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쏘잼 Mar 23. 2021

혹시 저희 집 애완 곰이 이 곳에 있을까요?

25살 남편은 적지 않은 횟수로 5살이 된다

"여보야, 언제 한 번 부대 올래? 카운슬러가 여보도 같이 오면 좋겠다던데!"

도란도란 저녁 식사를 하던 도중 불쑥 남편이 물었다.

남편의 질문은 지나가도 좋은 듯 툭 던져진 것 같지만, 마음속 깊은 곳엔 내가 기꺼이 부대로 와주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평소엔 한 없이 크기만 해 보였던 남편에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디서 키 작고 귀여운 흑곰 하나가 내 앞에서 짧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남편은 지금 끊임없이 눈으로 말하고 있다. '빨리 온다고 대답해줘. 나 여보랑 부대에서 있고 싶어!'라고.



육아도 하지 않는 젊은 전업 주부가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부대에 가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울까.

다만 매번 속도 없이 "그래!"를 외치면 어느 순간부턴 남편이 나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것 같아 한 번 튕겨준다. 연애 때나 써먹던 못된 심보다.

"카운슬링은 여보 혼자 받아도 되는 거잖아~ 난 집에 있을게."

대답을 들은 남편은 우선 괜찮은 듯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다가 또 눈을 반짝거리며 며칠 뒤 다시 묻는다.

"여보 다음 주에 부대 올래?"

아무리 곰 같은 남편이라도 두 번의 거절은 속상할 수 있을 걸 알기에 그쯤이면 원하는 대답을 내어 줘야 한다.

"알겠어. 몇 시에 가면 될까?"

대답을 들은 후 그제야 씰룩씰룩 가벼운 뒷모습을 보이는 남편을 보면 웃음이 난다.

그럴 때면 나의 포지션이 아내가 아니라 '흑곰 조련사'와 '엄마' 그 사이의 어딘가에 놓여있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모든 와이프가 겪어나가야 하는 숙명 같은 부분이려나.


누구에게나 카운슬러는 필요한 법이므로,



신기하게도 미군의 경우 다양한 분야의 카운슬링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Nutrition, Medical, Marriage, Financial 등 정말 그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이 혜택은 미군의 배우자에게도 동등하게 돌아간다. 결혼 전에 나와 남편은 부대에서 Marriage Counseling을 받았고, 예상외로 불편한 자리도 아니었으며 덩달아 마음도 가벼워졌다. 최근 남편이 받은 카운슬링은 심리 상담 관련인데, 남편은 내 이야기를 하다 본인도 모르게 그만 울컥한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일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내 성향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이끌려 집에서 하루 종일 외롭게 남편만 기다리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졌다고 카운슬러에게 털어놨더랬다.

"그런 이야기 왜 나한테는 안 해~?"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부부는 평소 대화가 끊이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런 이야기들은 나에게 털어놨을 법도 하기에.

남편은 눈동자를 바닥으로 떨구며 작은 소리로 기어가듯 대답했다.

"부끄럽잖아.."


남편의 모든 속내를 낱낱이 알고 싶은 마음, 또 내가 캐묻지 않아도 모든 것을 말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실 나만의 욕심일 수 있다.

남편의 동료들 중엔 부대 곳곳에 상주하고 있는 '카운슬러'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아 오히려 남편이 기특하다고 느껴졌다. 늘 남편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고자 하지만 나의 역량이라는 것이 항상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니, 그 빈틈을 전문성 갖춘 다른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다면 그건 아주 감사한 일이다.



나도 학부시절 카운슬링의 도움을 종종 받아서인지 카운슬링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모두 진심으로 존중한다. 특히 우글우글한 '영어 네이티브'들 사이에서 회계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리고 Big 4 회계 법인 중 하나인 딜로이트 출신 교수님 밑에서 "너는 아직 수업 준비가 안 됐다."는 뼈가 시리도록 명확한 지적을 들으면서는 더더욱. 그때마다 죽상으로 찾아간 카운슬러의 오피스에서 몇 십분 동안 고뇌를 풀어놓고 나면 집에 가는 길은 늘 한결 가벼웠다. 물론 카운슬러의 입장은 또 들어봐야 알 테지.



직종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조언자는 항상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상황   조언자가  전문 카운슬러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고로 '오롯이 홀로서기'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함이 분명한 세상을 우리는 살아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카운슬링' 받고  그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며 인정하는 남편의 태도를 높이 산다.  과정  남편이 나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그곳에 있을 거다. 다음 주에 잡힌 카운슬러 오피스 방문에서도 똑똑 노크를 하곤 묻겠지.


"혹시 저희 집 애완 곰이 이 곳에 있을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