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귀환했습니다
왕 중의 왕, 백수의 왕(실제 백수의 왕은 코끼리에 가깝습니다) 사자왕의 귀환입니다.
[1994년과 2019년 <라이온 킹> 줄거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며, 매우 주관적인 의견이 많습니다.]
2019년의 리메이크작과 1994년의 원작은 몇 사소한 대사를 빼면 오프닝에 나오는 동물 종류, 동물을 담는 카메라 앵글까지 똑같습니다. 이렇게까지 똑같이 만들어도 될 만큼, 현재까지 유효한 영웅의 대서사시입니다.
'서클 오브 라이프(The circle of life)'라는 주제곡처럼, 번쩍 들어 올려진 아기사자의 아리송한 얼굴로 시작되고 끝나는 훌륭한 수미쌍관.
현대 관점에서 지난 향수 없이 보면 뻔한 영화라고 말할 요소도 물론 충분히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디즈니는 뻔한 것으로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법을 참 잘 알고 있습니다. 소재나 스토리가 뻔해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한 거니까요. 다만 이번 2019년 실사 리메이크 라이온 킹은 디즈니가 제 역량을 마음껏 발휘한 작품은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는 있습니다.
스토리나 대사는, 현대에 거의 원작 그대로 리메이크했어도 오히려 크게 모자라는 부분이 없습니다. 그만큼 원작의 위엄이 상당합니다. 개국신화 급의 영웅담인데 동물 버전이라 보는 재미도 좀 챙길 수 있고, 그 안에 철학과 인생의 고민, 시련이 클리셰 범벅이지만 누구나 좋아할 이야기이니까요.
도리어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는 평을 받는 시각적 구현에 아쉬운 마음이 좀 있습니다.
2016년에 같은 감독(존 패브로)의 정글북을 보았을 때, 이건 디즈니의 21세기 혁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물 다큐를 보는 듯 정교한 기술로 구현된 사실적 동물들이지만, 눈빛에는 표정과 감정이 풍부하고 과하지 않은 모션의 입모양이 딱 적정선이었던 정글북. 따뜻한 피가 흐르는 디지털 정글로 다시 태어났구나,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KBS1TV <동물의 왕국>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일 정도로 동물 다큐를 좋아하지만 2019 실사 라이온 킹에서 동물들에게 부여된 감성이나 생명력은 아쉽습니다. 완벽한 cg가 능사는 아닐 것입니다(제 기준에서는 완벽하게 동물 다큐 같다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한 올 한 올 날리는 털은 이미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맹수의 세밀한 근육 묘사 같은 것은 정글북에서 이미 한 차례 놀란 뒤라). 때론 기술이 뭣이 중허겠는가 싶습니다. 철학이나 고민 없는 기술은 몇 년 뒤면 헌 것이 될 텐데요.
가치관이든, 향수이든, 그 무엇이든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어떤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데 CG는 거들뿐입니다. 실제와 완벽하게 똑같이만 만들 거라면 만들 필요가 없겠지요. 창작자의 철학과 세상을 보는 시각이 그림에든, 대사에든, 전해지는 느낌에든 반영이 되는 것입니다.
아래는 그런 관점에서 인상 깊은 <정글북> 시각효과 슈퍼바이저 로버트 리가토 인터뷰(출처: 씨네21) 중 일부입니다.
-당신은 테드(TED) 강의에서 자신의 작업을 ‘본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기억하는 걸 재현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게 CG를 비롯한 특수효과의 비결인가.
=영화는 실제 삶을 그대로 묘사하는 게 아니다. 어떤 영화라도 감히 진짜 그대로를 기록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당연히, 실제 일어난 일을 그대로 재생산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사건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각자의 가치관을 반영한 형태로 기억한다. 누가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이 이야기의 묘미다. 따라서 이를 집약적이고 강조된 버전으로 만들면 마치 꿈과 같은 상태에서 우리 뇌가 진짜라고 믿게 만드는 게 가능하다. 우리의 기억과 꿈이 그렇듯이 말이다. 특수효과는 그를 돕기 위한 일종의 프리즘이다. 각자의 관점을 자유롭게 반영할 수 있도록 표현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작업이라 보면 된다.
