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ISU Apr 04. 2020

이건 누가 봐도 연예인 빨

시간이 만들어 주는 디자인 아이덴티티

브랜드는 한번 만들어지면 짧게는 몇 십 년에서 길게는 몇 백 년까지,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에게로, 다시 나에게로 이어져 내려온다.

물론 짧게 사라지는 브랜드들도 있지만, 잘 만들어진 브랜드는 우리 곁에서 나보다 더 오래 살면서 이미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활 깊숙이 파고 들어와 있다.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꽤 많은 브랜드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들 저마다의 모습으로 함께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묵묵히 내 곁은 지키고 있는 것들이다.

브랜드는 살아있는 존재는 아니지만 맛이나 향이 좋아서 느낌이 좋았던 브랜드는 마치 친한 친구처럼 애착이 간다.

그래서 쓰던 제품이 다 떨어지면 수많은 종류의 제품들 중에서 내가 쓰던 제품을 다시 찾아서 사 오곤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리를 하면서, 빨래를 하면서 수십 번은 더 보고 또 본 제품인데도 막상 마트에 사러 가면 내가 쓰던 제품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무슨 색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진다.

브랜드명이라도 기억을 하고 있으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막상 마트 진열대에서 같은 종류의 제품들이 줄지어 진열되어 있으면 다 비슷비슷해 보여서 더 헷갈린다.     

잘 디자인된 패키지는 소비자의 기억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잘 생각해 봐. 난 노란색 패키지야, 제품명이 두껍고 검은색 손 글씨인 걸 잊지는 않았겠지?, 빨간색 원안에 흰색 글씨를 찾아"

이런 단서들을 따라 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제품을 제치고 숨어있는 월리를 찾듯이 내가 쓰던 브랜드 제품을 찾아내는 건 의외로 시간이 꽤 걸린다.

물론 몇 번 반복하다 보면 파란색 줄무늬 옷을 입고 있거나 노란색 모자를 쓴 월리쯤은 쉽게 가려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덕분에 쇼핑 시간도 짧아진다.

그렇게 적응이 되었을 즈음 매대 앞에서 또다시 멘붕이 찾아온다.

패키지 디자인이 리뉴얼되었단다.

'아~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소비자는 또 고민에 빠진다.     


요즘 제품 패키지에 연예인들의 사진이나 이미지를 활용해서 디자인을 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소위 연예인 빨로 매출을 좀 올려보겠다는 속셈이다.

하지만, 패키지 디자인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가장 접점에 있다.

패키지의 컬러로고 체나 로고를 둘러싼 프레임캐릭터나 도형레이아웃용기 형태 등을 통해 소비자들은 제품을 기억하고 이런 기억들이 모여 제품의 아이덴티티 요소가 된다.

하지만 패키지 디자인이 제품의 아이덴티티가 되어 소비자들에게 기억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 번 사용했던 제품을 다시 사는데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처럼 그 브랜드나 제품과 동일시되는 디자인 요소가 아이덴티티로 정착하기까지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좋은 디자인으로 오랜 시간 소비자 곁을 지키다 보면 반드시 그들의 기억 속에 패키지 디자인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는 날이 온다.

기억은 시간과 반복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예인 얼굴을 활용해서 패키지 디자인을 한 경우는 어떨까?

물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을 빼고는 단기 매출이나 이슈를 만들기에는 더없이 좋은 아이템이다.

문제는 영원하지 않다는 데 있다.

연예인의 인기는 영원하지 않고, 내 주머니 사정도 영원하지가 않다.

무엇보다 연예인과의 계약이 끝나고 나면 패키지 디자인에서 그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고, 연예인의 얼굴이 패키지 전면에 등장한 순간부터 소비자들의 눈은 브랜드가 아닌 연예인의 얼굴에 머물게 된다는 것도 단점이다.     

내가 브랜드마케팅팀에서 세탁세제 신제품을 개발했을 때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다.

유명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계약하고 나니 신제품 패키지에 모델의 얼굴을 넣으면 매출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유혹을 뿌리쳤다.

특히, 신제품의 경우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전혀 만들어져 있지 않은 상황이고, 소비자들에게 첫인상을 어떻게 심어줄 것인지가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패키지 디자인에서 단기적인 이슈를 만들기보다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잘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패키지 디자인에서 모델의 이미지를 활용하지 않고 별도의 POP 물을 만들어 모델의 이미지를 십분 활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미 아이덴티티가 잘 정립되어있는 브랜드의 경우라고 해도 리미티드 에디션 형태로 단기 이벤트로만 패키지 디자인에 연예인의 모습을 활용하기를 권하고 싶다.     

내가 그동안 보았던 국내외의 많은 브랜드들 중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잘 지키고 유지해나가는 브랜드는 많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브랜드가 미국에서 만난 ‘디즈니’였다. 

세계적인 브랜드라서 그렇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샌디에이고에 살면서 디즈니 크루즈를 일주일 정도 탄 적이 있었는데 난 그곳에서 그들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의 정수를 보았다.

저녁식사 후 나오는 아이스크림은 물론 아이스크림에 올라가는 토핑까지, 그리고 케첩도 디즈니의 대표 캐릭터인 미키마우스 모양으로 짜주는 것을 보면서 난 생각했다. ‘이들은 직원들의 뼈 속까지 디즈니의 정체성을 심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이전 05화 주방세제 한잔 하고, 클렌징 폼으로 이를 닦았다고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