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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복숭이 Oct 27. 2022

깡통전세, 남일이 아니다

전세사기의 민낯

나는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법에 무지한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법률상담, 소송대리 등 법률사무를 서비스하는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변호사이다.


요즘 많이 들어오는 사건들이 있는데, 바로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 건들이다.

기사에서도 많이 보이는 바로 그 ‘깡통전세’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인천인데, 특히 미추홀구를 중심으로 관련 사건들이 많이 접수되고 있는 중이다.

임대인이나 중개인, 중개보조인이 같은 건들도 여럿이고, 같은 건물 다른 호수의 주택들이 한꺼번에 경매에 넘어간 사례도 있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이거나 한부모가정 등 나라의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분들, 즉 보증금이 재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 돈으로 갈 수 있는 집이 한정되어 있는 분들이다.

물론 넓고 쾌적한 집에 근저당 등 아무런 담보도 설정되어 있지 않은 깨끗한 주택이면 참 좋겠지만, 그런 집들은 피해자분들의 형편으로는 찾기 힘들다.

보러간 주택에 선순위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어 불안한 마음에 계약하기를 주저하면 중개인이 말한다. “아 괜찮습니다~ 고객님은 소액임차인이어서 나중에 경매된다고 해도 선순위근저당권에 우선해서 보증금을 변제받을 수 있고요, 그리고 주택 가치가 ~정도 되기 때문에 근저당권 채권최고액 공제한다고 해도 보증금은 충분히 지킬 수 있어요~ 만약 나중에 경매당해서 보증금 다 못 돌려받으시면 제가 전액 보증할게요!”

이 말에 신뢰를 갖게 된 피해자는 계약을 하고, 중개인이 별지까지 써 주면서 보증금 전액 보증 문구를 기재하면 의심없이 보증금을 치른다.

이렇게 계약을 체결하고 살던 중 혹은 계약 만료가 임박하여 더 이상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해지 통보를 한 이후 혹은 묵시적 갱신을 통해 계속하여 거주하던 중, 어느 날 임차인은 선순위저당권자(보통 금융기관)가 해당 주택을 대상으로 임의경매를 신청했다는 통보를 받는다.

걱정스런 마음에 이리저리 알아보지만 이쯤되면 임대인이나 중개인과는 연락이 닿지 않고 경매절차는 지연되기 일쑤고 보증금을 받을 길은 요원해져 버린다. 이런 경우 임대인이 상습 체납자인 경우도 많아서 체납액까지 공제하고나면 임차인이 손에 쥘 수 요는 금액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내가 최근 검토한 사건들도 위와 비슷한 경우였는데, 소송을 준비하고는 있었지만 이미 임대인과 대리인, 중개인 등 관련자들과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고 집은 모두 경매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의뢰인이 소액임차인에 해당하지 않음에도 소액임차인에 해당한다고 거짓으로 설명하여 의뢰인을 안심시킨 사례, 소액임차인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배당금에서 최우선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금액은 보증금 중 일부에 그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 사례(해당 주택에 설정된 근저당권의 설정시기에 따라 최우선변제금액의 액수가 달라지는데, 이는 최우선변제금 적용 기준일이 담보물권 취득 시점이기 때문)  등 모두 중개인과 중개보조인들이 설명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안들이었다.

때문에 보증금을 일부만 받거나 받지 못할 경우에는 소송을 해야 하는데, 승소 판결을 받더라도 집행 여부가 불투명하여 결국에는 임차인이 손해를 볼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어느 날 의뢰인 중 한 명이 내게 찾아와, 피해자들이 모인 카페에서 다들 정보를 공유하여 수집한 자료라며 A4지를 한뭉터기 건넸다. 피해 대상 건물들과 관련자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건물이 약 15개 정도 되었고 해당 건물의 임대인, 대리인, 중개인, 중개보조인들로 동일한 이름이 계속 반복되었다.

이쯤되니 조직적인 범죄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얼마나 걱정스럽고 불안한 마음일까.

관련자들을 모두 고소했다고는 했는데, 형사절차가 얼마나 진행되었을지 모르겠다.


보증금반환청구나 손해배상청구 등의 민사소송은 상대방의 주소지가 불분명하거나 폐문부재 등으로 소장이 송달되지 않으면 재판이 진행되는데 어려움이 있고 판결을 받는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사건이 해결되는데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으며 임차인들의 기다림도 길어질 것이다.


얼마 전에 '빌라왕'이라 불리는 전세 사기범죄자가 수사를 받던 중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위의 경우와 비슷한 수법이 아니었을까.

분명 빌라왕 혼자 몇백채나 되는 빌라를 소유하며 모든 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닐 것이기에, 다른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 사실관계가 드러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는 있을 것이지만, 과연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피해보상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하여 할 수없이 위험을 부담하고 계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는 임차인들의 어려운 사정을 이용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고 임차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다주는 이러한 전세사기 범죄는 뿌리뽑아야 할 사회악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어쨌거나 사건이 터지면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또 물질적으로 피해보는 것은 임차인이기에, 임대차계약 시에는 임차인도 꼼꼼히 등기부등본, 부동산 시세 등을 확인하고, 임대인의 체납 여부도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다행스럽게도 이르면 내년부터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임대인의 국세 체납액을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임차주택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갈 시 임차 이후 해당 주택에 부과된 국세보다 전세보증금을 먼저 돌려받을 수 있게 된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것 같긴 한데, 나도 곧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임차인이다.

이사를 갈 때 보증금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을지…조금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직 새로운 임차인이 구해지지 않았기 때문.

여유 자금이 없으면 본인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라도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것이 임대인의 의무일진데, 왜 임차인이 임대인이 해야 할 고민까지 하고 있는지 참 어이없는 노릇이다.

한창 많이 쓰고 있는 보증금반환 소장의 원고가 내가 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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