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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ISU Apr 02. 2020

좋은 디자인, 좋아 보이는 디자인

자신감 넘치는 디자인의 비밀

'이건 정말 좋은 디자인이야'

난 미국 샌디에이고에 살 때 'VONS'라는 슈퍼마켓에서 이 제품을 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생과일주스였는데패키지 디자인이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았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과일주스의 디자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싱싱한 과일의 이미지가 그려진 흔한 패트병에 담긴 주스의 디자인이었다.

그런데 그 과일주스의 패키지디자인에는 다른 주스에는 없는 내용이 하나 더 있었다.

망고 1+3/4바나나 1/2오렌지 1+3/4사과 3개를 갈아서 만든 주스라는 내용이었고잘 보이는 곳에 ‘About what’s in this bottle’ 이라는 문구와 함께 4가지 과일의 이미지와 함께 주스에 들어있는 과일의 숫자가 적혀있었다.

난 주스에 들어있는 과일의 양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그 자신감 넘치는 제품에 매료되어 자주 이 제품을 구입했고딸에게도 과일을 사서 갈아주지 않고 이 주스를 사주었다.     

좋은 디자인은 어떤 디자인일까?

흔히 좋은 패키지 디자인은 제품을 더 멋져 보이게 하고 더 좋아 보이게 만드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가까운 마트에만 가 봐도 과일즙이 한 방울도 들어있지 않은 젤리가 마치 과일을 통째로 갈아서 만든 것처럼 포장지가 온통 과일 이미지로 뒤덮여 있는가 하면프랑스와는 전혀 관계없는 화장품이 전통 있는 프랑스 화장품인 것처럼 떡하니 프랑스 국기까지 달고 있기도 하다.

물론 내세울 것이 없는 제품이라고 디자인도 그저 그렇게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이 제품의 강점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고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은 필요하다.

과일즙이 한 방울도 들어있지는 않지만프랑스에서 오지는 않았지만담당 마케터나 연구원과 이 젤리에 다른 차별 점을 줄 수는 없는지그리고 어떤 성분 때문에 프랑스 화장품 같다고 말하는 건지 디테일하게 의견을 나누다 보면 이 제품만의 강점을 찾을 수 있거나또는 만들 수 있다.

만약 답을 찾지 못했다면 론칭 일정을 미뤄서라도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한다.     

난 20년 동안 좋아 보이는 그럴듯한 디자인으로 마켓에서 성공한 브랜드를 본 적이 없다.

시장을 주도하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디자인은 언제나 좋은 디자인과 함께 품질도 좋은 제품이었다.

마케팅 용어 중에는 FMOT와 같이 많이 쓰이는 SMOT라는 용어가 있다.

여기서 S는 Second이다.

'소비자와 만나는 피할 수 없는 두 번째 진실의 순간'을 말하며이것은 곧 제품의 품질과 관련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그럴듯한 포장지에 반해 덜컥 제품을 샀다가 집에서 풀어보고는 허접한 품질에 아차싶은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소비자는 바로 실제 제품의 품질과 만나는 두 번째 진실의 순간에 이렇게 다짐한다.

다음번엔 절대로 이 제품을 사지 않겠노라고 말이다.     

패키지 디자이너는 제품에 대해 과장을 해서라도 실제보다 더 좋아 보이도록 디자인하는 사람이 아니다.

제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소비자가 알기 쉽게 잘 전달해주고대신 제품의 강점은 빠르게 인지하도록 디자인을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이다.     

제품의 품질은 디자인 퀄리티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잘 팔리는 제품은 제품의 퀄리티가 좋아 디자인은 그냥 묻어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대부분은 그렇지가 않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은 디자이너에게도 디자인에 대한 자신감으로 이어져 좋은 디자인 결과물을 만든다.

내가 디자인할 주스 제품에 들어있는 생과일이 유기농이든함량이 많든타사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보자.

디자이너는 다른 제품들보다 어떻게 생과일 성분을 더 돋보이게 디자인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것이다.

과일 성분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생과일을 표현하는 방법에 집중할 것이다.

내가 샌디에이고에서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했던 주스의 디자이너가 생과일의 함량을 제품 후면에 커다랗게 표시해서 직접 눈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어떨까?

과일의 이미지를 메인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남들보다 과일의 품질도함량도맛도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다고 한다면?

적당한 과일의 이미지는 넣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신감이 없으니 이것저것 다른 요소들이 오게 마련이고요소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디자인은 약해지고 평범해진다.

과일 성분을 강점으로 활용할 수도 없고 넣지 않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에서 디자이너의 상상력은 절대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한다.     

좋아 보이는 디자인이 아니라좋은 디자인을 하고 싶다면 반드시 자신감 있는 제품으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자신감을 주는 요소는 원료일 수도맛일 수도심지어 컬러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제품개발자들에게 당당하게 질문을 던지자.

이 제품에서 가장 자신 있는 품질은 뭔가요?

난 수도 없이 디자인 시작 전에 이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듣는 순간 나의 상상력은 풀가동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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