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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전 Nov 17. 2023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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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 역사를 오르내릴 때면 보통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을 이용하지만 가끔 엘리베이터를 쓸 때가 있습니다. 특히 긴 하루 끝에 피로가 잔뜩 쌓여 걸을 힘도 없을 때, 엘리베이터는 조그마한 낙원처럼 보입니다. 그럼 잽싸게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줄에 몸을 밀어 넣습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사람들은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젊고 건강한 주제에 무슨 엘리베이터냐 하는 자격지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계단을 올라갈 엄두가 나지 않는 날도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새부턴가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 문 때문에요. 그 문은 닫힘 버튼을 눌러도 닫히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오래 문이 열려 있다가 천천히 닫히는데, 그게 뭔가, 별 것 아니지만, 맥 빠지고 안쓰럽게 느껴집니다. 아주 느리게 닫히는 문은 엘리베이터 안에 유약하고, 생기 없는, 죽음의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힘없이 닫히는 문에서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왠지 너무 쇠약해 곧 멈춰버릴 것 같아서. 노쇠한 문이 힘겹게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 같은 걸 상상한 뒤로 엘리베이터를 잘 타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문에는 영혼도 목숨도 없죠... 단지 약간의 쓸쓸함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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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를 결정하는 타이밍은 빨래 바구니에 옷을 더 이상 담을 수 없을 때라고, 누가 그러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 말에 반대합니다. 테트리스를 쌓듯 잘 쌓으면 빨래 바구니 위로 무한히 빨랫감을 쌓을 수 있거든요. 빨랫감을 무한히 쌓을 수 있다면 언제 빨래를 해야 하는가? 이것이 수학자 알베르트 챈들러가 고안한 '무한 빨래의 역설'입니다. 


 저번에 길을 걷는데 옆에서 어떤 외국인이 놀라 소리치더군요. "What the hell! It's so big!" 그가 뭘 봤나 했더니, 바닥에 있는 커다란 나뭇잎을 본 것이었습니다. 놀랄 만했던 게 어른 머리보다 큰 나뭇잎이 있더군요. 그 나뭇잎, 길을 걸으며 밟기도 하고 보기는 많이 봤었는데, 정작 무엇인지 궁금해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 나뭇잎이 왜 이렇게 큰가, 제가 그것을 흥미로워하거나 궁금해한 적이 없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진짜 대박 컸거든요. 바쁜 일상을 살아가며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던 걸까요? 그 나뭇잎이 가치 있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바라보니, 진짜 엄청 크고 멋진 나뭇잎이었습니다. 그렇게 멋진 나뭇잎을 아무렇지도 않게 수천 차례 지나가며 밟았겠죠. 걸리적거리는 낙엽이라 생각하며 밀어냈을 겁니다. 잎의 웅장한 크기, 대칭적인 형태, 커다란 잎을 거뜬히 지탱하는 가느다란 섬유질의 안정적인 프랙탈 구조... 그냥 평범한 나뭇잎이 아니었습니다. 그 외국인에게서 새로운 시선으로 사물을 보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알아보니 그 나무의 이름은 '플라타너스'였습니다. 플라타너스는 흔해 빠진 가로수이지만, 특별한 나무이기도 합니다. 특별하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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