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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Jul 07. 2020

유니크함이란 이런 것

행복을 나누는 디자인

코펜하겐에서 우리가 살았던 아파트에는 아시아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옆집에는 호주에서 온 젊은 피아니스트, 알렉스가 발레리나인 아름다운 덴마크 여자 친구와 함께 커다란 검은색 개를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그는 멀리서도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유난히 키가 큰 알렉스는 100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띄었는데, 집 앞 마트에서도 산책길에서도, 가끔은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나를 보면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면서 말을 걸어오곤 했다. 아랫집에는 프랑스에서 온 은퇴한 노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와 마주칠 때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친절하게 말해주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항상 우리 집에서는 층간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고 해주곤 했다. 그밖에도 딸과 같은 학교를 다녀 딸만 보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달려오는 귀여운 여자아이와 장난꾸러기 남동생을 함께 키우던, 거실에 놓여있는 주황색의 소파가 인상적이었던 덴마크 부부도 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나에게 늘 아파트 주변의 꿀팁들을 알려주었던 수염을 멋있게 기른 자상한 성격의 덴마크 남성도 살고 있었는데, 내가 두 손 가득 장을 봐서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하면 친절하게 오픈 버튼을 눌러주기도 하고, 지금 마트에서 어떤 제품을 세일하는지, 내일은 날씨가 어떤지도 알려주곤 했다. 한 번은 딸과 함께 아파트 현관에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20대로 보이는 덴마크 청년 2명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친한 친구도 한국사람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남편이 올 때까지 한참 동안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집 앞 버스정류장에 서있는데 버스가 정해진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았다.

도로 건너편에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한분이 지나가고 계셨고 그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무단횡단을 하며 나한테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나의 상황을 물어보시더니 나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데리고 가셨다. 난 딱히 바쁜 일도 없었고 그냥 다음 버스를 기다려도 별 문제가 없었지만, 그분의 친절 덕분에 빠르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런 덴마크 사람들의 친절은 운전을 하면서도 느낄 수 있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위해 차를 세워주면 그들은 항상 고맙다는 표시를 한다.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웃으면서 손을 들어주는데, 그런 친절이 좋아서 자주 배려를 하곤 했다.

덴마크 사람들은 왜 이렇게 친절한 것일까?

코펜하겐으로 이사 온 후 일 년 정도는 그들의 친절이 참 부담스럽기도 했다. 이웃 간에도 서로 잘 모르고, 별로 말도 하지 않고 지내는 서울 생활이 익숙해서 인지 그들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네 오면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는 빠르게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덴마크는 인구가 적다. 덴마크 전체로 봐도 55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거동이 불편해서 밖으로 잘 나오지 못하는 노인들, 사회생활이 힘든 장애인들, 그리고 부모의 도움 없이는 혼자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어린아이들까지 제외하고 나면, 집 밖에서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그 수가 정말 적다. 그리고 날씨의 문제도 있어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간도 짧다.

그들이 왜 그토록 사람들과의 만남을 그리워하고, 믿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 사회생활을 거의 하지 않는 노인들의 경우에는 더욱 사람들이 그리워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그토록 친절한 이유를 하나 더 꼽자면, 덴마크 사람들은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바로 '행복'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은 돈을 많이 벌거나 성공을 해서 누리는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 그들에게 행복은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행복이 아니라, 남들과 함께 누리는 행복이다.

남을 도와주거나 남들에게 자신의 것들을 나눠주면서 모두가 함께 느끼는 행복이 그들이 말하는 진정한 행복이다. 나도 행복해야 하지만 나의 이웃도, 나의 가족도, 그리고 나의 친구들도 행복해야 한다.

나의 이웃들은 나에게 끊임없이 "내가 어떤 것들을 너에게 나누어주면 네가 행복해질 수 있는 거니?"라고 묻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곳에 살면서 아무리 행복을 나누어 주려고 해도 상대방이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행복은 나눌 수 없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덴마크 사람들이 왜 그토록 행복지수가 높은 지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밝고 행복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다르게 자신의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힘듦이나 외로움을 타인들과 잘 공유하지 않는다. 힘들어하는 자신의 모습이 남들도 힘들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모두의 행복을 중요하게 여기는 덴마크 사람들의 모습은 디자인 속에도 잘 반영되어있다.

