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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Apr 06. 2020

그깟 '점' 하나로 디자이너는 좌절한다

매끄러운 족감, 상큼한 굴 향 바디워시

패키지디자인의 구성요소들 중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타이포그래피’라고 말하고 싶다. 타이포그래피는 패키지 디자인의 시작과 끝이다.

브랜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로고나 제품명에서부터 제품의 특장점을 알려주는 샐링포인트들, 그리고 제품관련 설명이 담긴 후면 문안들까지, 이미지가 없는 패키지는 있어도 글자가 없는 패키지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패키지디자이너들은 항상 타이포그래피와의 전쟁이다.

크게는 브랜드 로고에 브랜드의 정체성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제품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담을 수 있는 제품명 디자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에서부터 작게는 후면 문안의 서체와 크기, 행간을 얼마나 띄울 것인지, 어떤 배열을 해야 잘 읽히면서 많은 글자들을 넣을 수 있을지 까지, 모두가 고민스러운 문제들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디자이너를 힘들게 하는 문제는 따로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신입사원이 회사에 입사한 후 제대로 역할을 하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실무투입을 위해 2년 정도는 가르쳐야 한다는 것인데, 이 기간 동안은 오히려 회사가 돈을 받고 가르쳐야 할 만큼 신입사원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가 만만치가 않다.

아직 일을 시킬 수 있는 단계는 아니고, 월급은 줘야 하고, 교육시키느라 일을 해야 하는 선배들까지 동원되니 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양한 신입사원들의 교육비 중에서 디자이너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비가 하나 있다.

이 교육비를 받아보지 않은 디자이너는 없다.

내가 20년간 몸담았던 패키지 디자인 분야는 물론이고 편집디자인, 광고디자인, 그래픽 디자인 등... 전부 포함이다.

남, 녀의 구분도 없고, 실력의 고하를 막론한다.

어떤 디자이너든 입사 후 1~2년쯤 되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오탈자'가 바로 그것이다.

오탈자의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추가 비용이 바로 디자이너들의 가장 큰 교육비이며, 디자이너를 가장 힘들게 하는 문제이다.

입사 후 1~2년이 지나도 오탈자 교육비를 사용하지 않은 디자이너가 있다면 이건 더 큰 문제다.

3년 차 이상이 되면 아무래도 규모가 더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고, 그러면 '오탈자' 교육비는 교육비의 수준을 넘어 회사의 손익과 신뢰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해서 경위서는 물론, 스스로 사표를 쓰고 나가는 디자이너를 본 적도 있다.

‘그깟 오탈자가 뭐 그리 대수라고....’

이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없는 치명적인 오탈자가 있다.

오탈자는 1년이 364일인 달력을 만들기도 하고, 법적 표기사항이 틀려 법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며, 제품 패키지에 들어있는 회사 전화번호 오류로 소비자들이 클레임조차 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내가 신입사원 시절에는 다행히도 적은 비용으로 막을 수 있는 오탈자 실수를 했었다.

매장에 부착되는 포스터였는데 행사 날짜에 오탈자가 생겨 재 인쇄를 해야만 했었다.

다행이 인쇄부수가 많지 않아서 재인쇄를 하는데 비용이 크게 들지는 않았지만, 난 오탈자를 발견한 순간 얼어버렸고, 너무 놀라서 눈물도 나지 않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좌절감이 밀려왔고, 시간도 없어서 밤늦게까지 인쇄소에 혼자 남아 재인쇄를 해야만 했었다.     

디자이너 선배들은 이런 과정을 다 겪었기 때문에 신입 디자이너가 들어오면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특히 패키지디자인은 판매가 되는 제품이기 때문에 오탈자 발생이 상당히 치명적일 수가 있다.

최악의 경우, 전국으로 납품된 모든 제품들을 수거해야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오탈자가 안 보일 때가 있다.

아무리 눈을 씻고 두 번, 세 번 읽어봐도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던 오탈자가 무심코 내 자리를 지나가던 옆 부서 팀장님이 발견해주시기도 하고, 선배가 잠깐 왔다가 알려주기도 한다.

더 이상한 것은 오탈자가 자주 발생하는 시기도 있다는 거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시기에 디자인팀 전 직원에게 오탈자 검수를 시킨 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발견되지 않는 오탈자가 있었으니 참 살 떨리는 일이다.

패키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할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자동 오탈자 체크도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주의가 필요하다.

어느 날인가 바디케어 담당 디자이너가 디자인 시안을 보고하기 위해 나를 불렀다.

시안 보고를 받기 위해 회의실로 갔더니 그 패키지 디자인 시안에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매끄러운 족감상큼한 굴 향 바디워시     


헐~

오타 체크는 디자인의 마지막 단계인 원고 작업 때에 하는 게 아니다.

바로가장 처음 시작하는 디자인 1차 시안에서부터 해야 실수가 없다는 걸 반드시 명심하자.

그깟 '하나 때문에 좌절하는 디자이너가 없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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