영화를 보고 오자마자 1994년의 라이온 킹을 다시 보았습니다. 2019년의 라이온 킹을 보면서, 왜 사자들이 사랑에 빠지며 노래할 때 입을 못 벌리니? 하였는데, 원작에서도 그 장면은 그냥 BGM처럼 처리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1994년 작품에서는 음악과 인물이 따로 노는 것 같은 인상을 전혀 받지 않을까요?
2019년의 라이온 킹에서 두 사자가 재회하고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아닌 게 아니라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한 장면에 인간이 의인화한 내레이션을 입힌 것처럼 보입니다.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화면에 손범수 아저씨가 대사 넣는 것 보다도 따로 놉니다. 왜 노래와 목소리가 극으로 쏙 들어가지 않고 내레이션처럼 겉돌까요?
표정 때문입니다 표정. 새로 구현된 사자왕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어요. 물론 실사와 유사한 애니메이션에서, 사자가 갑자기 입꼬리를 한껏 올리면서 웃을 수는 없습니다. 엄청 괴기스럽겠죠. 잘못하면 불쾌한 골짜기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아예 실제 사자와 똑같아서도 안 됩니다. 아주 적당한 적정선이 있겠지만, 그것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물론 아닙니다. 사자별로 컬러라도 조금씩 다르게 뽑아줬으면 좀 더 좋았을 것도 같고, 저는 바로 저번 주에 동물원에서 사자를 보고 왔는데 그냥 그날 그 철장 안에 있던 사자가 그대로 영화에 나오고 있는 느낌이기는 했습니다. 색깔도 진짜 실제 사자 색이에요.
그럼 원작 인물들의 풍부한 표정들을 한 번 보고 가겠습니다.
아기 심바에게 사냥을 가르치는 무파사의 모습입니다. 그 시대와 이 시대 사이에 무파마라는 라면이 출시되는 바람에 자꾸 헛갈리는데요. 어쨌든 어른이 된 지금 무파사의 마음이 더 크게 와 닿습니다. 근엄한 왕이지만 아들에게는 어쩔 줄 모르는 아빠예요. 아들에게 사냥을 가르치는 무파사의 표정을 좀 보세요. 생동감 있는 눈썹 근육과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 머리카락, 이런 부분이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감정에 더 이입하게 만들고 캐릭터에 애정을 갖게 만들며 영화에 숨을 불어넣습니다.
심바와 날라의 행복한 얼굴입니다. 날라는 매혹적인 성인 여성의 느낌이 잘 드러나고(고양잇과 여성의 매력을 과시합니다), 심바는 갈기가 머리카락 같은 느낌을 내면서 잘 자란 청년의 느낌입니다.
디즈니 역대 빌런 중 가장 섹시하고 무서운 인물로 평가되는 '스카'입니다. 이름부터 멋지지 않나요? 검은 갈기가 흑발 느낌을 내고, 눈매도 스모키 메이크업한 듯 퇴폐적입니다. 무엇보다 제레미 아이언스의 목소리가 스카의 빌런미를 극대화하였는데, 한동안 디즈니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스카를 능가하는 빌런 캐릭터를 가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이렇게 풍부한 감정이 눈썹과 입, 눈빛, 다양한 앞발 응용 동작 등으로 보이던 1994년 라이온 킹 속 인물들. 그럼 2019년은요?
읭?
......?
......?
이렇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아 물론 극의 맥락상으로는 감정이 잘 느껴지지요. 그러나 이렇게 스틸컷 한 장만 가져와서 보면 보톡스 좀 맞은 강남 선녀와의 포커 게임에서도 못 이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동물의 실제 모습에 최대한 가깝게, 실사처럼 만들었는데 어떡하냐고요?
그럼 이제 정글북 실사 속 동물들의 얼굴을 살펴보겠습니다.
매우 실사처럼 보이면서도 어미의 따뜻한 애정이 뿜뿜합니다.
