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과 프로덕트 디자이너에 대한 생각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한 지 햇수로 3년이 되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처음 일할 당시만 해도 UI 디자이너에서 이름만 바뀐 게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회사마다 역할을 부르는 이름은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최근의 이직으로 서로 다른 회사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경험하면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맡은 일을 잘 해내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나서 잘 하든 못하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원래는 2월에 퇴사를 하면서 그간 배운 점을 기록하려 했던 회고 글인데 마음의 숙제로 쌓아두다 최근의 이러한 고민들을 더해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프로덕트가 존재한다. 지구 반대편의 토크쇼 영상을 침대에 누워 볼 수 있게 해준 유튜브, 친한 이들과 이모티콘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게 해준 카카오톡, 여러 사람의 사진과 동영상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검색 엔진의 자리까지 넘보는 인스타그램, 송금이 필요할 때 공인인증서를 사용할 필요 없이 순식간에 돈을 보내주는 토스, 원하는 상품을 자정까지 주문하면 새벽에 문 앞에서 받아볼 수 있게 해주는 쿠팡까지.
- 김성한, <프로덕트 오너>
오늘날의 제품은 사람들이 생활하면서 사용하는 유, 무형의 모든 것을 총칭한다. 손에 잡히는 물건이 될 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 최근 몇 년간 '프로덕트'는 IT/스타트업 업계의 핫 키워드였다. 내가 학부생이던 시절 UX/UI가 그랬다. 웹 디자이너가 UX/UI 디자이너로 불리고 이제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변화하고 있다. 새것도 쓰다 보면 권태로워지기 마련이라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싶어지는 걸까. 그보다는 시대가 바뀌는 자연스러운 변화라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술이 발전하고 트렌드가 바뀐다. 사람들의 일상도 당연히 영향을 받는다. 사용자가 변하니 제품도 변해야 한다. 제품을 만드는 방식과 조직이 변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인 것이다. 제품이라는 키워드가 중심으로 떠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회사는 사람들로부터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고, 이윤을 만드는 매개체는 제품이다. 즉, 제품이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사랑받아야 회사도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제품 주도 성장 Product-led Growth은 제품이 사업의 성장을 주도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무료 혹은 ARPU(Average Revenue Per User)가 낮은 서비스는 외부 채널을 이용한 사용자 획득보다 제품 자체가 사용자를 끌어들이고 Growth loop를 끊임없이 돌릴 수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이상적인 그림은 제품이 성장함과 함께 새로운 사용자가 참여하고 이렇게 획득한 사용자가 계속해서 제품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말로 retention이라고도 한다.
이 프레임워크의 근본적인 믿음은 사용자가 제품에서 가치를 발견하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품의 가장 큰 성장 지렛대는 사용자가 제품의 가치를 인지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을 Magic moment 혹은 Aha Moment라고들 부른다. 이러한 순간이 없으면 사용자를 유지하기가 어렵고, 성장을 지속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처음 제품을 사용하면서 가치를 확실하게 느낀 사용자는 그 순간을 기대하면서 제품을 다시 찾는다. 그 유익함을 통해 제품과 사용자 사이에는 관계가 형성되고, 그 관계의 고착도 stickiness에 따라 계속해서 제품을 찾는 사용자의 비율, retention이 달라진다. 즉, Engagement가 retention을 만들어 내고, retention은 곧 제품의 성장을 이끈다.
이전에는 주로 UI 디자이너로 일하셨는데 UI 디자이너와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처음 면접을 보러 다닐 때 위와 같은 질문을 정말 자주(x100) 들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에 대한 생각을 말하기 앞서 제품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았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라고 불리기 이전에는 제품에 대한 요구 사항과 명세서를 받아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요즘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은 제품 발견부터 제품 실행까지의 전 과정에서 제품 관리자(Product Owner 혹은 Product Manager) 및 엔지니어와 계속 협업을 해나간다. 또한,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제품 관리자와 솔루션 도출의 가장 첫 단계부터 파트너로서 업무를 함께한다. 사업의 성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닌 '제품'이므로 제품을 만드는 전반의 과정에 참여하여 제품과 그 제품을 실제로 쓰게 될 사용자와의 상호작용, 즉 총체적인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따라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디자인 작업의 산출물을 가지고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성공 여부로 능력을 인정받는다.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만들기 위해 제품의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는 일을 합니다.
스스로를 프로덕트 디자이너라 소개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짧고 간결한 소개를 위해 축약한 것인데 이 문장을 들여다보면 사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축약되어 있다.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만들기 위해
제품의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하는 일 =
1. 사용자가 가진 문제를 발견
2.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을 찾고 가설 수립
3. 실험을 통해 가설을 증명해서 솔루션을 찾아나가는 일
을 합니다.
즉, 프로덕트 디자이너의 역할은 한 마디로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잘 해결할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인스파이어드라는 책에서 저자인 마티 케이건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의 핵심 업무가 발견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용자를 위한 솔루션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발견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발견은
이 솔루션을 원하는 충분한 사용자(수요)가 있다고 확신하는 것
사용자 및 비즈니스에 실제로 유효한 솔루션을 찾아내는 것
을 포함한다.
제품을 만드는 것은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일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리소스가 들어가는 일이다. 따라서 이러한 노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제품이라는 솔루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능한 한 자주, 그리고 많이 정말로 이것이 사용자가 원하는 솔루션이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제품 발견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사용자의 피드백이다.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통한 작고 빠른 실험은 사용자의 피드백을 받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다. 팀 내에서 의견이 갈릴 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주기도 한다. 설령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하더라도 작은 실험은 적은 비용으로 팀이 함께 학습하는 경험을 만들어 준다.
2편에서 계속.
참고:
책 <인스파이어드>
Get Out of the ARPU-CAC Danger Zone with Channel Model Fit
The One Growth Metric that Moves Acquisition, Monetization, and Vir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