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00(The last stand of 300​)

현실과 픽션

by 랄라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희화화로 승화하는 서구의 정신승리.


300(2006/2007 개봉)

은 오리엔탈리즘으로 맹비난을 샀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의외로 꽤 철저한 고증을 거쳐 만든 영화이다.



연출: 잭 스나이더

원작: 프랭크 뮐러

출연: 제라드 버틀러, 마이클 패스벤더, 레나 헤디, 로드리고 산토로(크세르크세스) 외 식스팩 전사 300명




The last stand of 300



오리엔탈리즘

'잘 모르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희화화로 승화하는 서양의 정신승리' 라고 까지 하면 좀 지나친 비약이거나 또 다른 문화적 열등감의 표출일 수는 있지만, 이 영화는 오리엔탈리즘의 대표 조상 영화 쯤으로 회자 된다(최고봉으로는 '게이샤의 추억' 정도가 있다).

이 영화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페르시아 문명을, 덕지덕지 피어싱 변태 국왕 하에 괴물이나 키워 원정 다니는 야만 오크족처럼 묘사하여 많은 이들의 빈축을 샀다. 크세르크세스라는, 실제로 꽤 관대하고 유능했다고 기록된 왕을 키가 7척쯤 되는 야만괴물처럼 그렸음(실제로 키가 컸다고는 한다).



뭐 영화는 영화이고 픽션이니, 아무리 실제 역사를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주인공과 대립하는 상대를 보다 극적으로 재미있게 그리기 위한 장치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옳기는 하다. 프랭크 뮐러의 원작도 마찬가지고. 이런 왜곡이 싫으면 다큐를 보면 되기는 하다.




크세르크세스: 어머 오빠 어깨가 많이 뭉쳤네? (주물주물 쪼물딱) 나와 같이 손잡고 백년해로 하시겠수?

레오니다스: ......




하도 욕을 먹어서 그런지 나중에 속편에서는 잠깐 반성하고 시정했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속편도 좀 수상쩍었다. 속편은, 전편처럼 재미있지도 않으면서 자꾸 '유나이티드 그리스' 라든가(물론 그리스 연합이 맞기는 하지만 뉘앙스에서 느껴지는 천조국 스멜이 짙다) 하는 용어를 매우 빈번하게 사용해가며, 미국문화권의 민주주의조차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직접적 연관성이 있다는 듯 굴었다. 그리고 출전 전 한층 더 심한 일장연설을 일삼아 (나의) 빈축을 샀다. 입 좀 다물고 그냥 나가서 싸워라! 말 좀 그만해. 출전 전 정신교육 아침조회 일장연설은 헐리웃 전쟁 영화에 빠지지 않는 대목이다. 1편에서는 왕이 직접 전쟁터에 나가 솔선수범 싸우기도 했고, 대사도 멋있었지만, 속편의 연설은 정말 90년대 아침조회 수준



가장 마음에 드는 포스터 :)



시각적 아름다움

프랭크뮐러 원작을 그대로 가져온 구도일 듯 한데, 프랭크뮐러 삘이야! 싶은 멋진 장면이 많은 것 같다. 직접 게임하는 듯(당시엔 게임같은 영화가 메이저 블록버터에서 흔한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시원하고 잔인한 전투신 외에도,










이런 장면은 (배신자들의 모의 장면이기는 하지만) 정말 멋있음 :) 감탄이 나와서 캡쳐. 음흉한 웃음과 눈빛이 흑백 실루엣으로만 남는 장면.




어디까지가 실화일까

이 영화 특유의 오리엔탈리즘과 판타지 게임같은 전투신 때문에, 처음 봤을 때는 고증은 거의 무시하고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한 픽션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많은 부분이 역사적 사실과 일치한다. 세세한 전략이나 전쟁 중 오간 커뮤니케이션까지.

스파르타에서는 실제로 익히 알려졌듯 태어나자마자 장애가 있거나 약한 아기는 버려졌고, 7세가 되면 군인양성캠프에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아동 학대 수준의 가혹한 훈련을 모두 통과해야 군인이 될 수 있었다. 군인이 되는 것은 부모의 명예였고, 자손들은 모두 국가의 병력으로 기르게 돼 있었기에 자녀 양육은 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였다. 아이들은 군인 양성소에서 '채찍 맞으며 버티기', '아무도 모르게 사람 죽이기', '동물과 싸우기' 등의 훈련을 거쳤으며 절대 울어서도 안 됐다.






이 스파르타 훈련을 18세에 끝내고 명예로운 군인이 된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가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최종적으로 단 300명의 전사와 남은 것도 사실이다. 레오니다스가 질 것이 뻔한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버틴 것은 종교적 원인이 컸다고 한다. 그는 신탁을 믿는 스파르타의 국민이었으며 협곡을 지키라고 부여받은 임무를 다하는 것이 명예였다고 한다(출처: 히스토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최후의 전사 300").