매우 진짜 호랑이처럼 보이는 빌런 시어칸의 분노도 뻐렁치고요
블랙 팬서 애잔한 눈빛 보십시오. 실사라 표정이 좀 모자랄 거 같으면 앞발 사용도 적절히 하고요
이건 정글북의 도입 부분, 늑대만큼 빨리 자라지도, 빨리 달리지도 못하는 모글리가 상심하는 부분인데요. 상심하는 아들을 위로하는 엄마 늑대의 표정이 아주 잘 살아 있습니다.
비에 젖은 늑대 털이 사실적인 것에 반해 표정은 인간미가 있고요, 이 장면만 봐도 굉장히 실사에 가깝지만 생생한 감정까지 뛰어나게 시각화하여 그려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실사에 가깝게 묘사하느라 포커 페이스로 만들어놨다는 것은 변명이 될 수 없습니다. 감성하면 디즈니, 디즈니하면 감성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정글북을 감독했던 바로 그 존 패브르인데 왜 이럽니까.
그래서 리메이크된 라이온 킹의 그래픽은 사실 조금 아쉽습니다. 감독이 이번에는 조금 다른 표현을 해보고 싶었던 걸까요?
뭐 무표정 속에서 코믹함을 자아내는 장면도 좀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기 사자 때는 실사가 더 귀여운 것도 같습니다.
보다 보면 매력적이긴 해요. 성우들도 적절히 캐스팅되었고요. 그리고 우리는 이미 한 번 본 스토리를 다시 그대로 보는 거니까요, 아무래도 맨 처음 접했을 때보다는 이 영웅귀환담이 덜 새롭고 식상하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는 하겠죠. 라이온 킹을 이번 실사를 통해서 거의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유사한 서사의 블랙 팬서와의 중복성, 서사와 시대의 불일치성 때문에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90년대에 어린이였던 지금의 어른들은, 아마 이 영화를 좀 다른 관점에서 다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라이온 킹>은 어른들에게 유효한 철학과 시간이 흘러도 훌륭한 플롯을 갖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햄릿>이나 성경의 모세 이야기를 모티브로 많이 차용했다고 하지요. 개봉 당시에는 일본 애니 <밀림의 왕 레오(맞나)> 표절 논란이 있기도 했는데요, 막상 나오고 보니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장엄한(!!) 영웅 서사시이면서 어른들을 위한 인생의 고찰과 철학이 담겼다는 부분에서 많이 달랐습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라이온 킹을 볼 때는 엘튼 존의 사랑 노래(이 당시에는 디즈니 영화마다 시그니처가 되는 사랑 노래가 있었으니까요), 사자 간의 싸움 같은 것에 중점을 두고 봤는데요. 어른이 되어 다시 본 라이온 킹에서는 정글의 축복받은 자연 풍경 외에, 아버지에서 아들로 또 그 아들로 이어지는 삶의 순환과 자연의 섭리 같은, 그런 인생의 큰 그림이 더 중점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심바보다는 무파사의 심경에 공감이 많이 가서 마음이 더 아픕니다. 영웅 서사시에 꼭 필요한 엄청난 시련과 죄책감, 부채감 - 아버지 무파사가 죽는 장면은 어릴 때보다 부쩍 크게 다가옵니다. 어른이 되니 좀 더 정신적 대미지가 현실적으로 큽니다. 아빠로서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 내외부의 적과 싸우며 프라이드를 이끄는 책임감 같은 것을 이제는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네 아빠한테 함부로 덤빌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라고 말할 정도로 강했던 아버지가, 아들을 구하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두려움에 잔뜩 질린 얼굴로 악인에게 도움을 청하고 벼랑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너무 장엄한 비극이라 눈을 똑바로 맞추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실사일 때 좀 더 충격이 크기는 했습니다. 물소가 무파사를 치는 질감이나 벼랑에서 떨어질 때의 무파사의 물리적 중량감 같은 것이 더 실제 같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인어공주만큼 라이온 킹을 자주 보지 않은 것이 무파사의 죽음을 다시 보기가 힘들어서였기도 합니다.
