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이상하다.
남들의 시야는 그래도 본인을 기준으로 좌우 반경 정도는 꽤 넓게 보이는 것 같은데
내 시야는 정확히 일직선인지라 바로 옆에 친구들이 지나가도 못 알아보는 경우가 대다수다.
하와이 살면서 시야를 좁게 가지고 산다는 것은 퍽 억울한 일이기도 했다.
주변에 더 많이 볼 수 있는 예쁜 것, 좋은 것 그리고 초록초록 싱그러운 장면들을 습관처럼 놓치기가 일쑤다.
남편은 나와 같이 외출하면 항상 나의 신체부위 하나쯤은 잡고 있다. 그것이 팔이 됐던, 손이 됐던, 혹은 신체부위의 연장선쯤인 후드티의 모자가 됐던지 간에.
애정의 스킨십이기도 하겠거니와 그건 마치 강아지의 목줄을 대신하는 거나 다름없기도 하다.
남편은 그러니까, 나를 스쳐가는 많은 행인들에게 소리 없는 미안함을 전하기 위해 나랑 찰싹 붙어있다고 해도 무관한 것이다. 더불어 남편은 속으로 말한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얘가 시야 범위가 정말 딱 직선 정도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여러분에게 해를 끼치기 전에 제가 미리 목줄로 단속하겠습니다. 허허허' 라고. 덕분에 좁은 시야로도 아직까지 다른 분들께 피해를 끼치지 않고 잘 외출하고 있다. 고마워해야 하는 거겠지?
최근에 남편은 나에게 가지고 싶은 차가 있느냐며 물어왔다. 나는 호기롭게 테슬라를 외쳤지만 남편은 딱 잘라 거절했다. 사실 나도 뻔히 거절당할 것을 예상했으나 그냥 한 번 외쳐본 것이었다.
인생 뭐 별거 있나? 일단 최고치를 불러보고 기각당하면 그때 상심해도 늦지 않았다.
남편과 친구들은 내게 입을 모아 말했다.
"제이미야, 너는 좋~은 차를 살 필요가 없어. 왠지 알아?
너 SUV 사잖아? 그럼 그 차는 몇 달 안돼서 여기저기 부딪히고 치이고 깎이고 깎여서 콤팩트가 되어있을 거거든."
부정할 수 없었다. 내 현재 신분으로는 역시 그냥 전동 스쿠터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자연스레 겸허함을 되찾았다.
친정엄마가 막 장롱면허를 꺼내 들고 운전을 시작했을 때였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온 가족이 파주 근방으로 드라이브를 간다고 나섰는데, 엄마가 운전대를 잡았다.
ENFP 성격 유형에 혈액형 O형은 엄마 앞이라고 돌려 말하고 그런 것이라곤 할 줄을 모른다. 나는 아주 솔직히 말했다. 타기 싫다고. 살려달라고.
이 피크닉의 의미에 대해서도 물었다. 나의 생명을 담보로 할 정도로 그렇게 소중한 피크닉이더냐고.
욕심은 현실로 이어질 일이 좀처럼 없다고 언급한 바 있으나,
불안한 상상은 늘 거짓말처럼 현실이 된다.
엄마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목적지 즈음에 도착해서 가만히 있는 어떠한 물체를 들이받았다.
도로 한복판에 위치한, 도대체 횡단보도도 없었는데 왜 거기 있었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안전바였다.
의아했다. '의도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가만히 서 있는 물체에 돌진하실 수 있죠?' 하는 찰나의 의문점과 더불어 차에서 어딘지 모르게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얕은 연기를 보고 동생에게 서둘러 일단 차에서 내리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그렇게 큰 사고도, 문제도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 그 이후 나는 우리나라의 체계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을 마음껏 누리고 살았다. 그때만큼 한국에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나의 날 선 디스들을 들을 때마다 친정 엄마는 말했다.
"너도 내 나이 돼봐라. 너라고 다를 것 같니?!"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오히려 나는 더 심했으면 심했지 친정 엄마보다 덜 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엄마 옆에서 쏟아내곤 하던 온갖 디스를 이젠 남편이 내 옆에서 폭포처럼 쏴아아 하며 쉬지 않고 뱉어내고 있다. 생각만으로도 벌써 머리가 아파온다.
옆에서 천방지축인 나를 보며 시종일관 잔소리를 해야 하는 남편은 더 극심한 두통을 느끼고 있을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야의 범위도 유전이 맞는 것 같다. 혹 누군가 엄마가 원망스럽냐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
유전은 인생의 카르마를 온몸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설계된 구조적 제도라고 그렇게 느끼고 살아야겠다.
한 때 멋모르고 가족이나 타인을 향해 마구 뱉었던 말들이 언젠가 결국은 다시 나를 향해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임을 명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