300명의 전사가 100만여 명의 페르시아 전사(수치가 과장되었다고도 언급된다)와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으로 '불의 관문' '뜨거운 문'이라고 불리던 침략의 유일한 길목, 테르모필레 협곡의 지형을 잘 이용한 전략 덕이다. 그리고 날 때부터 단 하나의 목적성을 갖고 전사로 길러진 사람들로 구성된 소수정예 부대였다는 점, 당시 매우 발달해있던 그리스 방패와 투구에 비해 대추야자나무 등으로 만들어져 약했던 페르시아군의 활이나 카드 한 장 보다도 얇았다는 갑옷의 취약성 등도 주효했다고 언급된다. 훈련된 스파르타 전사들이 한 걸음 전진할 때마다 페르시아 군인들의 시체가 쌓여 나중에 그 시체를 쌓고 전술로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영화에도 나온다).






빛나는 실제 역사의 위엄

그리스의 섬에서 태양빛이 부서지는 쪽빛 지중해를 보고 있으면 신화가 사실일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신의 축복이다 못해 신들이 직접 살 것만 같은 천혜의 환경. 스파르타와 그리스 전사들이 빼앗기지 않고 자손들에게 그대로 주고 싶었을 아름다움이며, 알차지만 짧은 역사를 가진 다른 나라에서 본인들의 근원과 억지로 연관지어 생각하고 싶을 정도의 아름다움이다. '300'은 전사로 길러진(왕 조차 전쟁에 직접 나가는 전사) 스파르타 군인들의 명예와 기개를 매우 잘 그려냈다.



남의 역사를 탐하지 말라

미국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했던 "최후의 전사 300"에서는 테르모필레 협곡을 지킨 레오니다스와 300명의 전사가 벌인 이 전투를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비록 전투에는 졌지만 이들은 페르시아군이 침략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협곡에서 이틀을 버텼고, 그래서 그 사이 스타르타 등으로 흩어져있던 그리스는 연합을 형성하여 페르시아를 막아낼 대비를 할 수 있었으며, 100년 뒤 결론적으로 그리스의 승리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만약 그리스가 페르시아에 승리하지 않았다면 현대 미국의 민주주의는 꽃 피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다큐의 결론이었다. 뭔가 묘하게 편협한 어거지 결론이라는 기분이 들지만, 속편 제국의 부활에서도 왕비나 전사들의 연설을 빌어 노골적으로 비슷한 메시지를 외치고 있기는 하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미국은 지금 인종(지중해 인종은 백색인종의 기본형이기는 하나 앵글로색슨과 다르다. 멜라닌 색소가 상당히 많은 인종이며, 구 그리스에 분포하던 인종과 현재 미국의 주류를 이루는 백색인종의 족은 같지 않을 것 같다)도 언어도 다른 저 머나먼 땅에서 벌어진 전투가 현재 그들의 민주주의를 이루는 근간이라 그 승리가 값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 결론의 대목에서야 느낌이 온다. 그들이 왜 그렇게 유럽 역사를 영화나 드라마 콘텐츠로 그려내는지, 그것도 전혀 다른 언어와 인종의 재현으로! 아랍계 인종인 예수님이 왜 푸른 눈과 금발의 앵글로색슨으로 둔갑하였으며 왜 프랑스의 머스킷티어스를 헐리웃 배우들이 영어로 연기하고 있는지도 이제야 설명이 된다. 역사가 200년인, 근본 없는 후레자식들의 문화적 열등감과 콤플렉스



히스토리 채널 다큐에서 한 인터뷰이는 페르시아 군에 대해 "야만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다시피 당시의 페르시아인은 세계 4대 문명의 후예다.




[명대사]

뭐가 어쨌든 이 영화는 몹시 재미있다. 그리고 제라드 버틀러와 전사들은 간지난다.



1. 디스! 이즈! 스파르타!



-그 유명한 "디스! 이즈! 스파르타!" 우물 신.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제일 간지라고 생각한다. 이 장면과 신탁녀가 춤추는 장면, 벼랑 끝에서 병사들 우수수 떨어지는 장면은 프랭크 뮐러 원작을 그대로 살린 장면(인 듯)



2. 내가 끝났다고 할 때 까진 끝난 게 아니야!

-포기가 뭐임? 포기는 배추 셀 때 사용하는 단위 아님? 보고 있나 요기 베라 레니 크라비츠. 이 비슷한 대사가 에바그린, 올랜드 블룸 주연의 "킹덤 오브 해븐"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포기? 포기는 요정이나 마법처럼 판타지 속에나 존재하는 단어다. 현실세계에선 포기란 없다", 이런 느낌의 대사였던 것 같다. 이런 류의 대사는 다소 무지막지 무대뽀 정신, 노오오오력 st 대사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일견 간지도 난다. 실제로 불가능한 도전을 실천해냈던 인물의 입에서 나오기 때문인가.



3. 오늘 우리 중 누구도 죽지 않는다

-(내일 죽는다)(내일 죽었다)(아 그날 저녁 죽었던가)



4. 점심을 든든하게 먹어둬라. 저녁은 지옥에 가서 먹는다!

-(그래서 그들은 지옥에 갔다)(이승에서의 삶은 끝까지 간지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카페 소사이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