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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링 이브(Killing Eve)

두 번 보면 안 못생겼고 세 번 보면 예쁜 오미주 씨(산드라 오)의 매력

by 랄라
킬링이브.JPG 이미지 출처: 왓챠플레이


영국 BBC 인기 드라마 <킬링 이브>

킬링 이브는 2018년부터 방영 중인 영드로 현재 시즌2까지 방영 되었으며, '매력적인 사이코패스 킬러와 평범해 보이는 영국 정보부 요원의 세련된 추격 스릴러'라고 소개되어 있다. ( << 최대한 사전 정보 없이 보시라고 드라마 소개는 흰 글씨로 적었습니다)

소개는 그렇게 되어 있지만, 정말 전혀 아무런 정보 없이 보기 시작하면 더 재미있다(나는 그랬다). 두 주연급의 정체나 관계 아무것도 모르고 1 에피를 시작하면서 흥미진진해서 눈을 뗄 수 없던 기억이 난다. 이 드라마는 특히 그렇게 보는 것이 좋다. 같은 이야기도 누가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듯이, TV만 틀면 나오는 첩보물이지만 신선한 스토리텔러의 본 적 없는 스토리텔링 방식을 취하고 있어 초반 미스터리에의 몰입 방식이 중요하다.

왓챠플레이가 수입/배급하고 있으며 6월 28일부터 왓챠플레이에서 단독 공개하고 있다.


인종과 성별 편견을 극복하고 드라마를 이끄는 산드라 오의 미존감, 영리함

산드라 오(한국 이름은 오미주 씨, 극 중 이브)가 당당히 주연급으로 이름을 올린다. 이 드라마는 재미도 있지만, 두 주연배우의 매력이 하드 캐리 하는 비중이 매우 커서 더욱 산드라 오의 주연급 캐스팅이 의미가 있다. 산드라 오는 이 드라마로 골든글로브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도 수상했다는 사실!


드라마를 보면 납득이 가는 것이, 사실 드라마를 집에서 보는데 바짝 집중할 수 있었던 큰 요소가 산드라 오의 호연이기 때문이다. 산드라 오는 어딘가 어수룩하면서 업무 책임감 강하고, 약간 모자란 듯 영리하고, 몽상가이면서 융통성 없는 이브 역할을 찰떡같이 매력적으로 소화해냈다. 다른 배우 누구도 생각하기 어렵다. 그리고 정말 적재적소에 산드라 오만의 방식으로 웃기기 때문에, 특유의 개그 코드는 더더욱 대체할 배우를 생각하기 어렵다.


_106344804_evealt_gentle.jpg 이미지: 구글


십 년 전 산드라 오는 나에게 그냥 웃기고 조금 귀엽고 놀랄 만큼 못생기고 집 안 치우는 외과의사 아줌마(그레이 아나토미/크리스티나 양)였는데, 생각해보니 그때도 산드라 오는 '집안일, 빨래할 시간 없으면 그냥 새로 옷을 사 입어.'라는 신개념을 알려준 신여성이었다. 발 디딜 틈 없이 너저분한 집, 레지던트 생활로 집에 들어오거나 데이트할 짬도 부족하니 당연히 빨래할 시간은 없고, 매일 빤스를 새로 사서 입던 외과의사 역할. 두 번 보면 안 못생겼고 세 번 보면 예쁘기까지 한 오미주 씨의 매력!


아시아계 미국인, 전형적이지 않은 외모, 여성 - 이런 다양한 편견의 조건들을 갖고 있지만 편견과 비장하게 날 세우고 싸우는 대신 똑똑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자주 등장하여 더 편견을 효과적으로 타파했다고 생각한다. 정말 멋진 여성!


sei_27847923-9bf8.jpg 이미지: 구글


라이징 스타 조디 코머의 매력은 어디까지?

