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방콕

꿀댕이와의 첫 나라 밖 여행

by 털복숭이

2022년 8월.

아직 마스크는 쓰고 다니지만 서서히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던 코로나 시대의 끝물 무렵. 3살 생일을 한 달 앞둔 꿀댕이를 데리고 온 가족 첫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휴양지를 갈까, 그래도 너무 휴양지는 좀 심심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제일 만만한 방콕을 떠올렸다.

호캉스와 도시의 분위기를 모두 누릴 수 있는 곳.

사실 이미 꿀댕이는 한 차례 방콕을 간 적이 있다고도 할 수 있는게, 꿀댕이 임신 16주차 정도에 중학교 절친들과 방콕을 여행했던 적이 있기 때문. 당시 쏭크란(태국의 설날로,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물총 싸움이 연휴 내내 벌어진다)이랑 우연히도 겹치는 바람에, 임산부인 나를 보호한답시고 친구들도 제대로 밖에 나다니지도 못하고 호텔에서 수영만 열심히 했었더랬다.

왠지 꿀댕이의 첫 해외여행지가 방콕이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 즈음 한창 골프에 빠져있던 남편은 한국에서의 3분의 1 값도 안 되는 돈으로 좋은 골프장에서 여유 있게 골프를 칠 수 있다며 나의 결정을 반겼다.

거의 모든 여행은 주로 나의 의지와 추진력으로 시작되기에, 나는 일정을 확인하고 바로 비행기표를 끊었다. 그 후의 중요 절차는 호텔 예약인데, 방콕은 진짜 가성비 좋은 호텔이 너무 많아서 고르는 것도 힘들다. 위치, 수영장, 가격, 조식, 방 컨디션, 후기 등등을 요모조모 살펴보고 몇 개 추려서 남편과 의견을 공유한 후 최종적으로 2곳을 결정하였다. 한 곳에만 있는 것은 조금 아쉬우니깐.

호텔까지 확정하고 나면 이제 준비는 거의 다 되었다고 보면 된다.

여행 일자가 다가오는 날까지 오매불망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묵묵히 하루하루를 버티다가, 2주 전쯤부터 열심히 맛집과 가고 싶은 곳들을 서치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 여행 후기도 좀 보고.

이번엔 아무래도 꿀댕이를 고려한 동선을 위주로 계획을 짜야 해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꿀댕이를 위해 호텔의 수영장을 충분히 활용하고, 방콕 여러 군데 있다는 엄청난 규모의 키즈카페와 가까이서 동물을 볼 수 있다는 사파리월드를 중간중간 일정에 끼워넣기로.

드디어 기다리던 그 날이 왔다!

서울-제주도가 최장거리 비행 경험이었던 꿀댕이가 그래도 6시간 정도 소요되는 비행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그는 타자마자 유아에게 제공되는 항공사 측의 그림그리기 선물에 호기심을 보이며 열심히 그리기를 했고, 미리 신청한 유아식(스파게티며 피자, 각종 과자, 음료 등)을 넘나 맛나게 즐겼으며, 귀가 편안한 헤드폰을 착용하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엄청나게 많은 영상을 섭렵하였고, 비록 우리에겐 이코노미지만 그에게는 눕코노미인 혜택을 이용해 딥슬립을 하시며 편안한 비행을 누렸다. 부럽도다...


첫날은 밤에 도착해 호텔에 짐 풀고 쉬었던 것 같다.

짜오프라야강이 보이는 호텔이었는데, 밤엔 칠흙같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던 강물이 다음 날 아침에 보니 흙탕물이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호캉스가 시작되었다. 호텔의 꽃인 조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수영 수영 노래를 부르는 꿀댕이를 데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수영장으로 돌진. 하지만 잠깐 방심하고 팔다리, 어깨 부분 선크림을 소홀히 발랐더니 2시간동안 혼이 빠져 물놀이하는 사이 내 살갗은 수영복 모양을 따라 빨갛게 타버렸다... 넘나 따갑고 쓰린 것... 꿀댕이는 온몸을 가린 수영복이라 다행이었다. 참 즐거웠는데,, 꿀댕이와의 추억을 쌓은 대신 얼굴의 주근깨를 얻었다.

