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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ul 11. 2019

롱샷(Long shot)

PART1. 프리뷰: 로맨스 영화 기근 시대에 부쳐


- 반갑다, 로맨틱 코미디! 로맨스 영화 기근 시대에 부쳐 -


*본 영화는 2019년 7월 9일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로 개봉 전 관람하였습니다. 쌀람훼요 브런치팀......

*영화 <롱샷>에 대한 스포일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노팅힐>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를 이미 봤지만, 이 글은 리뷰가 아니고 프리뷰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나눠 씁니다. :-)




저는 로맨스와 운명을 믿는 사람입니다. 90년대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들도 좋아합니다. 특유의 그 시대 영화 색감을 참 좋아하는데요.


이런 색감 / 귀여운 여인, 1990


이 영화는 정말 좋아하는데요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1993


이런 색감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맥 라이언


러브 어페어, 1994


그런데 시대가 많이 변했죠. 2019년은 로맨스 영화 부재의 시대입니다. 근 몇 년 동안 개봉한 영화 중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 로맨틱 코미디를 5개 이상 댈 수가 없어요. 노트북? 어바웃 타임? 러브 액추얼리?

노트북은 조금 부족합니다. 어바웃 타임은 초반 15분 정도까지 꽤 좋은 로코였는데, 사실 남녀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어바웃 타임은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이야기가 참 가슴 뭉클했고, 영화 자체는 좋았고요! 러브 액추얼리는 늘 볼 때는 참 좋은데 보고 나면 기억이 안 납니다.


제일 좋아하는 노팅힐의 마지막 장면, 1999


20세기 마지막 로맨스, 노팅힐. 아슬아슬하게 1999년에 나왔죠. 1년만 늦게 나왔으면 21세기에도 이런 정서의 로코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언제 봐도 가슴이 행복해지는 영화예요. 먼 곳에 있는 듯 줄리아 로버츠의 아련한 웃는 얼굴들이 나오는 오프닝과 위의 마지막 장면을 특히 좋아하는데, 둘 다 유명한 주제곡과 함께 합니다. 엘비스 코스텔로가 로맨틱하고 처연하게 She를 부르짖는 가운데 이 기자회견 장면은 정말 20세기의 명장면입니다.   


서점 주인 A


플롯이 너무 우연의 연속이라는, 전통적인 로코물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노팅힐인데요. 우연히 아름다운 여배우와 서점 주인 A가 마주쳐 사랑에 빠진다는 판타지 같은 이 영화의 전개는 은근히 말이 됩니다. 우연히 들어간 서점의 서점 주인 A가 휴 그랜트잖아요. 우연히 부딪쳐서 옷에 커피 쏟은 행인 A가 휴 그랜트인데요. 서점 주인 A 휴 그랜트한테 어떻게 안 반하나요!


21세기 성공적 로맨틱 무비 부재의 원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21세기에 나온 로맨스 무비 중 가장 뛰어난 데이트 무비는 데드풀 1이라고 생각합니다. 밸런타인데이 무비로 딱 좋았어요(?). 진지하게 진심입니다.) 머리 크고 나서 보는 서정적 로맨스에 대한 시선 변화 탓인지 실제로 관객의 수요가 적어져 퀄리티도 낮아지면서 살짝 감흥이 부족한 영화만 나오는 건지, 21세기 들어 쭉 미스터리였습니다.


그런데

 

롱샷, 2019년


진짜가 나타났다! 진짜가 나타났습니다.


롱샷입니다.


롱샷(Long shot)은 멀리서 찍는 사진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닿기 어려운 곳에 있는 옛사랑에 대한 거리의 체감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렇게 멀리 두고 함께 한 컷에 담기기 위해 셀카를 시도하는 그만큼의 심리적 거리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롱샷은 재미있습니다. 최근 나온 로맨틱 코미디 중 가장 재미있기도 하고요, 로맨스와 코미디 장르를 따로 찢어서 꼽아도 최근 나온 코미디 중 이렇게 육성으로 웃으면서 본 영화가 있었나 싶고, 근 몇 년 이 정도 갖춘 퀄리티의 데이트 무비가 있었나도 싶습니다. 특히 제 기준에서 로맨스 무비가 로맨틱할 조건은, "괜찮고 멋있는 사람들의 멋진 연애"입니다. 이상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짜치게 연애하는 거 내 돈 주고 보기 싫어요. 현실에서 내가 하는 사랑보다는 멋있어야 돈 주고 볼 가치가 있죠.  

유머가 좀 더티하기는 하지만 제 기준엔 더 더티해도 됐는데 약했고요. 세스 로건 나오니까 더 셀 줄 알았는데. 너무 웃기고자 하다 보니 무리수 유머도 좀 많기는 하지만 10번 유머 날리면 7번 웃을 정도는 됩니다.