그리고 빌라넬을 연기한 조디 코머. 한창 리즈 시절의 케이트 보스워스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다. 넓고 아기 같은 이마와 짧은 하안, 살짝 먼 눈 사이와 높은 광대뼈가 닮았다. 그냥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연기를 잘하고-특히 시즌2에 가면 더 더 매력적으로 일취월장한다-살인을 위해 변장할 때마다 외모며 말투며 전혀 다른 사람처럼 찰떡 광녀 연기! 시즌2 쯤 가면, 빌라넬이 이번 미션 때는 무슨 옷을 입을 것인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주어진 미션에 따라 목소리와 눈빛마저 자유자재로 변하는 조디 코머를 보는 재미도 드라마 재미의 큰 요소.


두 여배우의 매력과 케미

중년의 범죄심리학자인 이브와 20대 중반의 빌라넬, 두 여주인공이 거의 극을 이끌어가는데 지루할 틈이 없다. 두 배우의 매력과 호연에 눈을 뗄 수 없기도 하고 영드라서 유럽 로케에 큰돈이 안 들었던 건지 돈을 들이느라 로케 밭인 건지 투스카니, 베를린, 파리, 빈 등 다양한 유럽 도시들이 무대로 펼쳐져 눈이 즐겁기도 하고, 기존 성역할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완벽하게 전복하는가 하면, 악역과 주인공의 관념도 뒤흔든다. 범인과 범인을 쫓는 자는 일방적 방향으로 쫓고 쫓기는 대신 서로 쫓고 쫓으며, 묘한 지점에서 유대로 뭉치기도 한다. 두 주인공의 행동 배경에 꼼꼼하고 치밀한 심리적 묘사가 깔려 있기도 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드라마를 볼 생각이지만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읽지 말아 주세요!]



Screen+Shot+2018-04-30+at+8.04.06+PM.png 킬링 이브 타이틀은 컬러가 계속 바뀌는데 색 배합이 매우 예쁘다. 시즌 1과 시즌 2는 저 핏방울 흘러내리는 위치도 다르다.


섬세한 대사와 심리묘사

"당신은 좋은 사람 같아요. 슬퍼 보여서요. 슬픈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그렇게 다 모든 것을 세심히 느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에요."

1 시즌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는 대사다. 빌라넬에게 빌라넬의 친구이자 핸들러인 콘스탄틴, 그의 어린 아들이 건넨 말.

-그런데 얘, 저 언니(동생이겠지만. 무섭고 예쁘니까) 싸패인데? ㅋㅋㅋㅋㅋ

킬링 이브는 첩보물, 범죄 스릴러물이지만 세심하게 언어를 골라 만든 대사들이 많이 등장한다. 여성 첩보물의 장점은 살리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감정에 빠지거나, 주인공들이 감정에 휘둘려 일을 그르치는 듯하거나, 민폐 캐릭터로 남게 묘사하지 않는다.


기존 성 역할 고정관념의 전복, 그러나 재미있는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던 여성 범죄자와 여성 범죄심리전문가는 나에게 그리 매력적인 인상을 준 적이 없다. 이 드라마에는 주연급의 극을 이끄는 남자 배우가 거의 없는 데도 불구하고, 2 시즌을 시청하면서 그런 빈자리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빈틈없이 캐릭터가 극을 채운다. 사실 정치적 올바름을 지나치게 앞세워 만든 극에서 생뚱맞음이나 지루함을 느끼는 경우가 매우 많고 이런 경우 오히려 나는 편견을 더 조장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생각하는데, 킬링 이브는 무엇보다 반박할 수 없이 재미있다.

빌라넬은 살인을 하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자비도 없다. 어느 순간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소름 끼치도록 무정하게 잔인하다. 몇 장면은 깜짝 놀라게 하는 호러 영화를 보는 기분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시청자가 빌라넬에게 감정을 이입하거나 응원하게 할 요소는 충분하다. 조디 코머가 그렇게 캐릭터를 잘 형성하기도 했고, 에피소드들도 그렇다.

