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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Jul 23. 2020

15만 원짜리 원숭이 인형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디자인

'Kop&Kande'

덴마크에서 주방용품과 인테리어 소품들을 파는 샵의 이름인데, 내가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들리던 곳이다.

휘게 문화가 잘 발달한 덴마크에 살다 보니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 날들이 점점 많아졌다.  

처음 몇 번은 외식도 하고 레스토랑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었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손님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 가장 큰 예우라고 생각하는 문화이기도 했고, 비싼 물가 때문에 외식비가 만만치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음식이 입에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집에서 자주 음식을 하게 되었고, 친한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하곤 했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주방용품들이 많이 필요해졌고, 필요한 주방용품들과 예쁜 그릇들을 구입하기도 하고, 새로 나온 제품들의 디자인도 볼 겸 자주 Kop&Kande에 들렀다.

휘게 문화 때문인지 덴마크는 주방용품들과 인테리어 소품들의 디자인이 잘 발달해 있었다.

어느 날인가 Kop&Kande에서 다양한 그릇들과 장식품들을 구경하다가 장식장 안에 들어있는 작은 목각인형들을 보게 되었다.

나무로 만든 평범한 원숭이 인형과 덴마크 병정, 얼룩말 그리고 몇 마리의 새가 장식장 안에 있었고, 신기하게도 장식장의 문은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난감이 목각인형이어서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가격을 보니 자물쇠로 문을 잠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목각인형들 중 크기별로 다양한 사이즈가 있는 세 마리 원숭이 인형이 귀여워서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가격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몇 번을 다시 봤지만 세 마리도 아닌 원숭이 인형 한 마리의 가격이 799kr, 우리나라 돈으로 약 15만 원 정도 되는 가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손바닥만 한, 별로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나무로 만든 원숭이 인형을 15만 원이나 주고 사기에는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다른 샵에서 그 원숭이 인형을 보았고 자주 보니 친근하기도 했고, 탐이 나긴 했다.

집에 어린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굳이 그 인형을 사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비싼 가격 때문인지 원숭이 인형이 좋아 보였다. 인건비가 비싼 북유럽이기 때문에 수공예품인 목각인형이 비싼 이유가 이해가 되긴 했지만, 내가 지불하기에는 여전히 비싼 금액이어서 구입이 망설여졌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난 후와 여름휴가시즌이 다가오면 세일을 시작한다. 적게는 15%에서 많게는 75%까지 세일을 하기 때문에 사고 싶은 제품이 있으면, 대부분 세일 기간을 기다렸다가 사곤 한다. 나도 그 원숭이 인형을 사기 위해 세일 기간을 기다렸지만, 유독 그 원숭이 인형은 세일 품목에 없었고, 일 년 내내 같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그 비싼 인형을 사기는 하나 싶었는데, 방문하는 덴마크 집들마다 참 신기하게도 그 원숭이 인형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그 나무 원숭이 인형이 덴마크의 전설적인 장난감 디자이너 '카이 보예센(Kay Bojesen)'이 디자인한  인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덴마크 디자인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였다.

덴마크 디자인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첫날, 서점에서 발견한 디자인 책 첫 장에 그 원숭이 인형의 사진이 있었고, 난 너무 놀라서 그 사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2가지의 서로 다른 컬러의 나무인 티그(Teak)와 림바(Limba) 나무로 만들어지는 원숭이 인형은 32개의 파트로 구성되어있어 마치 관절 인형처럼 마디마다 움직일 수 있는 인형으로 다른 어떤 목각인형들보다 많은 자세를 취할 수 있다고 한다.

원숭이처럼 고리나 줄에 매달리기도 하고, 앉아있거나 서있기 등 다양한 자세로 장식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원래 이 인형은 아이들 방에서 옷이나 모자를 걸기 위한 벽걸이용 제품으로 개발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벽걸이용보다 아이들의 장난감으로 더 많이 사랑을 받았고,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카이 보예센'이 어린 아들을 위해 만든 원숭이 인형으로 알려지면서 지금까지도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좋은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형이 견고하기도 하고 고장 날 염려가 없는 목각인형이라서 아이들이 크면 또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굳이 아이들이 없어도 많은 덴마크 사람들이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기 위해 카이 보예센의 원숭이 인형을 산다.

그리고 나도 결국 799kr를 지불하고 원숭이 인형을 사고 말았다.

아이들이 원숭이 인형을 보며 호기심을 키우고 행복하기를 바랐던 카이 보예센의 상상력을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덴마크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원숭이 인형에게 나무로 만든 예쁜 산타클로스의 빨간 모자를 사서 씌워주기도 하고, 아이들 졸업시즌에 맞춰 흰색의 덴마크 졸업모자를 사서 씌워주기도 하면서 즐거워한다.

아이들의 장난감에서 다시 어른들의 장난감이 되기도 하는 이 원숭이 인형을 덴마크 사람들은 참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물론 원숭이 인형 말고도 카이 보예센이 디자인한 다양한 종류의 목각 인형들도 많이 있다.  