방콕의 8월 햇살은 엄청나다는 것!!


그리고는 호텔 근처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키즈카페를 찾았다. 하버랜드라고 체인인 모양인데, 규모에 따라 ‘maga’가 앞에 붙는 지점은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하여 기대를 많이 했다. 역시나 상상 이상. 당시만 해도 제대로 된 키즈카페 한 번 가본 적 없는 꿀댕이 놀려주려고 간 거였는데, 웬걸 내가 더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트램펄린, 온갖 각도의 슬라이드, 미로 같은 놀이기구들, 축구니 농구니 각종 공놀이들, 자전거타기, 힘들면 볼풀장에서 쉬기. 거의 90도로 보이는 슬라이드를 아무 생각 없이 타는 바람에 팔에 피까지 맺힌 기억. 3시간 동안 불태우고 저녁 먹고 호텔로 돌아와 9시에 우리 세식구 모두 기절했다...ㅋ 그리고는 다음 날 남편 혼자 골프치러 간 동안 꿀댕이 데리고 둘이서 또 하버랜드 갔었다지. 애 데리고 놀기 최고의 플레이스시다.


호기롭게 끼워넣은 마지막 일정은 “사파리월드”였다.

방콕엔 유명한 동물원이 몇 개 있었는데, 그 중 사파리월드의 동물들이 뭔가 더 방목형이고 자유로워 보였다는 후기를 접하고 그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꿀댕이에게 한국에서보다 가까이 동물들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동물원’에 대한 왜인지 모를 찝찝함이 있었는데, 자유로운 동물들이라니! 불편한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투어를 예약하고, 당일 아침 일찍부터 움직였다. 동물원이 방콕 외곽에 위치해 오가는 거리도 만만치 않았고, 그 곳 규모가 상당하여 둘러보는 데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당시 운전과 우리의 투어를 담당해 주셨던 현지가이드분이 엄청 친절하셨다. 어린 꿀댕이를 잘 챙겨주시고 우리 가족의 예쁜 사진도 많이 찍어주셔서 엄청 고마웠다. 그렇지만 찌는듯한 더위가 문제였을까, 생각보다 꿀댕이가 동물에 관심이 없던 것이 문제였을까. 결론적으로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초반에 차 타고 막 앞으로 지나다니는 얼룩말 구경하고, 조금 멀리 떨어져 맹수들 밥 먹는거 볼 때만해도 매우 쾌적했는데, 내려서 걷는 순간 너무 덥고 습한 기운이 몰려와 우리는 점점 녹초가 되어갔다. 꿀댕이가 얼룩말 아이스크림 먹을 때랑 기린 밥주기 체험할 때 매우 즐거워해서 보는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좋았지만, 돌고래 쇼를 보러 착석했을 때부터 이미 낮잠에 빠져든 꿀댕이는 그 후로 깨어나지 못했다. 결국 제일 메인 이벤트였던 호랑이 안아서 우유주기 체험은 애미, 애비만 했지 뭐야. 생각보다 꽤나 큰 아기호랑이여서 안을 때 좀 무서웠지만, 사진보니 흐뭇하다..ㅎㅎ


주요 일정을 제외하고는 거의 호텔 수영장에서 놀거나 호텔 근처의 쇼핑몰을 돌아다니거나 하는 등으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우리는 일부러 시암파라곤이나 아이콘시암 같은 큰 쇼핑몰 근처에 있는 호텔을 잡았는데, 남편이 골프치러 갔을 때도 꿀댕이 유모차에 태워 둘이서 심심하지 않게 시간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때만 해도 꿀댕이가 만 3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라 낮잠도 길게 자주어서 편했던 것 같은데,, 오래되어서 기억이 미화된 것일수도 있고.

암튼 맛난 것도 많고 호텔도 좋고 쇼핑몰도 잘 되어 있어서 꿀댕이와의 첫 여행지로 괜찮았던 방콕!


이번 여행을 계기로 좀 더 먼 곳으로 도전해 보아도 되겠다는 당찬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바로 말하진 않았지....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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