심바가 하는 거 없이 그냥 왕위 승계 서열이 높아서 왕이 되었다, 계급주의 조장이다 라는 의견도 많이 있고 그 의견이 타당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사실 정글북에서도 그랬는데, 동물 사이에서도 위계가 존재하게 묘사되기도 합니다. 벌레나 물소는 그냥 의식 없는 무리로 나오고, 인간과 가깝다고 느껴지는 동물들은 최대한 의인화되어 문명 있는 존재로 나오고), 저는 제작진이 전하고 싶었던 주요 메시지를 더 크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삶은 '의미 없는 직선'이 아니라 돌고 도는 서클이라는 메시지, 우리가 죽으면 흙이 되어 우리가 먹었던 것들을 다시 먹이고 별이 되어 우리의 후대를 이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또 그 어른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순환의 이야기. 지나간 과거는 돌릴 수 없으니 앞으로의 삶에 책임을 다 하고 다만 걱정하지 말라는 하쿠나 마타타(Hakuna matata).
별을 보며 선왕의 이야기를 해주는 아버지의 모습. 가장 소중한 친구인 아버지는 언제까지고 옆에 있어줄 수 없지만, 언젠가 외로울 때는 아버지가 지키고 있을 하늘을 보라는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고 돌아가는 심바의 모습은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사실 심바가 왕이 될 재원이라는 점은 당연하게 깔고 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심성이 바르고 호기심이 많고, 똑똑하고 뭐 그래서 무파사도 유난히 아꼈으리라 생각합니다. 날라한테 자꾸 발리는 건 그냥 넘어가고요...... 라피키도 정해진 운명처럼 심바가 왕이 될 것임을 자꾸 이야기하고요. 왕의 자질이 충분하게 태어났다는 것은 저는 그냥 예나 지금이나 전제로 깔고 봤습니다.
비비 원숭이 라피키("라피키"는 스와힐리어로 "친구"라는 뜻입니다)가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겠다며 데려갔던 장면에서,
원작에서는 무파사가 "네가 누군지 기억해라(Remenber who you are)"라고 메시지를 주죠. 그래서 심바는 자신이 왕의 후계자임을 다시 자각하고 사막을 달려 프라이드(극중에서 무파사가 다스리던 왕국이 프라이드 왕국으로 나오지만, 실제로 사자의 무리를 '프라이드'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로 돌아갑니다. 이때 라피키는 유명한 대사 "왕이 돌아왔다(The King has returned)"를 합니다.
리메이크작에서도 대사는 비슷하지만 심바가 아버지에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 "죄송하다"라고 합니다.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 것, 무책임하게 무리를 떠난 것에 대해 선왕에게 송구한 마음이었던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후계자. 그런데 이때 아버지 무파사는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너를 아들로 가졌던 일이다. 그 사실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사실은 대성통곡할 뻔...... 울었습니다). 존 파브르 감독 너 이 자식......
멘탈이 약한 현대인의 특성을 반영한 것인지, 원작보다 리메이크작의 심바가 조금 더 나약하게 묘사되는 것 같습니다. 저만의 생각일까요?
위 발자국 그림에서 암시되고 있듯, 아버지 무파사의 큰 존재감 앞에 존재의 고민을 하는 모습도 좀 더 많이 들어가 있어 저는 이 영웅담이 좋았습니다. 원작에도 발자국 장면은 나오지만요.
그림이 그냥 그림이나 실사 같은 그림이냐 왜에는 차이가 거의 없습니다. 찾으려면 거의 틀린 그림 찾기 수준으로 대사를 골라내야 합니다. 대사 토씨마저 거의 일치하거든요. 그런데 워낙 그만큼 원래의 대사들이 잘 정제된 명대사들입니다.
리메이크작에서는 “사냥은 암사자의 몫이야” 같은 대사는 빠졌습니다. 실제로 생태계에서도 무리를 형성한 사자 프라이드에서는 암사자가 사냥을 하지만, 이것도 금세기 지구상 최대 논란을 굳이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겠지요. 같은 맥락인데 어린 심바가 새벽부터 아빠를 깨울 때 "해가 뜬 후에는 당신 아들이야"와 같은 대사는 그대로 살렸습니다. 육아가 공동분담이라는 의미도 되겠지요. 사자는 실제로 암사자가 낮에 사냥을 하고 수사자는 밤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체력을 아끼느라 낮에 팔자 좋게 쉬고 있다는(?) 걸로도 알고 있습니다.