왕실 근위병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장난감 병정도 있고, 화려한 색상의 새를 비롯한 다양한 동물 인형들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기에는 멋스럽고 예쁘다.

다양한 크기와 컬러의 'Kay Bojesen'의 원숭이 목각인형
다양한 자세가 가능한 원숭이 목각인형의 모습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에는 주방용품이나 인테리어 소품 이외에도 가구디자인도 잘 발달해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Hay, Bo Concept, Ikea처럼 북유럽을 대표하는 유명한 가구 브랜드들도 많이 있지만, 시스템 가구의 정수를 보여주는,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킨 독특한 가구 브랜드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 디자인에 대한 감동이 생생하다.

가구회사가 만들어준 공간이 아니라 내가 직접 가족들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꾸밀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모듈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게 해주는 브랜드였다. 3일간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디자인 전시회에서 처음 만난 브랜드였는데 예쁜 컬러와 군더더기 없는 심플한 외관, 그리고 어떤 공간에서도 활용도가 뛰어난 슬림하면서도 유연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Montana'라는 이름의 이 브랜드는 'Explore the endless possibilities. 36 modules, 4 depths and 42 colours.'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었는데,  슬로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양한 모듈을 끝없이 변형하고 재배치하면서 여러 가지 색상들과 믹스 매치하기도 하고, 공간이 넓어지면 다른 모듈을 추가하기도 하면서 평생을 함께하도록 설계된 가구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가구회사에서 제공하는 건 다양한 모듈뿐이고 공간을 디자인하고 공간에 나만의 이야기를 담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인 것이다. 가구회사가 디자인해 놓은 가구를 그냥 그들의 생각대로 사용하도록 강요받는 일반 가구와는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같은 제품을 사더라도 사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재창조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더해지면서 점점 더 공간의 완성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사를 해서 집의 구조가 바뀌거나 아이들이 자라도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디자인 시스템의 유연성은 마치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레고 블록처럼 나의 창의력을 극대화시켜주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Montana'의 다양한 모듈 시스템을 한꺼번에 보여주기 위해 좁은 공간에 모듈을 모아 전시하고 있는 모습 (42컬러인데 49컬러로 표시한 건 오타인듯^^;)
바닥에 세워놓기도 하고 벽에 붙이기도 하는 가구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전시장의 모습

덴마크 사람들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을 즐기는 그들의 문화 때문에 집을 가꾸고 꾸미는 것을 즐긴다. 물론 비싼 인건비 때문에 직접 집을 수리하고 가꿔야 해서, 낡고 오래된 집을 꾸며주는 가구와 소품들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들은 즐거움을 집 밖이 아니라 집 안에서 찾는다는 것이 집을 꾸미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집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추억의 소중함을, 그리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집의 소중함을 잘 알고 다. 비싸고 좋은 집이 아니라 오래되고 전통이 느껴지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나씩 고쳐가면서 추억을 쌓기도 하고, 매년 예쁜 디자인의 소품들을 사거나 작은 가구나 의자를 하나씩 사서 모으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여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공간을 만들어 나간다.

그들의 집에 가보면 작은 소품 하나, 의자 하나에도 그들만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즐거웠던 추억이 함께 살아있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부분적으로 한 가지씩 사서 모아도 나중에 같이 모여있을 때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들도 많고, 제품의 디자인 수명이 길어서 부부가 의자 2개를 구입해서 쓰다가 십 년 후 아이들이 크면 같은 의자를 더 구입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참 부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당장 필요도 없는 의자를 미리 구입해놓지 않아도 되니 공간 활용면에서나 비용적인 면에서도 효율성을 추구하는 그들의 성향과도 잘 맞는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멋진 공간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조금씩 완성해가는 자신만의 색과 이야기가 담긴 공간은 훨씬 오랫동안 의미 있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을 잘 아는 그들이다.


언택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많이 바뀐 것이 있다면 집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인터넷을 활용해서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지고, 재택근무도 급속도로 활성화되고, 배달문화도 잘 정착되어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많은 것들을 집안에서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집의 역할도 재조명되었고, 집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바뀌었다. 집은 휴식을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일과 운동, 그리고 학습과 놀이를 함께하는 공간이 되었으며, 덴마크의 집들처럼 가족들과 오랜 시간 함께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덴마크 사람들처럼 집이 행복한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집안 구석구석 나와 가족들의 즐거운 추억과 이야기가 쌓여야 한다. 내가 처음 원숭이 인형을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과 그 제품을 사기 위해 했던 노력들, 드디어 내 손에 원하던 제품을 갖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그 제품과 함께 만들어가는 추억들이 모두 내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그 제품을 통해서 나의 모습과 우리 가족의 모습이 추억으로 남는다.

그렇게 나와 만난 디자인들은 오랜 기간 함께하는 가족이 되기도 하고, 추억이라는 생명력을 갖기도 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가족들공간에 오랫동안 기억될 좋은 추억들을 한 땀 한 땀 쌓아가며 모두가 함께하고 싶어 하는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이 곳에 실린 모든 사진들은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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