시즌2에서 빌라넬은 이브의 칼에 찔렸다가 구사일생으로 응급실에 도달하고, 천연덕스러운 거짓말과 미인계로 병원에 입원한다. 옆 베드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고 큰 안면 흉터를 얻은 채 고아가 되어 누워있는 청소년 환자가 빌라넬에게 "아무도 진실을 알려 주지 않으니 내 얼굴 어떤지 좀 말해달라"라고 하자, 빌라넬은 얼굴 한쪽을 뒤덮은 붕대를 젖혀 살점이 뻥 뚫린 얼굴을 살펴보고는 "오 네 얼굴 지금 완전 피자(...) 같아. 너 한쪽 눈도 없어졌어?"라고 말한다. 빌라넬은 "차라리 죽고 싶어요. 누나 같으면 이런 괴물로 남은 인생 살아가고 싶겠어요?"라며 어깨에 기대어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고 함께 조금 슬퍼하는가 싶더니 금세...... 아이가 바라는 대로 해준다. 호러영화처럼 끔찍한 방식으로 갑자기...... 그러나 시청자로 하여금 그 잔혹한 행동이 오히려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며, 꿈보다 해몽을 하게 만들 만큼 사랑스러운(!) 캐릭터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외모 뒤 무자비함, 달콤 살벌한 빌라넬.



14-killing-eve.w1200.h630.jpg 이미지: 구글 / 아동 병동의 잠옷을 훔쳐 입은 빌라넬


제2의 000이라거나 00 버전 000, 그렇게 정의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굳이 이 드라마를 영업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춰 본다면, 일부 여자버전 '덱스터'라고도 하고 싶다. 덱스터를 보면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에게 오히려 감정 이입하여 잡히지 않기 바라며 손에 땀을 쥐고, 심정적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빌라넬을 보면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살인 앞에서 잔혹한 살인 유머, 블랙 코미디 하는 것도 비슷하다. 킬링 이브의 시체 유머가 조금 더 독하고 잔인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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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유머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 유머가 중간중간 들어가 있어 너무 극이 무겁게 떨어지지 않게, 빠르고 유쾌한 템포를 유지하게 만들어준다. 핑크색 컵 케이크에 꽂힌 것만 같은 차림으로 파리에 앉아있는 빌라넬에게 한 인스타그래머가 접근하여 "의상이 너무 멋진데, 제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사진 찍어도 될까요?"라고 묻자 빌라넬이 "아니, 당연히 안 되지. SNS의 삶 말고 진짜 삶을 살라고."라고 대답하는 식으로.


killing-eve-fashion-3 (1).jpg 이미지: 구글


이브의 잔혹 포텐은 언제 터지나

시청자는 산드라 오가 연기하는 이브의 편도 들게 된다. 이브의 불안한 눈빛과 갈등을 보면서 새삼 산드라 오가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여기까지 가면 지나친 해석이지만, 빌라넬이 지속적으로 이브에게 동질감을 느끼는데, 간혹 이브가 혹시 원래는 약간 사이코패스 아닐까 싶은 말과 행동을 간혹 해서 혹시 복선인가, 아니면 꼼꼼하게 짜 넣은 심리적 장치인가, 하고 있다. 개그코드로 넣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시즌3 쯤 가면 피맛도 봤겠다(!!) 숨겨왔던 잔혹 포텐 터질 것 같은 느낌도 조금 든다.

일상적인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지루해하는 이브, 잔인한 범죄들에 유난히 호기심을 빛내는 모습이나 살인마에게 지속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은 그녀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낸 설정인가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굉장히 평범한 집에서 평범한 부모와 지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산드라 오의 매우 서툰 한국어로 한국인 엄마와 통화하는 장면도 나오고. "엄마, 나 지금 바쁘니까 끊어. 바이 엄마" 뭐 이런 느낌으로 나온다.


결론은 츋 ㅋ 현 ㅋ

심리나 캐릭터 위주의 첩보물을 즐기며 플롯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청자라면 좋아할 드라마고, 무척 명작이다 라기보다는 가독성 높은 책처럼 술술 몰입해서 보게 되는 드라마다. 좀 더 박진감 넘치고 액션이 많은 첩보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냥저냥 눈길 줘가며 볼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시즌 1보다 시즌2의 긴장감과 블랙코미디가 확 떨어지기는 하는데 대신 시즌 2에서는 빌라넬의 다양한 의상과 살인 방법, 광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시즌1보다 위엄이 떨어지고 캐붕이 살짝 오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볼만은 하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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