이 포스터 문구처럼 이 영화는 자신의 정체성이 철저하게 로맨스 무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리처드 기어가 여자라는 것만 빼고는 프리티 우먼과 똑같다고요. 영화의 제목 롱샷은 모험을 건 시도, 승산 없는 말(경마), 내기에서 기대와 결과의 차이 등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신을 사랑하는 남자의 어려운 도전이라는 뉘앙스를 살짝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여신이 된 옛사랑을 재회하는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보기엔 평범하지 않아요. 멋있는 세스 로건입니다. (소신도 있고 순정도 있고. 마이 웨이대로 살잖아요. 진짜 멋있는 상남잔데요. 살과 털로 덮인 얼굴도 실은 잘생겼을 겁니다.) 어쨌든 그래서 혹자는 "더러운 유머 버전의 노팅힐'이라고도 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노팅힐 못지않게 로맨틱한 데이트 무비고요. 현대에 맞게 좀 진화한 거죠. 쿨하고 좀 덜 진지해보이게. 현실의 보풀과 그 사람 앞에 서면 작아져서 저지르는 실수와 찐따질들까지 사랑스럽게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남녀 사이의 긴장이나 설렘도 잘 묘사했다고 생각합니다. 둘이 멋진 연애를 하고 있고요.


사랑에 빠진 눈빛도 제법 소화할 줄 아는 세스 로건


로맨스뿐 아니라 정치적 이슈도 생각보다 깊고 날카롭게 다룹니다. 이 영화가 국제관계나 젠더 이슈 등을 다루는 방식은 영화의 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매끄럽게 잘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짐짓 진지하지 않아 보이지만, 세스 로건이 웃기다고 해서 그 사랑이 진심이 아닌 것이 아니듯 정치 이슈도 그렇습니다. 그 어떤 영화보다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던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티 코미디와 블랙 유머, 정치 유머가 가득한 영화이니 번역도 중요하겠죠. 번역이 중요한 영화에서 엔딩 스태프 롤이 올라갈 때 뜨는 마지막 자막, "번역: 황석희"라는 명대사. 요즘 영화 최고 명대사는 "번역: 황석희"라고 합니다. "ㅈ됐어"라고 이렇게까지 비속어를 과감하게 자막에 적어주시면 사랑합니다.





이 영화에서 주연배우들을 빼면 사실 남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주연배우들의 캐릭터와 연기가 영화를 생생하게 끌고 갑니다. 선술 했듯 로맨스 영화는 멋있는 남녀가 멋있는 사랑하는 거 보려고 보는 겁니다. 노팅힐이 명작인 이유는 얼핏 평범해 보이는 휴 그랜트의 따뜻하고 해사한 미소가 설레게 하기 때문이고, 저 높은 곳에 있는 줄리아 로버츠가 알고보면 소탈하고 사랑스럽기 때문이잖아요.

1975년생의 샤를리즈 테론은 예쁘면 나이고 뭐고 상관없다고 온 얼굴과 몸으로 외치고요. 아니 이 세상 미모가 아닙니다. 이 언니 머리카락이랑 팔 없이 흙먼지 뒤집어써도 예뻤는데 머리카락이랑 팔 있으니까 더 예쁘고요. 둥실둥실 완벽하게 드라이된 금발머리와 완벽한 아웃핏들 속에 있으니까 컴퓨터 그래픽이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나마 막판에 가면 아 사람이긴 하구나 하지만 초반에는 제작진이 작정하고 더 반짝반짝하게 연출해서 스크린에 잡힐 때마다 헉합니다. <파인애플 익스프레스>의 세스 로건은 그때랑 똑같이 웃기고 약간의 로맨틱함을 더 장착했고요. 앤디 서키스도 나오는지는 영화 보고도 몰랐습니다. 저만 못 찾았을지도 모르지만 영화 보시면서 앤디 서키스 한 번 찾아보세요. 자꾸 나오는데도 몰랐습니다. 대단한 변장술이에요. 너만 몰랐어


이 영화에서 사건 전개 개연성이나 현실성은 그냥 무시하시고 보면 됩니다. 어차피 일부러 유머러스하게 만든 영화예요. 그 속에 담긴 메시지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대처하는 이 연인의 대응 방식을 보는 것이 재미있을 뿐입니다. 둘이 사랑에 빠지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저는 어떤 로맨스 무비를 보는 동안에도 별로 의문을 제기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도 늘 처음 볼 때 호감을 가진 사람과 잘 지내왔고 그러고 있거든요. 처음에 아무 느낌 없던 사람이 나중에 정이 들어 좋아진 적은 아직까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운명과 로맨스를 믿는 사람이니까요. 난 바보처럼 요즘 세사앙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미이이이읻으어어어 하고 노래한 어떤 오빠처럼요. 그러니 요즘같이 멋진 사랑 이야기가 데드풀 외엔 별로 없는 시대에, 유쾌하게 엄마 미소 지으면서 지켜볼 수 있는 데이트 무비는 너무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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