원작을 너무 오래전에 보았기 때문에 처음에 여자 하이에나가 나왔고 나중에 날라와 싸우는 단독 1:1 전투신이 들어가서, 이것도 PC인가 생각했었는데 여자 하이에나 캐릭터는 원래 있더군요.
품바와 티몬이 처음 심바를 줍는 장면에서도, 원작에서는 그냥 독수리 떼를 쫓은 뒤에 심바를 발견하지만, 리메이크작에서는 독수리 떼를 쫓기 전에 아기 사자 하나 키워볼까 하고 먼저 논의합니다.
심바 엄마가 스카를 택하지 않고 심바 아빠를 택했다는 사실도 2019년 버전에서 좀 더 세게 강조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모두 잃고 정조 지키는 열녀 심바 엄마...... 1994년의 원작 시절에는, 검은 갈기 사자(스카처럼)가 실제 생태계에서 암사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합니다.
코끼리 무덤에 갔던 아기 날라와 아기 심바. 무파사가 구하러 온 뒤 풀이 죽어 무파사의 뒤를 쫓아갈 때, 2019년의 날라는 "난 네가 용감한 줄 알았지"라고 하지만 원작에서는 "난 그래도 네가 용감했다고 생각해"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2019년의 심바가 더 약해빠지게 묘사되고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라피키를 따라서 자신 안에 살아있는 아빠를 만나러 갔을 때도, 원작의 심바는 사과를 하지 않지만 2019년의 심바는 사과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은 더 마음에 들었어요.
라피키가 나무에 새겨 넣은 심바의 그림이 원작에서는 몸까지 있고, 2019년 버전에는 얼굴만 있습니다. 둘 다 되게 귀엽습니다. 심바의 털이 라피키에게 실려가서 라피키가 심바의 생존을 확인하는 부분에서는 리메이크작이 좀 더 자세하고, 털의 여정에 개연성이 살아있습니다.
2019년의 라이온 킹에서는 스카가 좀 더 자주 "왕이시여, 만수무강하소서(Long live the king)"를 말합니다. 조롱하듯 말이죠. 원작을 통해 이 대사를 알고 있는 관객에게 초반부터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듯 음흉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2019년의 좀 더 나약한 심바가 어린 시절부터 삼촌한테 원작보다 아주 조금 더 깝칩 까붑니다. 아무리 어려서 사리분별 못한다지만 조카가 나중에 삼촌도 내 말에 복종할 거지?라고 하면 한 대 쥐어 박을 것 같아요.
2019년의 스카는 마지막에 심바와 싸우면서 하이에나들을 스케빈저들이라고 했는데, 원작에서는 그냥 에너미(적)이라고 했고요. 스케빈저를 "쓰레기"로 번역한 것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스케빈저가 쓰레기(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 동물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그보다는 좀 더 탐욕스럽게 찌꺼기까지 탐하는 포식자라는 이미지가 강한 단어가 아닐까 하였습니다.
음악은 1994년과 2019년 똑같이 한스 짐머가 담당하였는데, 그동안 한스 짐머의 명성이 <진주만>,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블레이드 러너> 등을 통해 지구촌에서 보다 높아졌습니다. 1994년의 OST도 혁신적이긴 했지만 저는 2019년의 음악도 너무 좋았습니다. 이게 무표정한 사자애들이랑 너무 리얼해서 무서운 미어캣, 새 얼굴에 안 달라붙어서 그렇지 음악 참 좋다 라는 생각 많이 하면서 영화 봤던 것 같아요. 25년 만에 같은 영화의 오스트를 재 담당하는 기분은 어떤 걸까, 궁금해집니다. 엘튼 존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은 말해 뭐해 입 아프고요!
어린 시절에는 디즈니에서 다음에 어떤 영화를 내놓을지가 큰 화두였습니다. 을지 악보로 엘튼 존의 노래를 연주하기도 하던 90년대 어린이들에게는 디즈니가 곧 마블 같은 존재였는데, 어른이 된 지금은 실제로 문자 그대로 디즈니가 곧 마블이라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 중 하나입니다. 이것도 서클 오브 라이프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