었다. "응, 오늘 고등어 없대.", "5,000원이래, 할머니." 할머니가 좋아하는 재료를 괜찮은 값에 사는 것에 성공한 날엔 시장에서 파는 시원한 음료까지 얻을 수 있었다.

  할머니가 글을 못 읽는다는 사실이 철없던 내게 좋은 일이기도 했다. 내 40점짜리 수학 시험지 아래에 쓰여 있는 문구는 꽤 골치 아픈 일이었기 때문이다. 시골 사람은 시골 일을 해야 한다지만, 너는 아니라며 늘 책상으로 등이 떠밀렸다. 작은 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작은 방, 그리고 그 안을 꽉 채우는 거대한 책상은 자꾸만 할머니의 잠자리를 좁게 했다. 그런데 가정 지도 필요라니. 책상이 온 집안을 짓누르고 있는데 가정 지도라니. 차라리 까막눈이라 그 뜻을 알지 못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야, 학교 끝나면 할머니 글 좀 가르쳐 줘."

  "농부가 무슨 글이야 할머니. 필요한 건 내가 읽어줄게. “     

  결국, 내 불순한 의도와 함께 할머니의 요구는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사실 나 아닌 누구라도 할머니에게 글을 가르쳐줄 수 있었다. 초등학생의 깊지 않은 교묘함을 누군가는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시골 글쓰기 교실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한데 모아놓고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날로 할머니는 아침엔 쟁기를, 저녁엔 연필을 쥐었다. 흥, 내가 너 아니면 배울 사람이 없냐. 투덜대는 할머니 뒤로 슬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글을 배우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내 성적 검열을 위함이 아니었다. 팔십 넘은 노인네가 기어이 그 큰 책상을 내버려 두고 바닥에서 꼼지락거린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쓴 모눈 연습장 위에 끄적이는 모습에 괜한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내 초라한 시험지 따위를 들키는 건 싫었으니까.

  언젠가 그 연습장을 펴 보았다. 거기엔 계절별, 상황별 요리해 먹어야 할 음식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내 40점짜리가 우스워지는 꼴이 됐다. 할머니가 쓴 요리들이 각자 자기가 잘났다고 으스대는 게 꼭 나를 한껏 비웃는 것 같았으니까. 그 안에는 한철밖에 먹지 못하는 음식들도 가지각색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계절은 돌고 도니 언젠가 자신이 제철일 날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듯이. 그것들이 기도 안 죽는 건 할머니가 힘을 실어 쓴 연필 자국 때문일까. 이러니 40은 팔십을 못 이긴다.

  그래서 나는 정말, 할머니가 누구든 이길 것만 같았는데 같은 팔자라는 이유로 홀랑 져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름만 들어본 내 삼촌이란 사람이 할머니의 밭을 팔아버렸다. 터전을 판 것이다, 터전을. 계절을 버린 것이다, 계절을.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밭에 남겨진 발자국만 세어 누구의 것인지는 손가락 하나로 짚을 수 있었다. 오간 발 도장 없이 이름 도장만 턱 하니 남겨 핏줄의 눈물 자국까지 가져가는 것이 가능한 세상이다. 나는 이 시점에서 작은방을 누르던 큰 책상이 생각났다. 크기만 한 몸짓에 아주 쓸모도 없는.

  밭일하다 보면 굽히고 또 굽히는 게 일상이었다. 내 밭에만 허릴 굽히는 건 아니다. 자기 새끼 좀 더 좋은 값에 팔아넘기겠다고 사람에게까지 허리를 굽힌다. 지금 할머니의 등은 내내 펴져 있다. 비싸서 싫다는 병원 침대 위에 한 달 내내 누워있으니 말이다. 그 순간에도 나는 할머니가 가꾸지 못하는 잘난 밭의 것들을 생각했다. 그렇게 시시하게 송두리째 뽑혔는데도 고개를 빳빳이 들까.

  결국, 그녀가 내게 남긴 건 평생 일군 밭도 아니고, 작은 연습장 하나였다. 얼마나 꾹꾹 눌러쓴 건지 한 페이지를 앞뒤로 만지면 음각인지 양각인지도 모를 정도였다. 평생 도구라곤 농기구밖에 모르던 양반이 연필을 쥔 모습이 떠오른다. 쟁기라도 잡은 듯이 종이는 잔뜩 파여 있었다. 여기선 그 고집스러운 성격까지 보였다.

  그 고집 좀 더 부리지. 미련하다, 미련하다. 그러다가 연습장에 적힌 틀린 글자에 피식 웃음이 난다. 글자 이거 아닌데. 알려줄걸. 마당에 머리를 빳빳이 내밀고 보란 듯이 기다리는 열무에 너의 계절임을 알린다. 참 뽑혀도 좋겠다, 했다. 제철이니까. 돌고 돌아 당신의 계절이 온 날엔 마음껏 축복해 주리. 난 할머니가 가꾼 그 계절을 절인다, 씹는다, 넘긴다. 미련하다, 미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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