그들은 유니크하고 위트 있는 디자인으로 보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코펜하겐에 살면서 그들의 위트가 넘치는 디자인을 만날 때마다 소소하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디자인으로 사람들과 행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꽤나 흥분되는 경험이었고, 그들이 나누어주는 행복을 같이 즐기기 위해 난 자주 이 매장에 들리곤 했었다.

이곳은 초등학생이었던 딸이 일주일에 한 번씩 나에게 가고 싶다고 조르는 곳이기도 했다.

딸은 한국에서도 학교 앞 문방구만 가면 최소 한 시간 이상 문방구에서 파는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구경하곤 했었는데, 덴마크에서는 딱히 그럴만한 곳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덴마크 학교들은 대부분 수업시간에 필요한 필기도구와 노트 같은 문구류를 학교에서 지급하기 때문에 별도로 구입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덴마크 아이들이 집에서 하는 공부는 대부분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가능한 숙제들이기 때문에 집에서도 문구류가 필요하지 않다.

노트필기나 문제집 푸는 것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인 한국식 공부에 익숙한 딸에게는 문방구에 대한 갈증이 있었고, 덴마크에 온 지 한 달 만에 문방구를 대치할만한 좋은 곳을 발견했는데, 그곳이 바로 행복을 전하는 덴마크 사람들의 위트 있는 디자인을 만날 수 있는 'Flying Tiger'였다.

Flying Tiger는 처음엔 일본의 100엔 샵, 그리고 한국의 1,000원 샵과 비슷한 개념으로 생겨났다.

저렴한 가격으로 생활용품들과 학용품을 구입할 수 있는 10kr(Ten Kroner) 샵으로 시작되었는데 10kr의 덴마크어 발음은 Tee'-yuh(티유)라고 발음이 되며, 이는 덴마크어로 호랑이에 해당하는 Tiger의 발음과 비슷해서 Tiger가 되었다. 그 후 2016년에 Tiger앞에 Flying이 붙여져서 지금의 Flying Tiger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전 세계로 훨훨 날고 싶어 했던 그들의 희망을 담은 이름 때문이었는지 Flying Tiger는 전 세계에 많은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Flying Tiger Copenhagen 매장의 모습

자신들의 재능으로 많은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고 싶었던 Flying Tiger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문구류나 간식들을 비롯해서 어른들이 관심 있어하는 주방 소품과 리빙제품까지 다양한 제품들을 파는 잡화점 같은 개념의 샵이다.

물론 10kr의 제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딸은 Flying Tiger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제품의 종류가 다양해서 볼 것도 많지만, 디자인도 아이디어도 참 독특하고 재미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재미있어서 제품을 구입하기도 했고, 가끔 기분이 울적할 때도 웃음을 주는 디자인들이 많아서 새로운 디자인으로 바뀔 때가 되면 한 번씩 이 샵에 들리곤 했었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여름휴가처럼 매년 반복되는 주제들 이외에도 꽃이나 새, 벌레, 우주, 과일, 동물 등 그때그때 바뀌는 다양한 주제들에 어떤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담았는지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창의력 공부가 되기도 하고, 소소한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새로운 제품의 콘셉트를 알려주는 카탈로그 이미지

행복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덴마크 사람들은 잘 알고,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행복을 나눈다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남들에게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는지,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이야기하는 건 남들과 행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다른 사람의 행복한 감정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에게 마트의 세일 품목이나 내일의 날씨를 알려주던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이웃처럼 내가 알고 있는 소소한 지식을 함께 나누고, 층간소음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히 지내라고 말해준 아래층 할머니처럼 자신이 나누어 줄 수 있는 작은 행복의 말을 나누고, 타국에서도 외로워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자신의 한국 친구 이야기를 서슴없이 해준 그 청년은 나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자신의 반가운 마음을 나누어 주었다. 나에게 버스 타는 곳까지 데려다준 덴마크 할머니는 자신의 행복한 시간을 나에게 나누어 주었고, 횡단보도에서 엄지를 들어 고마움을 표시했던 행인은 그들의 행복한 마음을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Flying Tiger 역시 그들이 가진 재능인 기발한 아이디어와 디자인 역량을 통해 나와 딸에게 행복한 디자인을 나누어 준 고마운 샵으로 기억된다.

화장실 놀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





*이 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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