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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Jul 17. 2019

데드 돈 다이(The Dead Don't Die)

짐 자무쉬가 영화 원투데이 만드나, 그냥 개그하는 중인 겁니다



"죽은 자들이 오늘은 죽기 싫은가 보군......"


짐 자무쉬 / 빌 머레이, 아담 드라이버, 틸다 스윈튼, 스티브 부세미, 클레어 셰비니, 셀레나 고메즈, 이기 팝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달이 낮게 뜨고 보라색으로 빛나던 날 밤,

무덤을 파헤치고 일어난 좀비들.




동네 경찰 클리프와 패터슨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심드렁하다. 미쿡 경찰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도넛과 커피 타령을 클리셰처럼 하고, 잠복근무와 야근, 커피도넛으로 형성된 러브 핸들 아래로 힘겹게 벨트를 잠그고 있다.


좀비들은 무덤을 헤치고 나와 달빛 아래 느린 걸음으로 민가까지 내려와 산 사람의 내장을 뜯어먹고, 살아생전 자신들이 집착하던 것에 죽어서도 계속 집착한다.

"커피...... 샤도네이......

와이파이...... 블루투스...... 시리......"




칸 영화제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혹평이 쏟아졌다고 하는데, 혹평을 한 사람들은 개그 코드가 좀 맞지 않았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하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개그 코드가 맞아야 웃기겠지만 이 영화는 그냥 좀비 코미디 영화로 보면 재미있는 영화다.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 메시지나 힙스터인 척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묘한 조롱, 1인 1 미디어 시대에 좀비처럼 텅 빈 껍데기만 남아 고립되어 가는 현대인(와이파이와 블루투스에 집착하며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는 좀비)에 대한 시사가 약간은 들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감독이 그냥 "좀비" "코미디" 영화를 만들려는 의도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마지막에 숲을 떠도는 노숙자의 독백으로 지나치게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되는 부분까지도 의도적으로 그랬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메시지는 "살아서도 좀비, 죽어서도 좀비.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는 와라" 인 거고, 사실 그냥 병맛 개그인 거다.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보고 어떻게 될까 궁금해하다가 아, 저렇게 되었구나, 하면 된다. 이 감독이 뭐 영화 원투데이 만드나, 영화를 못 만들어온 사람도 아니고, 정성 들여서 정치 메시지를 담아 만든 영화면 이런 식으로 만들 리가 없지 않은가! 비장하게 뜯어보지 말고 그냥 가볍게 아 저런 것도 있구나 하고 즐길 것을 권하고 싶다. 짐 자무쉬라는 인디 예술 영화 감독인 척 하는 이름과 얼굴에 현혹되어, 뭔가 어마 어마한 메시지가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냥 개그로 보세요!



국내에선 이 영화가 좀비 영화로서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는 건 없고 다 어디서 본 장면이며, 중요한 건 정치적 메시지라고 큐레이팅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내 생각엔 그 정 반대다.


이 영화에는 선술 했듯 큰 정치적 메시지는 없고 현대사회에 대한 시사가 간략하게만 들어가 있으며, 내 기준에서는 좀비 영화로서 새롭다. 곳곳에 좀비 영화에 대한 감독의 이해도가 높음이 드러난다.


영화 속에는 조지 로메로에 대한 애정과 헌사가 가득한데, 각종 오마쥬는 물론 바비 위긴스가 입고 있는 조끼에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배지가 붙어있기도 하며, 엔딩 스태프 롤의 "땡스 투" 가장 앞에 조지 로메로의 이름이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_타이틀 글씨체부터 오마쥬


조지 로메로는 <워킹데드>나 <월드워 Z>를 좀비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나는 저 두 영화 다 좋아하기는 하지만 좀비물로서의 미덕이나 특징이 고전 좀비 영화들보다 약간 없는 느낌인 건 사실이다. 좀비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이 있다기보다는 스피디한 좀비가 나오는 호러물에 가깝다. 물론 나는 그것도 좋아하지.

<데드 돈 다이>에서는 (한국 귀신으로 치면) 자신이 죽은 곳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지박령처럼, 자신이 살아생전 집착했던 것을 텅 빈 껍데기만 있는 신체로 계속 집착하는 좀비의 모습이 나오는데 이것이 새롭다. 좀비가 말을 한다는 것도 재미있고, 커피를 찾는 좀비가 있다는 것도 개그 포인트이다. 본격 1인 1 미디어 시대가 된 후 나온 좀비 영화로서 실제로도 좀비처럼 늘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진짜 좀비가 된 후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그리고 베었을 때 질퍽한 질감이 아니라 검은흙먼지가 푹 하고 일어나는 점도 매우 새롭다. 기울어진 자전축이 시공간을 교란하여, 무덤에서 재와 흙으로 돌아간 자들이 다시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클리블랜드에서 온 힙스터


요즘 사람들은 속이 텅 빈 껍데기가 된 채로 자기 고유의 영혼을 스스로 느껴볼 시간과 여유가 없고, 자신이 소비하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삶을 산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정방형 사진들이 내 신체 안에 들어있는 영혼보다 나를 잘 보여준다고 스스로 믿을 정도로. 클리블랜드에서 온 힙스터들은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주유소의 직원 (너드) 바비 위긴스에게 호빗의 등장인물인 빌보 배긴스의 성을 따 바비 배긴스라고 부르며 조롱하지만, 정작 좀비 영화란 좀비 영화는 다 본 바비 배긴스보다 비참하고 대책 없는 최후를 맞는다.

-이런 사회적 현상을 코미디를 빌어 가볍게 언급하기는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가 영화의 주는 아니다. 코미디는 어쨌든 비판할 만한 사회현상이 있어야 더 웃기므로, 문제 상황을 보여주고 무심하게 그것을 까는 패터슨(패터슨은 계속해서 "어쨌든 끝은 안 좋을 것이에요"라고 거듭 말한다.)의 모습으로 개그를 치는 것이 감독의 목적이었던 것 같다. 짐 자무쉬도 나이가 많이 들긴 했는지, 원래 코드가 그런 건지, 개그코드가 올드했던 것은 약간 사실이다. 등장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들짐승이나 들짐승 떼"를 반복하여 이야기하는 개그도 어떻게 보면 올드하고, 특히 영화 속에 전지적 감독 겸 대본가로 이름이 언급될 때는 절정에 달한다. "저는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아요. 짐이 저에게 대본을 줬으니까요." "뭐? 나는 쪽대본만 받았는데. 난 한 번도 짐에게 전체 대본을 받아본 적이 없어. 우리 나오는 씬만 받았다고."




클리블랜드의 힙스터 앞에서 사람들이 무장해제되는 것도 개그 포인트이다. 클리블랜드의 반바지 힙스터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일상을 살고 있다. 매사 시니컬하던 로니 패터슨도 힙스터 앞에서는 무장해제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황당한 사건이 갑자기 일어났다가 허무하고 황당하게 끝나는 영화다. 유난히 크고 보랏빛 도는 달이 뜬 날 들짐승 아니면 들짐승 떼가 그랬을 법한 무서운 사건 현장으로 시작하여 사견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었을 것 같은 포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허무하게 제거되며 끝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좀비의 섭생에 좀 신기해하고, 허무하고 무력한 개그를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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