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게 닫힌 수 겹의 문 뒤에 있다고 믿어지는 정의

두 검사

by 랄라


-1937년 스탈린 대숙청 시기. 불태워질 운명이던 혈서 한 장이 젊은 검사의 손에 들어온다. 정의를 좇는 그의 발걸음은 어느새 전체주의의 심장부 모스크바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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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임용되셨소?"라는 질문의 의미(다소 풀어주는 뉘앙스가 아주 살짝 들어간다)를 모르는 스물 셋의 검사. 폭력적으로 배치된 의자에 앉아 옆모습을 보인 채 자신에게 차갑게 엉키는 시선들과 무언의 언어를 버텨내면서 무언가를 요청하고 보고하는 신임 검사. 명시된 법리에 의해 위법이 있는지 확인하겠다는데 검사는 굳게 닫힌 두터운 문을 너무 여러 번 통과해야 한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영화에서, 그가 목적대로 수감 중인 스테프냐크를 만나는 데에는 약 1시간이 걸리고, 그동안 그가 흐린 눈으로 애써 무시하는 차가운 시선과 고의적으로 기다림을 부여하는 관문들의 지루함은 1.37:1의 회색빛 스크린 밖으로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도 그렇고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감옥 밖에 남아있는 마지막 정의 같은 이 사람의 행동들이 23세 검사의 아직 뭣 모르는 패기라고 하기는 하겠지만 양심이라는 게 없는 것도 실은 그냥 타고 난다. 몇몇 사람들은 대학생까지는 교과서에서만 본 원리원칙대로 살겠다고 정의롭다가 망가지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경우 애초에 정의롭지 못한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다가 그것을 교육으로 잠시 교정했던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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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있소? 부인은? 자식은? 부모님은?"

그리고 정의로운 것을 타고난 사람도 대부분 자기 일신 외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길 때, 사랑해서 잃지 않고 싶은 것들이 생길 때 정의롭지 못하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비난하겠는가.


그럼에도 원칙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매우 소수의 타고난 인물들이겠지. 하지만 내가 믿는 정의나 원칙이 반드시 시대가 지나가도 절대적으로 옳은지도 알 수 없는 세상이니, 과연 23세에 갓 임용된 원리원칙주의자 검사는 어쩌면 과연 어리석은 걸까.


수 겹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얻기 힘든 정의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가. 사실은 아무리 덧문을 열어도 세상에 정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오직 스스로의 존엄을 위해 자기 자신을 지키고 사는 것이 노인의 삶이고, 저 문을 다 통과하면 기다리던 정의가 있다고 믿는 것이 청년의 삶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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